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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바다 Oct 11. 2023

사랑과 번영의 바다여신 '영등(靈燈)' _ 마지막편.

'영등 할망'(제주신화) 각색.

사랑과 번영의 바다여신 '영등(靈燈)' _ 4편


3편(브런치북 '도시처녀 우도살이')에서 이어집니다.



잠시 후 -

 

영등은 돌고래들과 함께 뾰족섬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도깨비는 

풍장의 손에 잔혹하게 죽은 후였다.


죽은 도깨비의 영혼은 슬픔에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허공에 흩어졌다. 


그러나

아직 하늘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영혼이었기에 

한데 뭉쳐지지 못한 채

물거품처럼 흩어지고 사라졌다. 

허공의 안개처럼..

 

도깨비의 살점을 뜯어먹으려 찾아온 까마귀떼가 

뾰족섬을 뒤덮었다. 



흩어지는 도깨비의 영혼을 보며 

영등이 뾰족섬에 뛰어 올라왔다. 

 



“ 어부님..!  풍장 어부님..! ” 



 

풍장은 갑자기 나타난 영등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곤 감격에 찬 얼굴로 영등을 꽉 끌어안았다. 


 

“영등 아씨!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기다렸는 줄 아시오!


이리 멀쩡히 살아있으니…

참으로.. 

참으로 다행이오…“ 



 

그러나 

영등의 마음은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식어갔다.



“풍장님…   

과거

새끼물고기들을 다시 바다에 놓아주던 

당신의 마음은...  

진실이 아니었군요. 


그저… 

당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가면 속의 모습이었을 뿐인가요…“


 

풍장은 갑자기 싸늘해 진 영등의 표정과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영등…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도깨비를 죽여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오…? 


이 죄수도깨비는 괴물이오!  

수 많은 생명을 죽였지. 


사람여인을 겁탈했고…

 아마 이 섬에 잡아온 수많은 

여인들은 도깨비에게 끔찍하게 겁탈을 당한 후에 

죽임을 당했겠지… 


괴물이…

 당신마저 죽였을까봐…


내가 목숨을 걸고 달려와 괴물을 처치했는데…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차가운 말을 하는 것이오…


나는 당신이 살아있음에 이리도 기쁜데…“ 




영등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나는 것을 참아내며 또박또박 말했다.



“풍장.. 

당신은 무엇이 그리 두려웠고.

무엇에 그리 분노하여  

홀로 이렇게 날카로운 작살과 칼을 들고 이 곳까지 온 것이오? 


오직 내가 죽었을까봐 두려웠던 것이오?

아니면

내가 도깨비에게 겁탈이라도 당했을까 봐..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오..?


나를 도깨비에게 빼앗겼을까봐

당신의 것을 빼앗겼을까봐..


그것에 분노하였던 것이 아니오..!  


나를 애타게 찾던 당신의 마음은 알 수 있지만…


앞뒤 사정도 알려하지 않은채 

무조건 도깨비를 잔혹하게 죽인 당신의 마음은.. 

어디를 향한 것이오..."


 

풍장은 영등의 눈빛을 보며 몸에 힘이 빠졌다. 


털썩 무릎을 꿇고선 주저앉아 말한다.



“분노에 찬 가슴으로 배를 몰아 이 섬에 도착했지요.


그 순간 봐버렸소. 


당신의 온기를 가득 품은 이 섬을..


나는..

이 뾰족섬에… 

이 괴물같은 도깨비에게..

당신의 온기가 스며들었다고… 

믿어버렸지..


그래서 죽였소. 


그렇소…. 

 이것이… 

나의 진실이오…“ 

 



그 순간

영혼이 떠버린 도깨비의 몸뚱이에서 

뜨거운 불덩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마치 살아있는 듯 거대하고 뜨거운 도깨비불이 

순식간에 풍장을 덮쳤다.



 

“끄아악…!” 

 



풍장은 뜨거운 도깨비불에 온몸이 휩싸이고..


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 치더니 

이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 들었다.  

 

잠시 후 - 바다엔 까만 잿빛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까만 새떼는 도깨비의 몸을 뼈만 남긴 채 뜯어먹었다. 


차가운 바람이 온 하늘과 온 바다에서 몰아치는 듯 했다. 


이제 도깨비도 풍장도 없는 뾰족섬에 영등은 홀로 섰다. 


그리고

천천히 절망했다. 


 

“내가… 

결국은 내가…

이 둘을 죽게 만들었구나. 


영험한 도깨비를… 

죄를 빌고 다시 선해질 수 있는 도깨비를 

죽게 만들고…


마음씨 좋았던 젊은 어부마저..

죽게 만들었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어찌..  ‘영등’이라 말 할 수 있을까… 

그리운 나의 아버지..

한번도 만나지 못한 나의 아버지… 


바람신이시여.. 

내 얘길 듣고있다면…   

나 또한 이 둘을 따라가겠소. 


이별도 죽음도 무관한 세상에서 

슬픔도 외로움도 갖지 않을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소… “ 



 

그녀는 한참동안 먼 남쪽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늘의 태양이 점점 붉어져 바다를 물들이는 시간.. 


그녀는 도깨비가 남기고 간 방망이를 집어들었다. 

 



“바다신님…  

나의 어머니… 

이런 선택을 한 나를 용서하셔요..


그리고..

