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웠어요, 영원한 나의 레전드..
'라이언킹 이동국'
'내 청춘과 낙의 전부였던 축구선수가 있었다.
물론 나의 팬심은 지금도 유지 중이지만......'
2020년 10월 26일 월요일,
코로나 덕분에 먹고사는 일이 위태로웠다. 당시 전주와 군산에 있던 매장들을 함께 관리하던 중이었지만 전주는 이미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고, 군산에 있는 매장에 일이 있어 처리 후 다시 전주로 이동하던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다급한 목소리로 얼른 기사를 확인하라는 내용.. 무슨 일인가 싶어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 휴대폰을 케이블에서 분리하면서 화면을 밝히는 순간, 무수한 알림들을 먼저 볼 수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첫 줄부터 괜찮냐며 나의 안부를 묻던 여러 메시지들 밑에 링크를 보내온 메시지를 먼저 열어보던 순간, 나는 이게 정말 꿈인가 싶었다..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던 소식은 다름 아닌, 동국이형이 개인 SNS를 통해 알린 본인의 은퇴소식이었으며, 뒤이어 수많은 기사들까지도 함께 쏟아지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 동국이형
눈앞이 뿌연 것이 눈물 탓인지, 멍한 정신 탓인지도 모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몇 번이나 기사를 다시 찾아봤고, 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날에도 '내가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꾼 건 아닐까' 하며 기사를 다시 또 확인하곤 했다. 그러기를 다음날 동국이형이 눈물의 기자회견을 하면서 현실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더니 그렇게 울다, 멍하다를 반복하며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 올시즌 리그의 마지막 경기날,
2020년 11월 1일 일요일,
리그 마지막 경기날이자 동국이형의 은퇴식이 치러지는 날이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확정 짓는 날이자 역사적인 리그 4연패까지 함께 달성할 수 있는 날,
그래서 모두가 기다렸을 날이지만 나는 어쩌면 이날이 오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런 날..
10월 중순부터 다시 부분 유관중 경기가 허용되면서 동국이형의 은퇴식을 기억해 줄 팬들도 자리를 함께 할 수가 있게 됐다. 더 다행인 건 기존의 10%가 아닌 전체 좌석수의 25%까지 관중 입장을 허용한다는 것.
4만 명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에서 동국이형의 마지막을 기념해야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만 명에 가까운 관중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길었던 코로나 암흑기에 비하면 감사할 일이었다.
워낙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이었던 터라 동국이형을 사랑했던 많은 팬들이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에 모여들었다. 들어선 경기장엔 빈자리마다 동국이형의 유니폼들이 걸려 있었고, 그 모습에 나는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구나'하는 실감이 나면서 슬픔이 다시 한번 밀려들었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던 경기는 큰 이변 없이 전북의 승리로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더욱이 동국이형의 대체자로 불리던 조규성 선수가 멀티골을 집어넣으며, 아기사자 심바(조규성 선수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이루며 차세대 대표 공격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팬들이 동국이형의 라이언킹에 빗대어 불러주던 별명이었다)가 라이언킹의 은퇴식을 더욱 의미 있게 했다.
동국이형의 말대로 자신의 은퇴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선수가 정말 과연 몇이나 될까?
같은 날, 울산도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하긴 했지만 우린 경우의 수와 상관없이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 지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의미 있는 우승 시상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어진 동국이형의 은퇴식..
나는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본부석 쪽에서 우승시상식을 보면서 대기 중이었다.
동국이형의 은퇴식에서 팬 대표로 꽃다발을 전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울지 말아야지, 오늘은 정말 울지 말아야지'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잔뜩 보인 동국이형의 유니폼에 이미 한번 실패를 했고, 그래도 경기 중엔 꿋꿋이 경기에'만' 집중하자며 제법 잘 참아보고 있었지만(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기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 정신이 차려지면서는 다시 또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우승시상식도 무슨 정신으로 봤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반복적으로 '동국이형 앞에서는 울지 말아야지, 울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만 되뇌고 있었을 뿐..
시상식이 끝나고 은퇴식에 함께 참여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내려가면서도 흐린 날씨의 추위 때문인지 몸은 계속 떨렸고, 정말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까 싶어 줄곧 아랫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은퇴영상이 나오고, 동국이형의 대형유니폼이 입장을 하고,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이 인사를 건네고, 구단의 사장이 영구결번 지정을 발표하는 매 순간마다 애써 눈물을 참았다. 이후 아산의 박동혁 감독이 꽃다발을 건네고 들어오던 순간까지도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동국이형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차례..
내딛는 걸음마다 '웃으며 인사해야지'라고 다잡았던 생각들이 동국이형 앞에 서자 무방비 상태로 무너졌다. 마주 선 동국이형의 눈시울이 이미 붉어져 있었는데 내가 무슨 수로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가 있어......
그렇게 울음을 애써 참던 목소리로 '그동안 행복한 시간들을 만들어줘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를 건네고, 기념사진을 남기고 돌아서던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본인의 은퇴식에서 리그 우승을 이루었던 동국이형은 일주일 뒤, 또 우승 경쟁을 치르게 된 울산을 다시 만나 FA컵 결승전에서까지 승리를 얻으며 선수생활 마지막 시즌을 더블로 장식하게 된다.
여러 비난과 잡음 속에서도 한때는 한국 축구를 먹여 살리며 몸이 부서져라 뛰었고, 여러 번의 위기 속에서도 누구보다 꾸준한 자기 관리로 가장 오랜 시간 그라운드를 누볐으며, 또 가장 높은 곳에서 박수받을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음에 동국이형의 축구선수로서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다.
고3 시절, 그 여름 새벽에 일어나 월드컵을 보면서 '이동국'이라는 선수를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내가 22년 뒤 이 선수의 은퇴식에서 꽃다발을 전하며 인사를 건넬 거라는 생각을 정말 할 수나 있었을까..?
그저 멋진 축구선수로 눈에 띈 동국이형을 통해 축구에 재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팀을 만나고, K리그를 사랑하며 보낸 시간들이 어느덧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준 것 같아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은퇴식과 FA컵 결승전이 치러지고 시즌이 다 끝나는 날들까지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해가 바뀌고 그 빈자리가 눈에 띄면 그땐 실감이 좀 나겠지..?
물론 축구가 계속되는 한 내 등 뒤에 번호는 영원히 '20번'이겠지만..
'내 청춘과 낙의 전부였던 축구선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팬심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동국 그리고 #우리들의레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