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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Oct 31. 2023

“내가 너를 잘 못 키웠어.”

엄마한테 들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네


“내가 너를 잘못 키웠어. 내가 다 받아주니까 그래? 엄마가 만만하지?”




첫째 아이는 좋게 말로 하면 될 것을 짜증과 신경질이 뒤섞인 말투와 무례한 말들로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학교 가기 위해 아침에 치마를 꺼내줬는데, 속바지는 왜 같이 안 주냐며 화장실에서 머리 말리고 있는 나에게 화를 냈다. 마침 내가 친정엄마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잘못 걸려든 거다. 평소라면 힘으로 대치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는데, 아이에게 ‘엄마에게 너무 한 거 아니냐, 엄마가 네 시녀냐, 네가 속바지 찾아 입으면 되지 않냐 ‘ 쏘아붙이고는 왜 대답 안 하냐고도 추궁했다.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아이가 당황해했지만 고분고분하게 죄송하다 할리가 없는 지라 나와 아이의 대치 상황은 남편에게까지 확장된다. 남편은 아이의 신경질 소리에 예민해지고, 감정을 헤아리기보다는 그만하라고 억압하고 처벌하는 방식으로 한다. (남편은 내가 당하는 꼴이 보기 싫단다.) 이렇게 가족의 역동이 일어나는 동안 나의 ‘평안집착증‘에 위기경보가 울리고, 옆에서 아무 잘못 없이 봉변을 당하는 둘째를 보면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드는데, 마치 어린 시절의 나 같아서, 괜히 더 낙심하게 된다.



아침에 아이들을 눈물로 보내고 난 직후에 친정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온갖 원망이 엄마에게 쏟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화내고 무례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이성을 잃었다. 엄마는 나에게 실망했다며 “내가 너를 잘못 키웠어. 내가 다 받아주니까 엄마가 만만해?”라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긴데? 내가 첫째한테 화낼 때 하는 말이잖아. 우리 엄마도 나한테 아주 가끔, 그런 말을 하셨었는데 죄책감이 남는다.



‘그러니까 누가 다 해주래? 누가 다 받아주래?‘라는 반감도 들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엄마의 이슈였던 거 같다. 참을성 있게 다 받아주다가 억울함과 함께 터지는 패턴이 엄마의 삶 곳곳에서 작동했고, 알고 보니 내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허용적 양육과 민주적 양육 그 사이에서, 아주 많이 허용하고 받아주다가 터지는 패턴. 내가 아이에게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다니.




“엄마가 아주 만만하지?” 하면서 억울해하면  


그럼 ‘내가 나쁜 아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첫째는 자신을 ‘화내는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건 내가 물러터져서 생긴 일인지도 모르는데,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러니까 누가 다 해주래?”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 전에, ’ 나는 진짜 나쁜 아이야.‘라고 믿어버리기 전에 나는 내 한계를 잘 인식하고 아이와 공유해야 한다. 바르고 적절한 가르침으로 훈계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아이에게 교훈을 남겨주는 훈육을 해야 한다. 마음에 상처 주지 않으면서 상호 존중의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



많은 엄마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엄마이기 전에 나도 누군가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 양육가치관,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무의식적으로 부모마다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 사랑이 있다. 나의 결핍으로 인해 아이에게 채워주고 싶은 사랑이 있고, 나의 상처로 인해 보듬고 막아주고 싶은 사랑이 있다. 하지만,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이가 나에게 원하는 사랑일 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방임하는 부와 허용적인 모의 조합 아래서 자랐다. 아빠는 자식쯤이야 알아서 잘하도록 내버려두었고,  엄마는 그러려니 하고 모든 것을 받아주었다. 엄마, 아빠가 모두 갈등에 지치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은 따뜻한 관심과 돌봄이고, 평안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태도를 닮아있는 엄마였고, 아이가 내게 원하는 것은 ‘알아서 해’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부모와 나 사이의 관계와 나와 내 아이의 관계를 한꺼번에 살피며, 나를 이해하고 부모로서 나를 직면하는 일은 정직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너무 아프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잘못 가고 있었음을 볼 수 있어야 변화와 성장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자기 검열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한 과정이어야지, 누군가에게 책임과 원망의 화살을 돌리기 위함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것은 한 번에 되지 않는다 혼자 힘으로 안되면 한 배를 탄 배우자와 할 수 도 있고, 협력적인 육아메이트나 전문가를 찾아도 좋다. 우리는 서로 비춰주는 거울이 필요하다. 어렵긴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 분명히 좋은 날이 온다. 어렵사리 성장하여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기특하고, 나 자신을 격려할 수 있는 지점들도 늘어나고 나와 내 아이는 다르고 내 아이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소망이 생긴다. 그래서 육아라는 장기전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나도 성장하고, 아이도 성장하는 결승점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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