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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Apr 30. 2024

일어나, 껴안아줄게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사뮈엘 베케트는 1906년 아일랜드에서 출생하여 불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파리에서 활동했고 세계 2차 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돕기도 했다.  남프랑스의 농가에 피신해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을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으로 남겼다.  인간의 삶 속에 짙게 드리워진 ‘희망에 대한 기다림’을 ‘고도’라는 사람으로 형상화했다.  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시골길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주제도 없고 지리멸렬한 대화가 주요한 소재다.  두 주인공은 마치 한 인물 같은 느낌이다.  에스트라공과 그의 자아 블라디미르가 오지 않는 희망을 기다리며 나누는 혼란스러운 ‘독백’ 같다.  그들이 실없는 대화를 통해 친구처럼 연대한다면, 매일 등장하는 또 다른 사람 포조와 럭키는 외마디 명령으로 소통하는 주종관계의 비극을 보여준다.  희망을 포기하고 오직 명령에 순응하는 럭키 역시 포조의 자아라는 느낌을 받는다.


기다림에 지쳐갈 때면 고도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소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삶이 그래도 살아지는 이유는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설렘과 기쁨, 그리고 오늘의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처럼 희망, 행운, 죽음 등 오지 않은 고도를 기다리는 것도, 포조와 럭키처럼 포기하고 현실에 집착하고 탐닉하는 것도 자유의지다.  희망이나 꿈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목표’로 구체화하면 그것은 도달해야 할 대상이 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용기, 야망, 행복, 독립, 평등, 헌신 등 바람직하고, 옳고, 좋은 ‘가치(Value)’를 숭상한다.  가치는 무의식 중에 특정 대상이나 사람, 그리고 사건에 대한 호불호 평가의 기준, 태도(Attitute)에 영향을 미친다.  태도는 개인행동(Behavior)에 방향을 결정한다.  새로운 일과 사람, 특정 사건을 접할 때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가치, 태도, 행동의 일관성을 맞추는 노력을 머리 속에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연대하고 목표를 공유하면 고단한 오늘을 견딜 수 있는 성실함과 희망이 생겨난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일어나, 껴안아줄게’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랑과 연대가 최고의 가치이고, 태도이고 행동이다.  


고도는 누구인가?


<에스타르공: 뭐랄까......  넌 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블라디미르: 마지막 순간이라......(생각에 잠긴다) 그건 멀지만, 좋은 걸 거다.  그래도 그건 오고야 말 거라고 가끔 생각해 보지.  그런 생각이 들면 기분이 묘해지거든.  뭐라고 할까?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동시에......  섬뜩해 오거든>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타라공: 기다려야 하는 게 여기냔 말야?  나무 앞이라고 하던데.  딱히 오겠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  <에스타라공: 만일 안 온다면?  블라디미르: 내일 다시 와야지.  에스트라공: 그리고 또 모레도.  그 뒤에도 죽.>  <에스트라공: 우린 꽁꽁 묶여 있는 게 아닐까?  블라디미르: 도대체 묶긴 누가 묶고, 누구에게 묶여 있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네가 말하는 그 작자에게.  블라디미르: 고도에게 묶여 있다고?>   


꿈은 희망의 상징이자 기다림의 대상이다.  목표는 꿈을 이루기 위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조직에서는 꿈을 사명문(Misssion Statement)으로 만들어 지향하고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가치를 표현한다.  미션은 오지 않지만 존재하는 고도처럼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가격을 책정하고, 광고를 기획하고, 유통망을 구축하는 모든 마케팅 활동은 미션을 근거로 한다.  ‘To refresh the world and inspire moments of optimisim and happiness’는 코가콜라의 명시된 사명이다.  꿈은 미션을 추구하기 위한 3~5년의 중간 기착지 비전(Vision)과 매년의 사업목표(Goal)로 구체화된다.  조직도 개인도 꿈을 중심으로 연대하며 일상의 벅찬 문제를 즐겁게 이겨낼 수 있다.  비전과 목표가 있어 오늘 하루를 또 성실하게 노력할 수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자기 발 앞에 목표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고개를 들어 동료들과 같은 곳을 쳐다보면서 연대하고, 방향을 공유해야 한다.  


