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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u May 17. 2022

노묘의 시간

9화. 치유하는 털 뭉치들

 인간이 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산다면 생물학적 기준의 사춘기가 끝난 직후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삼백 년 전에 불과한 17~18세기까지도 평균수명이 38살에 불과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 지금은 남자 80세 초반 여자 80세 중반의... 전 세계에서 수위에 속하는 장수국가인 우리나라. 통계의 함정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한국, 서울, 여성임을 고려하면 어쨌든 나는 35년을 훌쩍 상회하는 기대여명을 갖는다. 두렵고도 은혜로운, 저주이자 은총이다.

  고양이들은 인간 우세의 "도시"라는 공간이 만든 부비트랩에서 길고양이로 살 경우 온 갖가지 이유로 2년 이내의 짧은 생을 산다고 한다. 물론 전 세계  도시 고양이 전수조사를 한 것도 아니고 이 기준이 공인된 어떤 조사기관의 자료도 아니니 믿을만한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래 도심 속 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맘 캣 대디들의 경험적 통계 상, 2년 "미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냥 먹이활동을 하며 야생에서 잘 살아가면 7~8년 정도의 삶을 살던 고양이들이 인간의 보살핌을 받으면 15년 정도의 긴 안정적 삶을 사는 것도 대단한 성취라면 성취겠으나 그 표리에 있는 길고양이들의 지나치게 짧은 삶은 굳이 들추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잔인한 현실이다. 하지만 역시 자연수명이 15년 이상인 돼지나 소, 닭도 2년은커녕 수컷들의 경우 대부분 태어나자마자, 암컷들도 6개월에서 1년 반 사이 대부분 도살되는 것은 아예 인지되지도 않는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무섭고 엄혹한 영향 말이다. 세포분열에 불과한 어떤 활동도 숙주의 생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모두 그냥 살려고 하는 작용들의 연쇄 안에 어떤 삶과 어떤 생명은 다치고 갈려나간다. 소리라도 지를 수 있고 반항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일지 모른다. 인지되지도 않고 애도하지도 않는 죽음은 도처에 있다.

 


  몸의 이상을 경고받고 우울하기 그지없는 어느 날, 여느 때보다 다정하게 고양이들이 내 팔과 배에 몸을 붙이고 눕는다. 따뜻하다. 갸릉갸릉 소리까지 더하니 차분해진다. 실제 고양이의 횡경막 떨리는 소리는 인간의 뼈 생성과 재생에 유의미한 효과를  준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 있다. (뼈 환자들아! 고양이를 고아먹을 생각 말고 키우며 숭배하란 말이다!!!) 러시아에서는 자기가 고양이를 키우지 않더라도 이사할 때 만은 남의 집 고양이라도 빌린다고 한다. 이유는 새집에 고양이를 풀어놓았을 때 고양이가 제일 먼저 배 깔고 눕는 자리가 주인의 침대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아마 고양이들이 얼마나 안정적인 주변 환경에 민감한 동물인지 알기 때문에 생긴 미신일 게다.  잠 가루라도 뿌리는 지 나른함을 전염시키는 고양이와 함께 살면 강퍅하기 그지없는 인간도 조금은 여유란 걸 알게 된다. 잠을 잘 자니 생각도 정리되고 침착하게 사니 화 날 일도, 분란에 휩싸일 일도 줄어드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당한 자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존재의 위로가 무슨 도움이 될까. 놀랍게도 그보다 효과적인 위로를 나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14살 할아버지 할머니 고양이들이 마치 중년의 나에게 "별 일 아니여.... 괜찮을 거야"하는 것 같은, 그 순간의 치유는 다시 정신 차리고 자리 털고 일어나 일상을 지탱할 힘을 준다.


 옛날 한때 유행했던 치유 시리즈 책이 있었다.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치킨수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시", 어떤 이에겐 가족, 자원봉사나 헌신일 수도 있다. 그게 나에게는 "우리 털 뭉치" 고양이들인 것 같다.


약간 마른 몸매 길게 기른 손톱, 어딘가 슬픈 검은 눈동자 붉은 카펫트와 인도산 인센스 칭칭 휘감기는 시타 연주. 까망이를 보면 "키치죠지의 검은 고양이"(델스)가 떠오른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서 정말 다행인 것은 어떤 불행을 만나더라도 그 불행 안의 나만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아이들에게 나는 온 세상이니... 내 영혼을 치유하고 굳세게 만드는 존재들. 너희들의 대학 졸업까지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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