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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07. 2023

휘둘리고 휘말리고 휘청거리는

just rock the world


  지난겨울 제주도에 간 첫날 밤, 숙소에서 영화 <소공녀>를 봤다. 이 영화를 보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개봉당시 영화관에 걸린 포스터를 봤던 기억이 있다. 꼭 봐야지, 마음먹기를 5년 만에 이 영화를 처음 봤다.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포스터에 있는 주인공의 머리카락이 백색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오랜 새치를 위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5년 동안 보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위로받지 못할 새치가 슬퍼져서겠지. 고작 새치로 영화를 보고 안 보는 것은 이제는 조금 유치한 변명이다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는 미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것, 그것만 있다면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미련한 것일까? 사람들은 미소를 욕할까? 사람들이 욕하면 미소는 틀린 것일까? 어쩌면 미소는 아주아주 고도로 진화된 사람이려나. 뭐 이런 생각들을 했다. 아직 나는 아무래도 다른 것들이 상관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소가 다정한 사람이라서 눈물이 났다.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고, 축하해 주는 사람이라서,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축하해 주어서. ​


  미소는 휘둘리고, 휘말리고, 휘청거리기 쉬운 사회에서 꼿꼿이 서 있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미소와 내가 닮은 것은 고작 백색 머리카락이 난다는 것뿐이지만 그나마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허리라도 꼿꼿하게 펴고 살고 싶어 진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들여다보겠다고 말하기 위해서 미소의 텐트에 위스키를 사들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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