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엔 역시 제주지, (2)
2014년 11월 8일 토요일,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제주는 11월 초의 날씨가 이렇게 추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람은 쌀쌀했고, 날은 흐렸으며, 심지어 빗방울까지 오락가락... 정말 최악의 날씨였다.
'그래, 날씨 다 필요 없어, 우승만 하면 돼, 우승하는 거 보러 온 거야, 됐어, 그거면 돼'
라고 의지를 다잡으며 우린 제주항에서 서귀포에 있는 제주월드컵경기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워낙 갑자기 의미가 부여된 원정인 데다 쉽게 오가기엔 어려운 곳이기에 원정팬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대략 20~30명 정도? (평소 여유 있는 일정이나 좋은 계절과 겹칠 땐 제주 원정도 수백 명의 원정팬이 모이곤 한다) 모두가 역사적인 우승의 현장을 직접 보고자 여기까지 왔을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원정석에 모인 모두가 한 목소리를 냈다.
팀의 승리와 더불어 팀의 우승을 위한.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고, 응원의 목소리는 더욱더 간절해졌다.
경기 내 흐름을 주도하던 우리 팀은, 전반 레오나르도의 골과 후반이 시작되자마자 터진 이승기 선수의 추가골, 거기다 후반 막판 이상협 선수의 쐐기골까지 더해져 3:0 완승을 거두었고, 그렇게 우린 (이제는 약속의 땅이 된) 제주에서 팀 통산 세 번째 우승을 확정 짓게 된다.
'아, 그래! 이거야! 이 순간을 위해 제주에 온 거지,'
경기가 끝나고 나니 해는 점점 저물고 날은 더 추워지고, 오락가락 비까지 맞아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 현장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격스러웠으니까.
구단은 미리 준비한 우승 현수막을 펼쳐 들었고, 선수단과 원정 응원단은 서로를 마주 보며 우승을 확정 지은 '승리의 오오렐레' 세리머니를 함께 했다. 그리고 멋진 기념사진까지.
그리고 그렇게 기쁨의 순간을 마무리하려던 찰나,
후보선수를 포함한 선수단 전원이 (지금도 팀에 있는 단 한 명의 선수를 제외한 열일곱 명의 선수단 모두)
입고 있던 유니폼을 벗어서 원정팬들을 향해 던져주기 시작했다.
워낙 팬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던 터라 대부분의 팬들이 선수들의 유니폼을 하나씩은 받을 수가 있었고,
나 또한 숙소에 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은 울산에서 뛰고 있는 '김기희' 선수의 유니폼이 손에 들려 있었다. 먼 곳까지 와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을 테다.
이렇게 축구만 보러 왔던 1박 2일의 제주행은 아주 완벽한 해피엔딩이 됐다.
경기를 마치고 가진 우리들만의 시간도 지금까지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비에 흠뻑 젖은 대형 걸개를 숙소 발코니에서 말리느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코로나 이전엔 그래도 매년 한 번씩은 가게 됐던 제주 원정 중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때만 해도 전혀 몰랐지,
정확히 일 년 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또 우승을 확정 지을 거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