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알기 프로젝트: 그냥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 꿈인데요
젊게 살기를 선택한다고 잘 늙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 늙기를 선택한다고 젊게 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나에게 더 중요한지에 따라 아주 세밀하고 정교하게 내 인생의 방향성이 바뀐다.
나는 아직 나이 앞에 ‘2’가 붙는 사회생활 막둥이다. 현재 직장에 자리를 잡은 지는 이제 3년 차. 그런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보이던 것이 있다. 바로 나보다 오래 회사에 머문 ‘어른들’의 모습.
앞서 말했듯 나는 우리 팀 막둥이로서, 내 위로는 모두 나에겐 어른이다. 올해 팀을 옮기며 더 다양한 어른들의 형상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3년 간의 내 회사생활을 요약하자면 ‘저렇게 늙고 싶다’ 혹은 ‘저렇게 늙진 말아야지’ 두 가지였다.
나의 정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잘 늙고 싶다.
왜인지는 유추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살며 나를 스친 많은 어른들 중 내가 닮고 싶은 어른은 극소수였기 때문. 자신 있게 열 손가락으로 세어볼 만하다. 그 반면 “별로”인 어른들은 너무 많았다. 잘못 형성된 철학으로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람, 앞 뒤가 꽉 막혀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 어린 사람들을 아래로 두는 사람들 까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나이를 먹는 게 아닐까 하는 말을 자주 한다. 세상에 조금 더 일찍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은 쉽게 생긴다. 그렇게 가진 힘을 권력이라 착각하는 순간 그의 주변은 지옥이 된다.
‘늙는다’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던 대학시절과 달리 나는 지금 늙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다. 내가 가진 젊음을 내려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의 겉모습- 피부, 머리카락, 신체 등- 의 노화의 의미보다 나이가 들며 내 생각, 내 행동이 변하고 있다. 어릴 적, 한 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또래의 생각과 행동에 불안해하던 나는 이제 많이 죽었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이제는 어느 정도 예측이 되고 패턴이 보인다. 또래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줄고, 더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생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오만해진 나는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까지도 내가 잘 안다는 확신을 가진다.
과연 그럴까?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과정에 세상이 사람을 그렇게 설계했을 리가 만무하다.
최근에 시청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스스로 자신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앞서 ‘자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그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에 의견이 분분했다. 나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상태를 바꾸기에 하나의 모습으로 정의 내리는 게 불가하다는 이야기이다.
평생 동안 모습을 바꾸는 나를 마주하고, 새롭게 알아가고 그것을 인정하는 시간이 잘 마련되는 것. 그 과정을 무수히 거치는 것이 잘 늙어가는 게 아닐까.
나를 이루는 세포들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태초에 가지던 힘을 잃는다. 나이 듦을 인지하고 나의 내년, 내후년, 그리고 10년 뒤를 어떤 사람으로 두느냐에 따라 나라는 방향성이 결정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늙고 싶은가?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세상이 평가하는 나의 모습이 결정된다. 사람은 앞으로도, 쉬지 않고, 평-생 나이 들어간다. 시간이 흘러 내가 막내가 아닌 누군가의 어른일 때, 나는 잘 늙은 어른이고 싶다. 나의 소중한 하루가 잘 늙어가는 과정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