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대상 시상식(1)

by Honey

쉼 없이 달려온 K리그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면 꼭 치르는 연례행사가 있다.

바로 'K리그 대상'시상식.

(리그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승강 플레이오프는 시상식 이후에 치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6년부터 일반 팬들의 출입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정된 숫자이긴 하나 팬들의 자리도 시상식장 한편에 마련되어 있곤 했다.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제주 원정에서의 우승 여운이 유독 길게도 남아 있던 시즌이 끝나고 열린 K리그 시상식에 나는 운이 좋게도 참석을 할 수가 있었다. 12월의 첫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의 한복판처럼 너무나 매섭게 추웠던 날씨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침 일찍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대전에서 서울행 버스에 올랐고, 서울에 도착해서는 지인들을 만나 시상식장이 마련된 '그랜드 힐튼 서울' 호텔로 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한 시상식장엔 경기장에서 유니폼 입은 모습들만 볼 수 있었던 선수들 모두가 근사한 슈트 차림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힘을 준 채 입장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낯설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반가웠다.

특히나 시상식장에서 만난 우리 팀 선수들의 분위기는 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우승팀이기도 했지만 시상식 각 부문의 후보에 많은 선수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했고 더욱이 수상 가능성까지 높았으니, 모두들 한껏 들뜬 채로 기대감까지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


그러기를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가 입장을 하고 있었으니, 바로 우리의 동국이형.

당시 동국이형은 유력한 MVP 후보였고, 한 경기, 한 경기를 뛸 때마다 새로운 기록이 써지는 'K리그의 살아있는 레전드'라 불리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이건 개인적 견해가 절대 아님)

평소 내 성격은 소심하거나, 부끄럼을 탄다거나 하는 것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동국이형만 보면 못 숨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쭈뼛쭈뼛 말도 제대로 못 하며 부끄러워하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지곤 했었다.

하지만 이런 슈트 차림의 동국이형은 늘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지금이 기회야'

무슨 대단한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나는 동국이형에게 다가가 사진 요청을 했다. 그렇잖아도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은 늘 왜 이모양일까, 할 정도로 피사체로서의 역할이 항상 별로인 내가, 역시나 동국이형 옆에 서니 세상 제일 어색한 표정으로 사진에 찍히고 있었다.


'오늘도 망했어'




당시 시상식은 'K리그 챌린지(현 K리그2)'의 시상식이 먼저 이루어졌고, 하프타임처럼 잠깐의 휴식시간을 보낸 뒤 'K리그 클래식(현 K리그1)'의 시상이 뒤이어 진행됐다.


그 하프타임 같던 휴식시간에 잠깐의 이벤트가 진행이 되고 있었는데..

이벤트 진행자로 유명한 'MC딩동'이 진행을 맡았었고, 그 이벤트의 마지막 순서로 동국이형이 무대에 올랐다. 마지막 이벤트의 내용은 무대에 오른 동국이형이 과연 몇 번의 볼 트래핑을 할 것이냐를 객석에 있는 팬들이 맞추는 거였다. 여기저기서 팬들이 본인들 나름의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고, 그때만 해도 나는 동국이형을 넋 놓고 보고 있느라...... (정신 차려)

그렇게 동국이형 발끝에서 볼 트래핑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 형, 다섯 번의 트래핑 이후에 볼을 손으로 잡아 버리는 게 아닌가..

객석에서 '5'라는 숫자를 외친 이는 아무도 없었고, 더욱이 중간에 볼을 잡는 건 정당한 방식이 아니었기에 2차 시도를 했는데, 이 형이 글쎄 또... 다섯 번을 하고 잡아버린 것이다.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했고, 진행자가 재진행을 위해 멘트를 하던 그 어수선한 가운데 미처 처음에 이벤트에 참여하지 못했던 몇몇의 팬들이 다시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엔 뒤늦게 용기를 낸 나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발성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내가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일곱 개!!"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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