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승기야,

by Honey

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FA컵 준결승이 펼쳐지던 날.


여름이 끝나갈 무렵의 어수선함이 있었고, FA컵도 지금의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8강전에서 나름의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 뒤에 팀의 성적은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뭐 토너먼트는 승리가 중요하니까, 결과적으로 준결승엔 지금 우리가 올라와 있기도 하고.

(FA컵 8강전에서 당시 내셔널리그(현 K리그3) 소속이었던 '강릉시청'을 만나 종료 5분을 남긴 시점까지 1:2로 지고 있었다. 유독 FA컵에서 희한하게 하부리그 팀에게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던 우리였기에 이번에도 체념해야 할까? 하는 찰나, 당시 외국인 선수였던 카이오가 87분부터 2분 사이 멀티골을 집어넣으며 짜릿한 역전승으로 준결승에 진출한 바였다)


준결승의 상대는 성남FC.

이번에는 김학범 감독이다.

안익수 감독이 지나가고 나니 더 '쎈' 양반이 왔다.

하지만 뭐, 딱히 어려울 것은 없었다.

올 시즌 성남을 상대로 한 리그 3경기에서 단 한경기도 패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 3경기 모두 무실점으로 승리를 챙긴 우리 팀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리그는 총 여섯 경기를 남겨둔 시점에 남은 2~3경기에서 1위를 확정 짓네, 마네를 하는 분위기였고,

FA컵도 오늘의 경기를 이기면 남은 경기는 결승전 한 경기뿐이었기에, 이러다 작년의 포항처럼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우승하는 '더블'을 달성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기분 좋은 설레발들까지도 일찌감치 시작되고 있었다.

(불과 1년 전 그 결승전에서, 그 눈물을 쏟아 놓고서는..)



경기는 정규시간 내내 어느 팀도 득점을 하지 못하며 예상보다 팽팽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역시 토너먼트는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경기 시간이 다 지나갈수록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제발, 연장만 가지 마라, 연장만 가지 마라..'

그러나 정말 가혹하기도 하지..

경기는 정규시간과 연장전까지 치르는 동안에도 '또'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결국 결승진출팀을 가리기 위한 '승부차기'에 들어가게 됐다.


2011년 ACL 결승전 승부차기-패,

2013년 FA컵 결승전 승부차기-패,

2014년 FA컵 준결승전에서, 또 승부차기다..


이쯤 되면 앞으로는 연장전이 시작될 때 그냥 집에 와버릴까?

진짜 어떤 경험에 비유해야 이 느낌이 적절할까?

정말 너무 괴롭고 힘든 시간이다.

더욱이 내가 서있는 바로 앞의 골대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고, 그 결과를 그대로 감당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후유증이 크다.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귀에 선명히 들릴 정도였고, 눈을 똑바로 뜨고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둘 중 하나는 실수를 해야 승패가 결정되는 이 방식은 정말이지 너무나 잔인하다.

(골키퍼가 슛을 막지 못하거나, 키커가 실축을 하거나..)


승부차기는 우리의 선축으로 시작됐다.

우리 팀의 네 번째 키커까지 무사히 킥을 성공, 이어진 성남의 네 번째 키커까지도 모두 슛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각 팀 마지막 키커의 차례,

우리 팀의 마지막 키커는 그 시절 팀의 인기순위 1위였던 이승기 선수,

(한때는 가수 이승기보다 유명하게 만들어 주고픈 누나들의 꿈이 있었단다)

일단 무조건 성공을 시키고 뒤이은 성남의 성공 여부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승기야....................'

짧은 외마디 부르짖음이 끝나기도 전에 이승기 선수가 찬 볼은 골대를 그대로 넘겨 더 높이,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뒤이은 성남 박진포 선수의 킥은 성공.

그렇게 우린 2014년에도 리그만을 남겨둔 채 FA컵과는 안녕을 고해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안타까운 팬들보다도 더 먼저 울음을 터뜨린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마지막 키커로 나서 실축을 한 이승기 선수.

아마 엄청난 자책에서 나온 눈물이었을 테다.

경기의 아쉬움보다 당시엔 그 모습이 더 마음이 아팠다.

이건 순전히 실력이 아닌 운으로 결정된 승패였기에 누군가의 잘못은 더더욱 거론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던 당사자는, 경기가 끝난 그라운드 위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세상 서럽게 울고 있던 것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도착한 숙소에서도, 잠에서 깬 다음날 아침까지도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스물일곱의 승기라 가능했던 일)




광주에서 데뷔를 해 신인상을 타고, 올해로 10년째 우리 팀에서 뛰고 있는 이승기 선수.

한때는 정말 누나들과 소녀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선수였으며,

물론 지금도 많은 팬들이 이승기 선수를 아끼고 사랑하며 응원하고 있다.

그 바탕엔 뛰어난 플레이가 한몫을 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게 한 게 아닐까 싶은데..


결국 가수 이승기보다 더 유명해지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린 언제나 네가 1순위다, 승기야,








<사진 출처-'스포츠조선' 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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