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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Jan 19. 2023

모든 게 변해버린 시간

2020년 새해가 밝아오면서 지난해말, 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이때만 해도 아직 우리나라에선 만날 수도 없는 존재였고, 그저 우리와는 다른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1월 20일, 한국에서도 첫 번째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설연휴를 앞둔 월요일이었고, 정말 이때까지도 이건 그냥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낯선 마음이 만든 경계심이 아닐까 하며 신종플루나 사스, 혹은 메르스 때처럼 서로가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어느 순간 사그라들 바이러스 중 하나라고만 여겼더랬다.

설연휴가 지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람들이 1~2명씩 늘긴 했다. 워낙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라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으며, 1월 말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서로의 거리를 조금씩은 두기 시작했지만,

대한민국의 초기 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되면서 실상은 크게 우려할 정도로 만연한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생활이 조금 불편해지고 지킬게 더 생겼다 정도? 그러니 정말 이때까지만 해도 이 엄청난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손에 소독제를 바르고 체온 재면서 입장할 즈음, 우린 시즌의 첫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경기장 방문 시 주의사항이 미리 공지됐었고, 도착한 경기장에선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하얀 천막에 먼저 들러야만 했다. 그곳에서 체온을 재고 경기장에 입장하는 과정이 그저 번거롭다고만 생각하던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서로가 그저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조심하면 금세 지나갈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2020년 2월 12일 수요일,


시즌의 첫 경기는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와의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 경기였다.

내가 일본에서 제일 좋아하는 도시고, 오늘의 홈경기를 잘 치르면 봄엔 요코하마 원정이라도 한 번 가볼까? 하는 설레는 상상까지 하면서 시즌의 첫 경기를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제일 열심히 뛴 건 골키퍼 송범근 선수였다.

시작부터 거세게 몰아치던 요코하마의 공격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하면서 골키퍼의 선방으로(요코하마의 눈물 나는 골 결정력이 우리를 살려준 것도 같고) 그나마 근근이 버티던 전반 32분, 선제실점을 하고 나더니 이후 5분 만에 자책골까지 내주고 말았다..

이어진 후반전에서는 여기에 더 악재가 겹쳤으니 후반 68분, 손준호 선수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고 만 것이다. 요코하마의 매서운 공격과(골 결정력은 여전히 우릴 살려주고 있었다) 우리 골키퍼의 선방쇼는 계속되고 있었고, 이런 엉망진창 경기가 또 있을까 싶었던 후반 79분, 요코하마 골키퍼의 실수를 놓치지 않은 조규성 선수가 팀의 첫 번째 골이자 전북현대에서의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새싹 같던 우리의 조규성 선수는 이제 세계의 조규성이 돼버렸다)

그런데 축구 정말 끝날 때까지 모르는 거라더니.. 만회골에 기뻐한 지 불과 2분 만에 이용 선수가 경고 누적으로 또 한 번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우리의 선수는 9명뿐이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은 없었고, 경기력만 놓고 본다면 1:2라는 점수의 패배도 다행스러운 결과일 정도였다. (우리 닥공 어디 갔어......)


시즌의 첫 경기인데 이렇게 엉망이라니.. 이 스쿼드로 말이야... [사진출처(우)-'한국일보' 기사 사진]




2월의 둘째 주에 이렇게 시즌의 첫 경기도 마치고, 우리의 일상도 여느 날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코로바 바이러스에 확진됐다는 사람들이 하루에 여전히 1~2명 정도만 나오는 상황이었고, 시작된 셋째 주의 첫날인 월요일엔 확진자가 아예 발생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2월 18일 화요일,

우리나라의 코로나 바이러스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 31번째 확진자를 통한(31번째 확진자만이 사실 문제는 아니다. 이미 접촉한 사람들 중엔 코로나 바이러스를 지닌 잠재적 확진자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도 검사를 통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여러 경로로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종교집단의 기하급수적 감염사태로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의 시대로는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멈추기 시작했다..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불과 30여 명이던 확진자는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다음날에 20여 명, 그다음 날엔 5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더니 3일 만에 하루 100명이 넘어서는 확진자가 나오면서 대구에서 시작된 집단 감염이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2월 말엔 하루 확진자가 800명을 넘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인다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모두의 경계만큼 서로 간의 거리도 멀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스포츠 경기 역시 치를 수가 없게 됐다.

요코하마와의 첫 경기를 마치고, 2주 뒤에 있을 리그 개막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만들었던 걸개들도 그대로 창고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각 구단들도 프로축구연맹의 결정에 따라 리그 개막을 잠정적으로 연기한다는 공지를 띄웠다.





고작 바이러스 하나라고 여기기엔 우리의 일상을 너무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남의 나라는 고사하고 가족들끼리 얼굴도 못 보는 명절을 몇 번이나 보내야 했고, 나는 평생을 해왔던 일의 터전인 직장까지 잃었다. 거리 두기와 인원제한 안에서 단체 손님을 받으며 몇백 석의 좌석 규모를 유지한다는 일은 더 이상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3년에 가까운 시간을 날려버린 것 같이 보낸 지금, 서로가 조금씩 기존의 일상을 되찾고는 있다고 하지만,

나의 그 조금은 억울한 시간들과 잘못도 없이 잃게 된 그것들은 대체 어디 가서 보상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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