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1번 (여, 10세)
첫째 1호는 내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2호에 비해 다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나한테 온 것이 틀림없다. 1호는 기질상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편이고 나는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1호가 무례하게 행동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들이 자기중심적으로 보이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고, 나는 타인의 정서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보니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속상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이런 1호의 기질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것은 단점이 아니며,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엄마인 내가 수용해 준다면 아이는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며 살게 된다.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1호는 다른 사람의 정서에 영향을 덜 받고, 자신의 감정을 잘 간직하며, 객관성을 가지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밀고 나아간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채워지면 힘 있게 나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꼭 그런 면만 있는 건 아니다. 항상 관찰이 먼저 되어야 한다. 1호는 속 깊은 첫째이다. 21개월 때 동생이 태어났는데 한 번도 질투한 적이 없다. 엄마를 도와 동생을 잘 챙기도록 내가 유도한 덕도 있지만, 1호가 동생을 잘 받아들여주었기 때문에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어딜 가도 동생이 다치지 않게 하느라, 엄청 애를 많이 쓴다. 짠하기도 하다. 이건 엄마가 해야 하는 역할이니, 안 그래도 된다고 해도 첫째라는 책임감이 큰 것 같다.
1호가 잘하는 것 :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해력이 좋은 것 같다. 눈치도 빠르다. 무슨 말하는지 다 알아듣는 거 같아서 아이 앞에서 말 조심해야 한다. 또 눈썰미도 좋다. 안목도 있고, 패션감각도 있고! 사람들이랑 금방 친해진다. 적응을 잘한다. 조심성이 있지만, 또 스릴을 즐기는 아이이다. 원칙을 잘 지키는 아이여서, 어디 가나 말썽 안 피운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다.
1호가 작년 여름 초등부 캠프를 참여했다. 캠프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은재는 새삼스럽고, 낯설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고, 낯선 사람들과 조를 이루어 활동하는 데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앓는 소리 없이 감당하는 것을 보고 이 아이의 에너지와 적응력, 씩씩하고 단단한 모습에 놀랍고 기특하고 대견했다.
요즘에는 나의 꿈을 함께 꿔주기도 한다. 9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부동산 전화번호를 찍어서 보내며 ”엄마 스타벅스 옆에 자리 비어있더라. 임대 붙어있는데, 이거 사진 찍어왔어. 전화해 봐. “라고 말한다.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는 나를 보며 “엄마, 준비 다하고 전화하면 늦어.”라고 쐐기를 박고, 엄마 등을 떠미는 아이다. “ㅇㅇ아, 네가 이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엄마가 왠지 정말 내년에는 공간을 오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진짜 신기하고, 웃긴 놈이다.
우리 집 2번 (8세, 남)
2호는 항상 기분의 질이 좋다. 순수하고 밝다. 태어나자마자 집에 와서 너무 잘 적응했던 기억이 나고, 어떤 환경에서도 졸리면 잤다. 누나가 떠들어도 자고, 엄마가 안 재워줘도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으면 스스로 잠들었다. 자기 전에 조그만 손으로 셀프 가슴 토닥토닥 거리며 잠들었다. 누나 때문에 놀이터에 따라나가면 유모차에 잘 앉아있었고, 돗자리를 깔아주면 그 안에서 나오지 않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스타일이어서 외롭지 않게 같이 놀았다. 참 신기한 녀석이다.
내가 1호와 2호를 21개월 터울로 낳았고, 또 그 무렵에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았던 시기였어서 한마디로 엄청난 강도의 육아를 했던 것은 분명한데, 2호가 순한 기질의 아이여서 가능했던 것 같다. 이 아이랑 있으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게 순간적으로나마 가능해진다. 2호는 남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화온이소프라노라는 태그를 달아줄 만큼 하이톤인데, 나는 2호와 이야기할 때 같이 톤을 맞춰서 이야기하게 된다.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 같다. 이상하게 1호에게는 잘 안되는데, 2호에게는 그게 된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2호는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아이이다. 그래서 내가 2호랑 있으면 따뜻함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 엉뚱함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한다. 2호는 나에게 쉼이고 힐링이다. 자기감정과 욕구를 강력하게 표출하는 법이 없고, 오히려 엄마를 살피는 아이이다. 목소리가 조금 화나 있다고 느껴지면 재빨리 감지해서 내가 화온이 앞에서는 더 사려 깊게 말과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엄마한테 같이 놀자고 하다가 엄마가 너무 피곤하다고 하면 '그래? 그럼 여기(소파)에 누워서 좀 자던지!' 하면서 배려해 주는 아이이다. 그런 배려에 깊이 감동을 받으면서도, 아이의 욕구(같이 놀고 싶은)를 미뤄둔 것 같아 항상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2호를 더 많이 배려해줘야 하고, 물어봐줘야 하고, 억울하게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살핀다. 다행인 건 2호가 약하지는 않다. 누나로 인한 맷집이 있어서 유치원 생활할 때 자기 의사 표현도 잘하고, 친구들끼리 갈등이 있으면 나서서 중재를 하기도 한단다. 2호는 우리 집에서 막내지만, 밖에서는 3살 때부터 '의젓하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진짜 웃기는 놈이다.
2호가 잘하는 것: 기억력이 좋다. 눈썰미가 좋다. 금방 찾고, 알아내고, 곤충, 공룡, 한자 이런 이미지를 디테일하게 기억을 잘하는 것 같다. 2호랑 같이 아쿠아리움에 가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게 확인되고, 말씀 암송도 잘하고, 또 기발하고 창의적이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서, 신기하다.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나에게 없는 독창적인 면에 반한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고, 훼손하지 않고 잘 지켜주고 싶다. 또 하나 시작하면 끝까지 한다. 끈기보석이 있는 아이다.
두 아이가 어쩜 이렇게 다른지, 각자 너무 매력 있고, 귀여워!
서로 다른 두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쉽지 않다. 나에게도 선호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의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서로 비교하는 말 하지 않는 것이다. 각자를 따로따로 바라봐주는 것이다. 노력한다고 해도, 볼멘소리를 듣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억울한 일 없게 하는 것이다. 역할의 무게를 아이에게 지우지 않는 것이다. 첫째니까, 둘째니까, 강조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다 안다. 각자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속단해서 말문을 막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의 기대를 아이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로 있으면 족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이다울 때 나는 희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