당신은, 그리고 우리 조직에는 고도가 있는지?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블라디미르: 가긴 어딜 가?  오늘 밤엔 그자의 집에서 자게 될지도 모르잖아.  배불리 먹고 습기 없는 따뜻한 짚을 깔고 말야.  그러니까 기다려볼 만하지.  안 그래?  에스트라공: 그렇다고 밤을 샐 수야 없지.><블라디미르: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다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뭐랄까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  꿈과 목표를 상실하고 이성과 생각의 자유의지를 내려놓는 순간 일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겹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료하고 지리멸렬한 대화만을 이어간다.  2차 세계대전 속에 무기력하게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처지가 반영됐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엇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불안하고 불안정하며 두렵기까지 하다.  ‘Just do it(그냥 해!)’  공유한 꿈과 목표가 어떻게 개인에게 ‘걍 해!’의 성실성으로 연결될까?  꿈으로 연대하고 목표를 공유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성실, 정직, 친절’ 등과 같은 ‘도구적 가치(Instrumental Values)’가 개인에게 생겨난다.  도구적 가치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빠르고 친절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의 ‘옳고 좋고 바람직한’ 방식을 규정한다.  또한 ‘행복, 사랑, 만족’ 같은 ‘궁극적 가치(Termical Values)’를 달성하게 한다.  도구적 가치는 사람이나 사물, 사건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태도에, 태도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꿈으로 연대하고 목표를 공유하지 못하면 도구적 가치도 생겨나지 않는다.  태도나 행동도 지시나 명령에만 따르게 되고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꿈으로 연대하고 목표를 공유여 조직의 몰입도를 높이자!  꿈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헌신에 대한 약속(Committment)’이 담보되면 ‘행동의 지속성(Continuity)’이 구성원들에게 나타난다.  그냥 하면 된다!  그냥 하게 된다!  기다림이 즐겁고 흥분되는 시간이 된다.


기다림이 또 다른 고통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블라디미르: 이리 와, 껴안아줄게!  에스트라공: 건드리지 말라니까!  묻지도 말고!  아무 말도 말고 그냥 옆에 있어만 줘!  그리고 점점 더 몸을 떨면서 서로에게 다가서더니 별안간 와락 껴안고 서로 등을 두드린다.>  <포조: (포조가 끈을 당기자 럭키가 그를 쳐다본다.)  생각해, 이 돼지 같은 놈아!  (사이, 럭키, 춤추기 시작)  그만!(럭키, 멈춘다)  앞으로!  (럭키, 포조 쪽으로 다가선다)  됐어!  (럭키, 멈춰 선다)  생각해!>  <블라디미르: 내일 목이나 매자.  고도가 안 오면 말야>  고도를 기다리다 밤이 되면 그들은 헤어진다.  에스트라공이 매일밤 누군가에게 당하는 폭력은 고달픈 일상이다.  하지만 친구를 만나 같이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은 무기력해도 인생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된다.  반면 포조에게 목줄을 메이고 노예로 살아가는 럭키는 말을 잊은 지 오래다.  포조의 외마디 명령만이 그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


인생은 절대로 계획대로 가지 않는다.  과정은 길고 결과는 순간이다.  과정은 불가해하고 불확실하다.  그래서 일상은 때론 아름답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몸은 지치고 마음은 힘들다.  사랑을 위해 일순간 몸을 던져 대신 총을 맞을 수는 있어도 사소한 언쟁과 무관심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는 견디기 힘들다.  소포의 ‘생각해’라는 명령에 럭키는 무의미한 단어를 나열하면서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이라는 구절을 중간중간 반복한다.  눈이 멀게 되는 소포는 포도주와 담배를 즐긴다.  소포처럼 현실의 쾌락을 탐닉하거나 럭키처럼 타인에게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홀로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세상과 단절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연대해야 한다.  오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화하면서 기다림의 지루함이나 불안함을 같이 이겨내야 한다.



참고도서: 세계문학전집 43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사뮈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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