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법
지난번 큰 마음먹고 태행산 백패킹을 계획하고 올랐으나 아쉽게도 안주인님 호출로 불야불야 오후 느지막이 하산하고 말았다.
그래도 연이은 연휴가 반겨주고 있었으니 이번엔 좀 더 나름 알찬 계획도 구성해 본다.
지난번 태행산 백패킹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른 시간 태행산 정상에 도착 후 독서 외엔 마땅히 할 게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챙겨간 책을 완독이 목표였기에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지만 왠지 부족한 먹거리나 챙겨 오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니 나름 아쉬움이 컸었다.
주말에만 찾아오는 비,
그런데 말이지!
왜! 주말이면 비가 오는 걸까?
말짱하던 날씨도 주말이 다가오면 비 소식이 보인다. 참 알 수 없다. 그렇게 한 여름 하루가 멀다 안고 내렸기에 이젠 마른걸레라도 짤 것 만 같았는데 아직도 내리는 걸 보면 참았던 오줌보가 상당히 컸던 모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비 소식은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로 이어졌고 토요일은 화창한 주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거창한 계획,
낮에는 라이딩도 하고 바다도 좀 볼 수 없을까? 산에서는 불을 못쓰니 회도 좀 사가 정상에서 시원한 맥주와 회 한 접시 먹으면 좋을 것 같은 데란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간다.
강원도 쪽을 유심히 살피다가 내가 사는 화성 그것도 인근에 있는 궁평항이 딱 떠오른다.
아침 일찍 가면 40분 내외로 갈 수 있고 궁평항 수산시장 주차장에 여유롭게 주차도 할 수 있다.
바다도 보고 궁평항에서 유유자적 책도 읽다가 3시 즈음 먹거리를 사들고 인근 산으로 올라간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궁평항에 10시경 도착한다.
지금 와 다시 느끼지만 주차장 바깥에 자리가 있다면 무조건 바깥쪽에 세우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듯싶다.
점심시간이 넘어가면 메어 터지는 인파와 차량들로 2중 주차가 이루어지고 심지어 사이드 잠가놓고 전화도 안 받는 인간들이 도사리고 있다.
다행히 내가 나올 때는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없어 수월히 나올 수 있었다.
바다를 보다,
모처럼 바다를 보니 상쾌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파란 하늘과 제법 쌀쌀해진 공기는 얼마 전까지 기승을 부렸던 늦더위는 싹 잊게 만들어 주었다.
온갖 잡생각들이 한 번에 사라지는 느낌과 모처럼 보는 바다를 보며 정취에 취한다.
그렇게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오늘 챙겨 온 책 '달까지 가자'를 읽기 시작한다.
혼잡,
점심시간이 되어오니 시장기가 돌지만 추위가 밀려와서인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
궁평항 내 곳곳을 탐방해 보는데 1시가 넘어가니 오전의 한산함은 사라지고 왠지 모를 혼잡스러움에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주차장 인근 나무 그늘을 찾아 캠핑의자 펼쳐 놓고 3시가 가까워 오길 기다리는데, 웬일이니 내 자리 쪽이 좋아 보였나 보다 내 옆쪽으로 술판이 벌어진다. 에혀~
얼추 2시 30분 정도가 되어 일단 인근 마트로 가 맥주와 마실 물을 사 온다.
시장 안이 넓으니 꼼꼼히 살펴보고 가격 흥정도 해야겠단 비장한 각오로 수산시장으로 들어가는데 입구 첫 집에서 광어회를 사서 바로 나왔다.
시간은 3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 쪽 튀김류를 판매하던 매장들이 생각나 그곳에 들려 새우튀김과 게 튀김을 섞어 한 봉지 사 온다. (처음엔 맛있지만..)
'그래, 오늘은 이거면 됐어.'
고단한 산행의 시작,
그렇게 궁평항에서 차로 이동 시 얼마 멀지 않은 '해운산'으로 출발한다.
아침에 배낭 무게를 쟀을 때 18.5kg이었다. 여기에 물과 맥주, 안주류 등을 더하면....
올라갈 걱정부터 앞선다.
마땅히 주차장이란 게 없어 요령껏 차량 지나다닐 수 있게 주차하고 올라간다.
두 갈레로 나뉘는데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된다.
이곳의 장점이라면 숨이 목까지 차올라 넘어갈 즈음 도착한다는 것?? 태행산의 삼분의 일정도 느낌인 것 같았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백 패킹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등산객도 한 명도 없었다.
입구에서 오른편이 해지는 방향이라 3시 방향으로 자리를 잡는다.
일단 오후 6시경 텐트를 치기로 하고 의자를 펴놓고 책을 읽는다.
한주가 지났다고 조금 더 쌀쌀 함덕에 내리쬐는 햇볕이 그나마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다고나 할까.
민폐,
나 홀로 전세 캠을 할 줄 알았다.
결과적으론 총 3팀, 4동이 설치되었다.
마지막에 오신 한 분은 병점에서 오셨고 두 분이 함께 온 팀은 용인에서 오셨다고 한다. (용인팀이라고 하지만 한 분은 동탄에서 온듯하다)
이 용인에서 온 한 팀이 5시쯤 도착하여 텐트를 피기 시작했고 나도 5시 30분경 텐트를 설치한다.
마지막 합류하신 병점에서 오신 분은 6시가 다 되어 도착하신다.
텐트 설치가 끝난 용인팀이 바로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산에서...)
난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읽는다.
1시간 뒤 즈음 궁평항에서 사 온 회와 맥주 한 캔을 마시니 몸이 노곤해진다.
밤 8시,
텐션이 올라간 용인팀이 목소리는 올라가고 마치 야영장 온 것처럼 행동하길래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밤 11시,
그들의 여흥은 지칠 줄 몰랐다. 잠을 청하려 했지만 스피커폰으로 통화까지 해대는 터에 그들의 문제, 갈등, 알고 싶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참다못한 병점에서 온 분이 정중히 목소리 좀 낮춰 달라 부탁한다.
밤 12시,
자정 넘어서야 그들의 여흥이 끝나지만 술에 취한 일행의 형이란 사람이 병점에서 온 분 들으라고 은근히 시비조를 붙이는 게 들린다.
나까지 나서면 큰 싸움이 벌어질 듯싶어 그냥 잠을 청한다.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 가지 않아 조용해졌다.
새벽 1시,
엄청난 코골이 소리가 들려온다. 이쯤 되니 정신병이 올 것만 같았다.
새벽 5시,
병점에서 오신 분이 서둘러 하산하신다.
새벽 6시,
나도 서둘러 짐을 싸고 내려가던 찰나 그나마 간밤에 소란스러움이 미안했는지 용인팀 동생이라는 사람이 내게 와 사과를 한다.
이름도 외운다. 어디서 일하는지 월급이 얼마인지도 알 정도이니.
아직 그 형이란 사람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차에 짐을 싣자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조금 뒤 비는 제법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
난 휴식을 취하며 근래 복잡한 마음을 비우고자 간 거지 쓰레기를 처리하러 간 게 아니었다.
살면서 남에게 피해 끼치고 살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기본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그들을 생각하노라면 아직도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다.
비가 제법 쏟아지지만 그냥 들어가는 것보다 자주 가는 호숫가로 찾아가 잠시 마음을 추스른다. 잠도 거의 못 잔 터라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지만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금세 마음이 진정된다.
그래, 오늘 또 하나 배웠다.
참아내는 법을.
글, 사진ⓒVO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