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키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이 규칙적이 된다. 아니, 규칙적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이어야 개를 키울 수 있다는 쪽이 더 맞는 상황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해 질 녘 초저녁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인 금성을 '개밥바라기 별'로 부른 것도 저녁때 강아지들의 밥 챙겨주는 시간에 마당에서 늘 볼 수 있는 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밥바라기'라..... 마당에 묶여 밥 주는 시간만 기다리는 개를 상상하니 낭만적인 이름이면서도 서글픈 느낌도 든다.
고양이도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기는 매 한 가지지만 먹이 문제에서 자기 조절 능력을 거의 대부분 박탈당한 개들과 달리 고양이는 많은 경우 자율급식이 가능한 편이다. 사실 제 마음대로 사냥하고 살아가던 고양이들이 집으로 들어와 살면서 사람이 주는 밥에만 의존하며 살게 된 것도 실상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이집트부터였다고 하나, 그 시절부터 쭉 고양이는 반쯤은 사람 그늘에 살면서도 반쯤은 자유롭게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그 대가로 인간의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목숨줄을 잡힌 개들과는 입장이 조금 달랐다. (키워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다 경험했을 테지만) 평온하게 늘어져 있다가도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면 자기도 모르게 발톱을 세우고 자동 앞발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나 없을 때 혹시 바선생 나오더라도 잡지 말아 주렴. 제발~'하고 속으로 기도하게 된다. 아무리 순해 보이는 고양이라도 치명적 살상능력과 운동능력은 기본 탑재, 반드시 '먹기 위한' 목적이 아니어도 다른 이유로 사냥을 한다. 사실 인간 쪽에서 고양이에게 먼저 구애를 한 것도 처음에는 이 사냥 능력 때문이었다.
BBC의 고양이에 관한 다큐 "고양이의 비밀생활"에서 본 기억인데, 한 마리의 집고양이가 그 동네에서 1년간 잡은 새, 설치류, 소형동물 개체수를 합했더니 한 동네 고양이 전체가 만약 그만큼을 사냥한다면 매년 멸종위기종 하나씩이 사라질 수도 있을 정도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던 연구자가 있었다. 한 노부인의 집고양이에게 GPS를 달아 추적해보니 녀석이 평소 커버하는 전체 동네 면적은 약 3km 제곱에 달했다. 이처럼 고양이는 Domestic 이면서도 여전히 반쯤은 바깥 세계에 한 다리를 걸친 야생성을 잃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서울 안에서 야생성을 유지시켜주고 싶어도 외출묘의 정체성을 살려주기는 여간해선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일단 조용한 주택가라서 느긋한 고양이의 영역 순찰에 적합한 동네라 쳐도, 서울 같은 메트로 폴리스에서는 동네 안에 동네 사람들만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언제 어디서 쌩~ 달리는 외부 차량이 고양이를 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오염된 물, 야생동물이나 곤충을 잡다가 A형 간염이나 기타 알려지지 않은 병균의 보균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나 같은 쫄보는 애초부터 고양이들에게 바깥세상은 포기하고 집 안에서 이런저런 변화된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생각을 정했다. 영역 길고양이를 집고양이로 받아준 지인의 경우 그 애가 너무 울어대는 통에 계속 집에 가둬 둘 수가 없어 본인 불편을 감수하고도 외출 묘의 본성을 지켜주고 있는데 그 간접경험도 내 걱정을 강화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마포 성산동 조용한 주택가 안이지만 잔 부상은 수도 없이, 부러진 다리 대수술 두 번, 한 녀석은 엉뚱하게 남의 집 옥상에 갇혀있던 통에 일주일간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경험 후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녀석을 구출하다 집사가 천당 갈 뻔한 일도 있었다. 나 같으면 한 번 경험으로도 심장이 터져버렸을 일이었다.