나를 잉태했던 그때처럼 

다시 나를 품어주셔요…“

 



그녀는 도깨비의 거대하고 흉측한 방망이로 

자신의 몸을 마구 두들겨때렸다.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이 갈기갈기 찢기고, 


스스로 살점이 파여가는 고통을 느끼며 …

영등은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몸은 조각난 채로 파도에 쓸려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 들었다. 


 

그 날 밤- 


바다신은 딸의 주검을 거대한 파도로 끌어안았다. 


새벽의 짙은 어둠이 깔린 바다에 

거센 풍랑과 해일이 섬을 집어삼길 듯 일었다. 


바다신은 딸의 몸을 파도의 물결에 실어 

남쪽바다를 향해 둥둥 떠밀어 보내주었다. 

 


해가 떠오르고, 

또 지고 ..

다시 떠오를 때

 

영등의 조각난 몸은 드디어… 


남쪽 바다에 다다랐다. 


그리고

어느덧 제주섬에 닿았다. 


 


제주바다의 돌고래들은 

영등의 토막난 주검을 각자 나누어 등위에 싣고서 

빠르게 움직였다. 



돌고래들은 

영등의 머리를 우도에, 

몸통은 성산에, 

두 다리는 한수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영등이 신었던 고운 신발의 한짝은 서쪽 비양도에,  

나머지 한짝은 우도 비양도에 두었다. 


 

제주섬에 살고 있던 어부 ‘풍장’의 동료와 가족들은 

이미 먼 뾰족섬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영등의 주검이 실려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바닷가에 제단을 쌓고 

보름동안 향을 피웠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절을 올리며 

영등의 혼에게 온 마음을 다해 제를 지냈다. 


 

제주섬의 바다에선 

보름동안 

파도의 갈피갈피마다 하얗고 보드라운 안개가 피어 올랐다. 



 

영등의 아버지인 바람신은 

남쪽바다와 제주섬을 휘돌았다. 


조각난 채로 바다깊이 가라앉은 영등의 영혼과 찢겨진 비단옷 조각을 한데 모았다. 


안개로 명주실을 만들어 

영등의 흩어진 영혼을 꿰었고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붙여놓으니 


다시 아름다운 모습의 영등 아씨로 나타났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보이는 영등의 얼굴 위로 

하늘나라의 향기롭고 새하얀 꽃잎이 흐드러지게 쏟아졌다. 



영등의 몸이 하얀 꽃잎으로 가득히 덮히자 

곧 바다 위에 

크고 새하얗고 향기로운 꽃 한송이가 피어 올랐다. 


 

바다신과 바람신은 한데 뒤엉켜 

이 아름다운 꽃에 생명의 숨결을 가득 불어 넣었다. 



보름동안 제주바다는 

하얀 안개와 향기로운 꽃향기가 진동을 했고,  

사람들은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보름달이 마침내 휘영청 떠오른 밤. 


 

영등은 ‘영등신’으로 다시 되살아났다. 


하얀 꽃은 

연꽃인 듯 국화인 듯 가장 아름다운 꽃의

형상을 모두 모아놓은 듯 했고 


향기로운 꽃잎위에서 

영등신은 다시  우뚝 섰다. 

 


돌고래들이 몰려와 영등신을 호위하고 

바다의 모든 생명들은 춤을 추었다. 


 

파도의 거품이 비눗방울처럼 일어나 바람에 실려

공중에 휘날리고 


바다는 천천히 평화를 되찾았다. 



 

그 후 - 



‘영등신’은 일년에 한 번씩 

남쪽바다위 제주섬을 찾아온다. 


15일간 

남쪽바다와 제주섬을 휘돌며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가득 뿌려주고, 

죽어 흩어져 떠다니는 바다의 영혼들을 살려내어 다시 번성하게 해주었다.


‘영등신’은 ‘바다의 여신’ 이며 

동시에 ‘ 바람의 여신’이 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지상의 사람들은 

누군가 죽어 육신에서 영혼이 떠나면, 

그 몸 위로 하얀 꽃을 올려두었다고 한다. 


 


‘영등신’은 


죽어서 바다에 뛰어든 ‘풍장’의 영혼도 다시 살려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바다신’이 되어 

어부와 해녀들을 살피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뾰족섬엔 

어느덧 풀들이 자랏고, 


다시 노랑꽃이 약냄새를 풍기며 피어나는 계절이 돌아올 때쯤 -

 

‘영등신’과 ‘바다신 풍장’ 사이에도 

둘을 빼닮은 작고 어여쁜 여자아기와 남자아기가 태어났다.  


돌고래떼는 바다위로 모두 올라와 신명나게 묘기를 부렸고 

바다에선 오랜만에 큰 잔치가 벌어졌다. 

 




그 해, 

제주섬에 살던 모든 어부와 해녀들도 춤을 추었다.  


물고기도, 소라도 모두모두 대풍년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 


몇 백년이 흘렀을까..몇  천년이 흘렀을까..




‘영등신’도 이제 젊고 아름다운 아씨가 아닌, ‘할망’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매년 제주섬을 찾아올 때마다 

딸과 함께 오거나 며느리와 함께 오는데, 

그럴 때마다 날씨가 많이 다르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 전해진다.   










사랑과 번영의 바다여신 '영등(靈燈)'

_마지막편.  끝. 





* 이 글은 제주신화중 하나인 '영등할망' 신화를 새롭게 각색한 신화소설입니다.


'영등할망'의 탄생부터 아가씨일 때의 일화와 

지금의 할망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더하여 -  순수 창작으로 집필한 글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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