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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스 FINDERS Jan 03. 2022

편지에게 쓰는 편지

편지의 오늘, 어제, 그리고 내일에 대해

사람들은 여전히 편지를 쓰고 읽습니다. 문자, 메일, SNS 메시지로 순식간에 연락을 주고받는 시대에 왜 굳이 편지를 쓸까요? 받은 편지를 쉬이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또 뭘까요? 지금 문학계를 관통하는 ‘편지’ 열풍 속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 FINDERS


무기력한 세상을 구원한다: 편지의 오늘

‘누적 조회 수 20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며 화제를 모은 동명의 뉴스레터에서 출발한 서간집(편지를 모은 책)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는 여러 작가가 각자의 언니에게 보낸 편지를 엮었습니다. 뉴스레터부터 책을 기획한 창비의 최지수 편집자는 “메일함으로 한 편씩 보낸 편지를 읽으며 마치 내가 편지 수신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반응이 많았다”라고 말했고요.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출간한 지 일주일도 안 돼 1만 부 이상 팔린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역시 편지 형식의 수필집입니다. 이 둘의 공개 편지 콘셉트를 기획한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자는 “서간문(편지 형식의 글)이라는 고전적 형식이지만 두 작가의 예기치 못한 궁합으로 혼자 쓴 글을 넘어서는 재미와 힘을 준다”라고 전했지요.


독서 펜팔은 어떤가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서로 빌려 읽던 두 명의 저자는 빌린값을 편지로 갚기로 하고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이토록 씩씩하고 다정한 연결>은 혼자만의 짧은 감상에 그칠 뻔한 이야기를 정성스러운 편지 속에 담아 독후감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혼자였다면 결코 닿지 못했을 미지의 탐험을 완수한 두 저자의 경험이 단단하게 느껴져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내밀한 대화가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듭니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묘한 재미와 그 안에 담긴 단단한 힘이 무기력한 일상을 구원해줄지 모르겠어요.



가장 사적인 연대: 편지의 어제

편지는 지극히 사적인 교감을 나누는 개인적 의사소통 수단임에도 단지 개인 안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관계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바꾸는 힘이 편지에 담겨 있기 때문이겠지요. 문학 장르에서 편지의 힘은 더욱 강력합니다. 1920~1930년대 서간체 소설은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 속에서 민감한 문제를 공론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생기는 윤리적 비난이나 책임은 면제받을 수 있었어요. 서간체 시는 묵독해야만 하는 근대시와 달리 낭독을 강조하면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서간체 기행, 서간체 비평, 서간체 수필 등 편지 형식을 빌린 문학 장르는 더욱 확장했고요.


독자는 서로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글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들의 인간적 고뇌에 공감하게 됩니다. 나아가 강한 연대감을 느끼고요.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적 경험 속에 편지의 힘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제비처럼 온다: 편지의 내일

편지가 발명된 이후 사람들의 삶은 변했습니다. 중세 유럽에는 편지 쓰기 안내서가 유행이었는데요. 이 안내서에는 편지로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 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이가 귀해서 편지지의 크기가 부의 상징이 되었고, 이름을 서명한 글씨의 크기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근대적 우편제도가 시작되면서 편지는 일상적이고 평등한 문화가 됐어요. 안부를 묻고 사랑을 표현하고 오해를 풀고 죽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은 오랫동안 편지 쓰는 일에 사로잡혔지요.


느릿한 산책 같던 손 편지는 특별한 행위가 되었고 현대의 보편적 일상처럼 편지도 디지털화됐습니다. 초고속망을 통해 지구 저편까지 순식간에 도착하는 메시지는 편지의 내용과 의미도 바꾸었는데요. 그럼에도 편지에는 신성하고 고유한 진정성이 깃들어 있지요. 편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책 <투 더 레터>의 저자 사이먼 가필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글로 하는 다른 형태의 소통에는 없는 진정성 말이다. 이는 종이에 손을 대거나 타자기에 종이를 돌려 끼우는 일, 두 번 하지 않게 처음에 제대로 하려는 노력, 다시 말해 편지가 봉해진 다음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우리가 안다는 점과도 관련 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사이사이에 찍어두는 쉼표처럼, 어쩌면 우리는 편지를 쓰고 읽는 동안 잠시 쉴 자리를 마련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긱이 드네요. 천천히 돌아가는 두뇌, 손가락 끝을 사용하는 일, 편지지와 펜을 고르는 일처럼 말이에요.



※ 본 콘텐츠는 'FINDERS 파인더스 Issue02. 레터 보내는 사람들'의 수록 콘텐츠 일부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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