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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Oct 19. 2023

나는 호락호락한 엄마입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근거를 찾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호락호락한 엄마다. 아이가 무엇을 요구하면, 굳이 안될 것 없으면 해주려고 하는 편이고, ‘안돼’라고 이야기했을 때, 나보다 더 강하고 끈질긴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서 결국 내 뜻을 굽힐 때가 많이 있다. 내 말이 씨알도 안 먹히는 것 같을 때 무기력함을 느낀다. 나는 부모의 말이라면 순종적으로 따랐던 것 같은데, 내 딸은 왜 이렇게 강한 걸까? 못마땅한 마음이 든다.


나는 첫째에게 곧잘 당하는 엄마이다. 얼마 전부터 남편이 나에게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에게 끌려다니는 것 같을 때(마음이 약해질 때), 아이에게 넘어가지 말라(주도권을 놓지 마라)고 옆에서 보조해 주기도 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남편이 ‘내가 아이에게 끌려다니고, 상처받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상황이 생겼다.


딸이 고집을 부려 내가 당하는 꼴(머뭇거리는)을 보자면 남편도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단다. 그래서 남편은 아이에게 엄마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호되게 꾸짖는다.  그러면 나는 어느새 약자가 된 것 같은 비굴함을 느끼고, 남편에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끼어들지 말아 달라 ‘고 말하지만 어쩔 땐 정말 남편이 아니면,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도 있다.


나는 호락호락한 엄마다. 아이를 존중하고, 믿는 마음이 있어 내 뜻대로 밀어붙이거나 통제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많은 일에 간섭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알아서 잘하겠거니,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헷갈릴 때도 있다. 마음이 약해져서, 아이가 뭔가 요구하면, ’ 그래 이 정도도 못해주겠냐.‘ 하고 넘어가 주는 적도 많다. 이렇게 나약한 엄마인 걸 알고 아이가 이 점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속상하다. 허용적인 부모의 딜레마는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호락호락한 엄마여서, 아이를 멋대로 크게 내버려 두고 있나? 아이가 나를 무시하고 있는 걸까? 아이가 나를 이용하고 있나? 일단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최근에 아이와 대화하면서 알았다. 아빠가 오히려 ’ 그래 나중에 한번 생각해 볼게 ‘ 이렇게 말하고, 엄마는 ’ 안돼 ‘라고 말할 때가 많다고 했다. 새로운 지점이었다. 일단 아이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엄마로 인식된 것은 아닌 걸로.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의 기준과 선이 있는 엄마다.


나는 아이를 멋대로 크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곁에 있으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유의미한 시간들을 많이 보냈지 않은가? 그땐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했었다. 지금도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반갑게 맞이해주지 않는가? 많은 것,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욕망을 잘 조절하고, 아이가 안정적으로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두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아이들이 되도록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 삶으로 보여주고,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고, 부지런히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이의 모습에서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언젠가 드러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보여주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들은 아이에게 시간을 통해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너보다 어리다고 해서 동생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것, 등 말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아이에게 속지 말자. 아직 덜 완성돼서 그렇다. 미숙하기 때문에 그렇다.


아이가 오늘 나에게 보내는 무례한 행동, 언어들이 비수가 되어 꽂힐 때도 있고, 나의 취약점이 건드려지면 나도 화가 난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내는 것이 건강한 게 아닐까? 엄마가 화를 내면 아이가 상처받고 와장창 깨질까? 아이가 그렇게 약한 존재인가? 엄마는 언제나 어디서나 곱게,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말하고, 단단해야 한다는 건 어디서 온 생각일까? 아이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선을 넘으면, 엄마도 화가 나는 것을 아이는 오늘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쉽지는 않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엄마로서 성장하는 시간이다. 생후 1년엔 그때에 맞는 고민을, 그리고 지금은 9살 아이를 키우면서 고민되는 부분이 있고, 계속 나는 성장하는 중이다. 내가 과거에 연연해할수록 아이를 대할 때 상처들이 튀어나오지만, 내가 단단해지면 아이와 나를 분리해서 보게 된다. 우리 아이는 나와 다르다. 나와 다르게 자기만의 씨앗을 가지고 자라고 있다. 아이도 나도 같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호락호락한 엄마는 사실은 호락호락한 엄마가 아니었고, 아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였다. 무례하고, 제멋대로인 아이는 사실은 자기표현을 잘하고,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엄마에게 기쁨이 되고 싶고, 엄마를 응원해 주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다부지게 살아가고 있는 고마운 딸이었다. 관점을 바꾸니, 육아 레이스를 달려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육아는 장기 전이다. 참으면서 가지 말고, 그때그때 나를 돌보면서 가야 한다.  오늘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자꾸 무너지는 자리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리고 그 생각은 왜곡되지 않았는가? 왜곡된 생각이 부정적인 감정을 낳는다. 나를 돌보고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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