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특히, 옷은 더 그러하다. 한 계절을 보내고 옷을 정리해 넣어둘 때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까지 한데 모아 옷장에 나란히 걸어 둔다. 언젠가 한 번은 꼭 입을 것만 같아서다. 그러면 결국 다음 해에 그 상태, 그대로, 그 자리에 걸려있는 옷을 발견한다.
한때 디클러터링(decluttering) 영상이 유행했다. 필요 없는 물건을 과감하게 버리는 사람들의 영상이었다.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정리함에 물건을 여지없이 쓸어 담는 모습을 보고 대리만족을 했다. ‘그래, 물건은 저렇게 정리해야지’ 다짐하고 집 안을 둘러보면 버릴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애초에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들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필요 없는 물건을 잘 버리는 것이다. 후자가 자신 없는 나는 전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읽다 좋은 팁을 얻었다. 여행 가방을 쌀 때 여행 도중에 버릴 수 있는 옷을 챙긴다는 구절이었다. 정리해도 무방한 티셔츠, 양말, 속옷을 가져가서 하루 입고 버리는 식이다. 입은 옷을 다시 가방에 구겨 넣을 필요 없고, 짐도 줄일 수 있다니. ‘아하’ 모먼트였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명분이 필요한 나로서는 여행은 아주 좋은 명분이었다. 그 뒤로는 여행을 갈 때 버릴까, 말까 고민했던 옷을 챙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남편도 여행을 기다리며 정리할 옷을 모아놓는다. 그리고 여행에 가서 캐리어를 열 때면 한 번만 입자는 생각으로 옷을 꺼내든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가져간 옷을 다시 챙겨온 적은 없다.
몇 해 전, 절친 부부가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떠났다. 둘이 달랑 배낭을 하나씩 메고 출국했다. 평소 꾸미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어떻게 짐을 추렸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는 현지 프리마켓에서 옷을 사 입고, 그곳을 떠날 때 다시 프리마켓에 입은 옷을 되팔았다고 했다. 노래를 다운로드 받아야지만 내 것이 됐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데, 음원 플랫폼의 스트리밍을 이용하고 모든 노래가 내 노래가 되는 경험을 했을 때의 기분이랄까. 친구는 프리마켓을 옷장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여행 가방에 생긴 빈 공간에 새로운 물건을 채워온다면 미니멀리스트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는 있지만, 적어도 계획 있는 여행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