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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유진 Jul 02. 2022

La vie en France - 한 여름의 그늘

02. 남겨진 사람

서지가 안소피 할머니에게 연락을 취한 건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이었다.

"알로"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안소피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지는 자신이 3개월 전 할머니네 집에서 2박을 한 한국 가족의 막내 딸이라고 자신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서지의 설명에 안소피 할머니는 기억이 돌아온 듯 서지의 근황을 물었고, 서지는 할머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그동안 연락을 먼저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서지에게 안소피 할머니는 별일 아니라며 서지가 묻기도 전에 퐁텐블로에 다시 오고 싶냐고 물었다.

그렇게 서지는 퐁텐블로에 다시 가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에어비엔비를 예약한 손님으로 가는 게 아닌 할머니의 개인 손님으로 말이다.

안소피 할머니는 퐁텐블로 시내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동네에 정원이 딸린 큰 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두 채로 분리하여 한 채는 Gîte [지트], 그러니까 에어비엔비로 운영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내려놓은 서지는 퐁텐블로에 지인이 생긴 것 같아 기뻣고, 그 지인 덕에 잠시나마 파리를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또 한번 들떳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한 주를 보내고 금요일 저녁 7시 반 정도가 되자 입사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서지는 그저 팀원들이 다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사무실 책상 아래에 숨겨둔 배낭을 꺼내어 회사앞에서 파리 리옹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7월 말의 파리의 풍경은 여전히 활기로 가득 찬 듯 보였다.

그렇지만 서지는 알고 있었다.

파리지앙들이 없는 파리.

휴일인 7월 14일, 프랑스혁명 기념일을 기준으로 파리지앙들은 하나둘씩 파리를 두고 프랑스 서부로 혹은 남부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관광객들이 메웠다.

하지만 관광지를 제외한 주택가의 창문과 발코니에는 갈색빛으로 바짝 마른 식물 화분 몇 개만 보일 뿐,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여름휴가로 3주간 문을 닫는다는 푯말을 걸어놓은 빵집과 식당 역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매일 가던 빵집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 만큼이나 괴로운 것이 가스, 전기 점검때문에 완전히 쑥대밭이 된 동네를 여름 내내 걸어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인적이 없는 틈을 타 가스, 전기 점검을 해야 한다며 여름이면 파리의 콘크리트 도로들은 어김없이 뒤엎어져 있었고 남겨진 사람들은 공사판으로 변한 자신들의 아파트 앞 거리를 보며 담배를 피워댔다.

서지 역시 이 여름에 파리에 남겨진 괴로운 사람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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