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계획을 세울 때 빠지지 않았던 목표, 10킬로 마라톤 뛰기. 두 번의 임신과 출산으로 보다시피 과거형이 되었다. 그래도 언젠가, 머지않아 다시 도전하고 싶다. 한때 1년에 한 번 메달 모으는 재미로 마라톤 참가 등록을 하고, 디데이를 잡아 한강을 뛰곤 했다. 큰 준비 없이, 긴 시간 할애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운동이라 달리기를 좋아한다.
출장을 가며 러닝화를 한 켤레 챙겨간 적이 있다. 9시부터 6시까지 꽉 찬 회의 일정으로 보통은 빈틈이 없는데 혹시 몰라, 싶어 짐 가방에 넣어두었다. 3박 5일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아침, 조금 일찍 눈이 떠졌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덕분’이었다. 같이 출장 간 동료와 조식을 먹기로 한 시간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6월의 워싱턴이었는데, 추운 겨울이었다면 아마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청했을지도 모른다. 맑은 날씨의 채근에 힘입어 그날은 조금 부지런히 움직여보기로 했다. 러닝화를 질끈 메고 밖으로 나갔다.
운동은 시작하기까지가 힘들다. 숙소 밖으로 나가 숨을 들이마시자마자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몸과 마음 모두 뛸 준비가 되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포토맥강을 바라보고 뛰기 시작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것보다 강을 끼고 달리는 편이 더 상쾌해서일까.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도 한강, 런던에서도 템즈강, 달릴 때 늘 강을 찾곤 했다. 키브릿지 다리를 건너다 뒤를 돌아보니 꽤 많이 달렸다.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딱 긴 비행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활력을 얻었다.
「진정한 심플라이프, 휘바 핀란드」라는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적어두었다. “순간은 ‘아주 짧은 동안’이지만, 그 순간이 모이면 일상이 만들어지고 인생이 완성된다. 거르지 않는 매번의 식사, 누군가와 나누는 소소한 대화, 걷는 한 걸음걸음, 숨 쉬는 호흡마저도 의식하고 소중하게 여긴다면 매일이 풍유로워지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
동네 한 바퀴로 마음을 다잡고 하루를 오롯이 즐기며 살아냈다면 정말 그 하루, 하루가 쌓여 멋진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뛸까, 말까 고민스러울 때 가방 안에 넣어둔 러닝화 한 켤레가 꽤 괜찮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