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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촌닭 Mar 11. 2024

2023 가을방학 2.

in 스페인 마요르카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좀 괜찮았다.  민기랑은 조식 레스토랑에서 만났는데 또 만나자마자 뛰어다니며 놀았다.  엄마아빠는 본격적으로 놀아야 하니 일단 먹으라고 했다.  먹어야 놀 수 있다며.  아침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독일은 이미 너무 추운데 여긴 햇빛도 쨍쨍하고 따뜻하고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아침에 눈떠서 바로 밥 먹으러 가서 선크림도 못 발랐는데 일단 아빠는 우리를 물가로 데려갔다.  우리 아빠는 언제나 물 물 물이니까.  산책길에 길고양이와 길닭이 많았다.  걷다가 근처 바다에 도착했는데 물 온도도 딱 맞고 파도도 안치고 바다수영하기 딱 좋았는데 수영복을 안 가져와서 너무 후회되었다.  빨리 호텔로 돌아가서 짐 챙겨서 와야겠다.  그렇게 우린 가을방학을 즐기기 시작했다.  먹고 수영하고 먹고 수영하고.

그렇게 우린 일주일을 같이 보내고 민기는 먼저 함부륵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일주일 더 마요르카에서 보냈다.  우리 아빠는 민기가 돌아갈 때 지갑 가지러 간다며 민기랑 같이 비행기 타고 가버려서 중간에 동생이랑 엄마랑 하루 있었다.  엄마가 지갑 가지러 비행기 세 시간 타고 국경 넘어가는 사람은 우리 아빠 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아빠가 돌아와서도 우리는 늘 수영만 했다.  엄마는 제발 하루만이라도 비 좀 왔으면 좋겠다고 했고 민기엄마는 휴가 가서 비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우리 엄마뿐일 거라고 했다.  엄마는 비 와서 수영 안 하고 시내구경도 가고 쇼핑도 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비는 하루도 안 왔고, 마지막 날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수영금지 깃발이 걸리긴 했다.  쇼핑도 하루 하긴 했다.  엄마가 우리 겨울 부츠 살 거라고 벼르고 벼뤘어서 아웃렛에 가서 부츠랑 옷 여러 벌을 샀다.  쇼핑 마치고 차에 가면서 아빠가  독일에서 마요르카로 오는 것보다, 마요르카에서 독일로 돌아가는 비행기 수하물 무게가 평균 2톤은 더 많은지 이제 알겠다고 했다.  다들 쇼핑한다나 뭐라나.  나는 내가 직접 고른 부츠가 너무 맘에 들어서 보고보고 보고 신고 신고 신어봤고, 엄마는 너무 싸다며 엄청 좋아했다.  그날 우리는 다들 신발 레씩 끌어안고 잤다.  

우리가 갔었던 아울렛 / 새신발 ✌

호텔에 떠나는 여행객들이 필요 없는 물건 놔두고 가서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게 하는 곳이 있는데 보통 비치파라솔, 모래놀이장난감, 잡지, 소설책 이런 것들이 다.  엄마는 혹시나 누가져갈지 궁금하다며 '좋은생각'이라는 책을 체크아웃 이틀 전부터 놔뒀었다.
(좋은생각은 한국 할아버지가 매달 보내주신다)  그런데 출발할 때 보니 책이 없는 거다! 누군가 가져갔다며 엄마는 참 좋아했다.  혹시 누가 아냐며 한국어공부하는 사람이 있을 수 도 있고, 아들딸손주친구 주려고 챙겨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며.

집에 가려고 체크아웃하고 아빠가 차 가지러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가 왔다.  그런데 옆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아빠한테 엄청 반갑게 인사를 하며 한마디 했다.  "택시기사님?"  엄마가 어어어 엄청 웃고 웃지도 못했는데 지나가는 어떤 아저씨가 아빠한테 너희 와이프랑 너희 딸들 너무너무 이쁘다고 했다.  아빠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엄마는 계속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으로 이동했다.  마요르카처럼 독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스탠바이로 비행하는 사람이 많아서 운이 좋아야 한다.  아빠는 기내에 좌석이 없으면 조종석에 앉아갈 수 있는데 이번에는 부기장와이프분이 스탠바이로 우리랑 같이 서있어서 아빠가 밀렸다.  결국 동생이랑 엄마만 먼저 갔고 나랑 아빠는 하루 더 자게 되었다.  엄마는 비행 중이라 전화도 못해서 나는 너무 슬펐고, 아빠는 화가 많이 났다.  다신 스탠바이로 비행 안 한다며 마요르카공항직원들 불친절하다고 계속 뭐라 뭐라 궁시렁 궁시렁거렸다.

공항에서 동생이랑 놀다가 / 혼자남은 나

얀네도 비행기에서 언니 백번 찾다가 잠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좋은생각 책은 아빠가방에서 나왔다.  엄마가 이게 왜 여기서 나오냐고 물어보니 유나 읽어야 한다며 챙겨 왔단다.


가을방학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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