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필요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내게 있어 독서는 '자기 계발서'와 '전문서적'으로 그 범위가 상당히 제한돼 있었다.
대부분 회사생활에 도움 될 만한 책들을 1년에 한 두권 정도 구입하였고, 업무에 필요한 전문서적이었기에 독서라기보다는 학습(學習)에 가까웠다.
막상 서점에 가 소설책이라도 구입하려 해도 도통 무슨 책을 사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결국 빈 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작년 10월 경부터 자존감 회복을 위해 장거리 걷기를 하며 무료함과 근심을 달래고자 오디오북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디오북에 대해 내 주변을 반응을 살펴보면 책 읽기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독서 수단일 뿐이지 독서로 보지 않는 경향이 종종 보인다.
새로운 장소를 걸으며 자칫 길이라도 헤매기 시작하면 순간 장면을 놓쳐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으니 다시 듣길 반복하는데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오디오북을 통한 독서로 말로만 들어왔고 꼭 읽어 보리라던 김진명 작가님의 '고구려 1 ~7권'을 완청 하게 된다. 이후 자연스럽게 장면들이 그려지고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몰입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던 나로선 감동적인 힐링 소설에 좀 더 열광하게 되고 멋 모르고 접한 책이 장르 문학임을 알게 되며 또 하나의 재미를 느낀다.
그렇게 몇 개월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디오북과 함께 하며 종이책(전자책)과의 경계가 허물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디오북이 만들어준 집중력은 종이책(전자책)의 빠른 독해력을 불러와 종전 문자만 보면 졸음이 쏟아지던 내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다만, 신체활동(걷기, 운동)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기에 눈으로 읽는 독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디오북 콘텐츠도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르니 종이책(전자책)도 병행하며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접하게 된다.
작년 말까지 대략 20권이 넘는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독서가 주는 이로움보다는 그저 나를 위로하고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는 수단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완독량이 늘어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있다면 나약했던 정신력이 강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쉽게 상처받고 좌불안석 일색이던 나로선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책을 완독 했을 때는 단순한 느낌 정도만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기록했었다. 이도 시간이 갈수록 점차 글자 수가 늘어가고 나름 리뷰의 모양새가 갖춰가기 시작한다. 한번 보거나 듣기로 끝낸 경우 짧은 리뷰에 그쳤지만 완독 후 다시금 책을 훑어보게 되면서부터는 줄거리도 요약하게 되고 내 생각이 적절히 가미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남긴 리뷰의 책들은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게 이야기가 그려지고 감동이 남아 있다.
그렇게 2022년도 100권째 완독서 '하얼빈'을 10월에 정독하며 서두에도 썼던 독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9월, 10월은 '새기는 독서'를 목표로 하였다.
최소한 오디오북으로 청취한 책은 전자책이나 종이책으로 구매하여 재독 하거나 종이책이나 전자책은 '플래그'나 형광펜으로 표시하여 되새기는 독서를 시도한다.
확실히 이런 시도를 통해 완독 후 리뷰 시 종전과는 달라진 구조 형태를 만들고 좀 더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을 가진 문장을 쓰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기 시작했었다.
어떤 책은 절반도 읽지 않은 채 한 달이 지나 다시 펼쳐도 그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니 많을 땐 3~4권까지도 벌려 놓기도 했었다.
지금도 월평균 7~10권, 지난 10월은 12권으로 마무리하며 내게 있어 독서는 몸에 베인 습관이 되었음이 느껴진다.
지금 친한 친구에게 올 초부터 오디오북을 권했었고 이제야 재미를 느끼기 시작해서인지 근래에는 한 달에 한번 조우하며 독서모임 자리를 가지곤 하는데 그의 변화되가는 모습을 면 나와 같은 전처를 밟고 있음이 느껴진다.
독서량이 늘어갈수록 책이 내게 준 선물은 심약했던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