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은 선조 26년(1593) 7월 임진왜란 중에 전라도 관찰사 겸 순변사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근왕병 2만여로써 이곳에 진둔하여, 왜병 수만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이 독산성의 큰 결점은 물이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세마대(洗馬臺) 전설이 내려온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왜병이 이 벌거숭이 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물을 한 직 올려보네 조롱하였다고 한다. 이때 권율 장군은 말을 끌어다 흰쌀을 말에 끼얹어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왜군으로 하여금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여 왜군은 퇴각했다는 설이 전해온다.
병점으로 이사 온 지도 십수 년이 흘렀다.
처음 이사 올 당시 산악자전거에 심취해 있었기에 이사 첫날부터 병점 일대를 기웃거리며 나만의 코스를 만들어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이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며 취미생활은 뒷전으로 밀리고 강산이 변했다.
작년부터 본격적인 걷기 활동이 시작되었다.
주말이면 20~30km는 기본으로 걸으며 그 옛날 밟았던 코스들을 다시 답사해보는데 당시만 해도 시골 풍경의 논과 밭이었던 곳들엔 대부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심지어 독산성 세마대 코스 입구도 전혀 다른 모습의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급격한 변화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밀려온다.
집에서 나와 독산성 세마대 코스를 걸어서 돌면 대략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작년 말경 엄동설한에도 독산성으로 줄넘기를 하러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나도 이해가 안 되지만..)
올 4월 경 자전거를 들인 후 라이딩만 하다 보니 당연 도보여행이나 산행은 등한시하게 되었다.
올여름은 내가 자전거를 탄다고 소문이라도 났는지 여름 내내 비가 온 것 같다.
모처럼 파란 가을 하늘의 화창한 날씨를 보노라니 독산성 세마대가 떠오른다. 그중 독산성 내 세마대지 일대를 걸으면 멋진 경관을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3~4시간이란 시간이 이제는 은근히 부담되니 이번엔 자전거를 타고 가볼 생각을 한다. 어차피 내 작은 자전거로는 산에선 끌고 다니고 세마대지는 자전거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니 접어서 들고 다닐 생각으로 이른 아침 독산성으로 출발한다.
숯불닭갈비집 옆으로 샛길이 있어 그리 평상시 다녔는데 그 옆쪽으로 산책로 정식 계단이 있긴 하다. 자전거를 끌고 간지라 나름 머리 썼는데 안 온 지 몇 개월이 흘렀다고 식당 뒤편이 개발되고 있었다.
초입부터 헐떡이며 열심히 끌고 올라간다.
이 코스가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지만 산악자전거가 지나갈 때면 은근히 신경 쓰이고 짜증이 유발된다.
그 옛날 내가 타고 다닐 땐 몰랐지만 막상 내가 등산객 입장이 되다 보니 이어폰 끼고 다니다가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자전거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니 여간 인상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조그만 자전거 열심히 끌고 다니니 안쓰러운 시선이 도처에서 느껴진다.
독산성 중간 지점인 주차장 부근에 다다랐을 때 보적사로 오르는 업힐 구간이 나온다. 한창 자전거를 탈 때만 하더라도 여유롭게 오르던 구간이라 이날도 자신감에 자전거에 올라 생각지도 않던 업힐을 시도한다. 아스팔트 길의 업힐은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기에 나름 산행이 업힐 도전으로 바뀐다.
빨래판,
전에 몰랐었다.
일반 자전거들은 바퀴가 크다 보니 차량 미끄럼 방지를 위해 만든 오돌토돌 빨래판이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았었다. 그런데, 작은 나의 자전거는 바로 "야!! 안돼!!" 하는 듯 바로 신호를 보내준다.
웬 간격이 그리 넓은지 어딘가에 빠졌다 간신히 헤집고 나오는 느낌이 갯벌에서 빠져나오는 느낌도 든다. 중간 정도 올랐을 까 마침 뒤에서 차량 한 대가 올라오고 안전을 핑계 삼아 냅다 내려준다.
오늘은 가을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산행이니까.
보적사 입구에 조그만 성벽 입구로 들어가면 사찰 앞마당이 나오고 이곳을 기준으로 한 바퀴 돌며 세마대지의 멋진 관경을 감상할 수 있다. 처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 동그랗게 연결되어 있단 생각을 하지 못하고 걸어도 걸어도 같은 자리로 돌아와 무척 당황했었다.
늘 양산봉 정산 쪽으로만 가다 세마대지를 처음 본 순간 탁 트인 전경과 멋진 풍경에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했었다.
근데 이날의 실수라면 세마대지 내에서 열심히 자전거를 들고 다녔다는 것.
근래 오른쪽 팔꿈치에 엘보가 오기 시작했는데 이 작은 자전거를 가방에 넣다 뺐다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작고 앙증맞게 보이지만 사실 은근히 무겁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상한 산악행군이 시작된다. 산행 초입부터 세마대지를 돌며 내내 헐떡 병에 시달렸다.
하지만 세마대지에 들어서고 정상에서 본 멋진 가을 하늘은 산행의 고통을 순간 잊게 만들어 준다.
하산은 세마대 코스 중심부 주차장에서 오른편인 임도코스로 내려갔다. 이쪽으로는 언 10년 만에 내려가는 지라 거리감이 거의 없었다.
소보루빵 같은 길은 오돌토돌이 아닌 우들투들.. 덜.. 덜.. 덜.. 이 한참을 지속되고 심지어 꽤나 긴 거리를 내려가야 하니 브레이크 패드가 지우개 쓸리는 느낌 또한 든다.
그렇게 긴 하산길을 맛보며 독산성 세마대 입구로 나온다.
인근에 마땅한 대중교통이 없어 애매한 상황이라 가끔은 대중교통으로 복귀하고 싶어도 한참을 걸어 세마역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럴 때 작던 크던 자전거의 진가가 발휘된다.
모처럼 체력단련 같은 이상한 산악 행군을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정상에서의 멋진 경관을 감상하고 있노라니 쌓아 두었던 근심 걱정을 하나둘 털어버릴 수 있었고 마지막엔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