쫄보 집사 만난 탓에 변화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나마 제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먹을 것뿐이라 주식과 간식을 변주하는 식단 구성은 노묘를 모시는 집사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노랑이는 대부분 잘 먹는 편이고 까망이는 매우 까다로워서 잘 먹던 간식도 그날그날에 따라 기호가 바뀌어 거부하거나, 떠 먹여주면 먹고 혼자 먹도록 종용하면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획 돌아 가버리기도 한다.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다. 기본적으로 홀리스틱 휴먼 그레이드 건사료는 'indoor' 고양이들을 위한 다이어트 사료로서 자율급식 중이다. 만성 변비 때문에 최근에는 장운동에 도움 되는 처방 사료를 반씩 섞어서 급여 중인데, 상당한 가격만큼 효과는 확실한 편이었다. 변비가 심했던 노랑이의 경우 정상적인 맛동산을 내놓고 있고, 그보다 덜했던 까망이의 경우 엄청나게 큰 사람 아기 똥만 하게 내놓고 있다. 오히려 먹는 것보다 많이 배출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요즘은 자율급식에 반씩 섞는 대신 까망이에게는 이빨과자 먹일 때 변비 심한 노랑이에게만 더 따로 급여하려고 하는 중이다. 하지만 '인테스티널 화이버 리스폰스' 처방 사료가 기호성도 너무 좋은 바람에 한 번 맛본 까망이도 원하는 눈치여서 완전히 중단하진 못하고 주사료와 3:1 정도로만 줄여 섞어주는 중이다.
그 외로 아침에는 그리니즈 이빨과자, 점심경에 오메가 3 츄르 또는 육포, 저녁에는 닭가슴살이나 캔 주식, 또는 진공포장 고등어나 연어 같은 습식 먹이를 급여하곤 한다. 최근 1년여 기간 중 12+ 노묘들을 위한 로얄캐닌 파우치형 주식이 추가되었다. -이 루틴을 확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와 실패로 지워진 쇼핑리스트가 많았는지 모른다.-
이슬람의 전승 이야기 중 고양이는 모닥불이 꺼진 후 온기가 남은 재 한 줌에 마법사가 숨결을 불어넣고 하늘의 별 두 개, 재 속에 남은 불꽃으로 빚어낸 생명이라고 한다. 밥때가 되었다고 고양이 체면에 노골적으로 졸라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노랑이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집사가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거나 아예 정신을 놓고 뭔가 벌여놓은 일을 정리할 기미조차 없으면 -이대로 뒀다간 기다리는 참치캔 대신 건사료를 먹어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꽤나 고혹적인 표정으로 다가와 제 몸을 내게 비비거나 작은 소리로 불만스러운 소리를 내곤 한다. 괭이밥 바라기 별은 없지만 꽤나 정확한 시간 규칙에 따라 고양이들도 자신의 기대치에 맞는 저녁밥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릴 때의 나는 들어본 적 없고 유난히 입이 짧았던 동생이 주로 들었던 말로, 외할머니가 하시던 말씀 중 "그렇게 깨냉이(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고양이를 부르는 방언)만큼 먹으면 키 안 큰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 아기 시절 우리 고양이들의 먹성을 보고 나는 할머니가 고양이들이 얼마나 많이 먹는지 잘 몰라서 하신 말씀인가 보다 싶었다.
Freeze! 언제나 자기 물보다 내 물을 탐하는, 물 취향조차 까탈스러운 까망이. 한창 자랄 나이의 사람 아이들이 그렇듯, 13년 전 당시에는 가리는 것도 없이 두 마리 모두 제 몸뚱이만 한 주식 캔을 먹고도 모자라 그릇을 깨끗이 핥아 설거지 해놓은 그릇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지금은 그때 몸집보다 몇 배나 커졌지만 먹는 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가리는 것 없이 기회만 있다면 얼마든지 폭식하던 어린 시절에 비해 입도 짧아지고, 취향도 생기고, 투정도 수준급이 되어 가끔은 집사를 시험에 들게 하기도 한다. 개들처럼 밥을 바라고 기다리다 꼬리 치고 반기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차려준 밥, 양껏 먹어주기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