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알기 프로젝트 : 세숫대야부터 간장 종지까지
“확실히 그릇이 큰 사람들은 달라”
라는 말을 들으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릇이 큰 사람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무엇인가를 논하기 전엔 그의 정의를 우선으로 알아야 한다.
그릇
1.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 또는 그런 능력이나 도량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릇’은 무엇인가를 담는 역할을 한다. 그릇이라는 정적인 사물을 동적인 사람에게 비유한 데에는 마땅한 의미가 있을 테다.
그릇에는 주로 음식이 담긴다. 작게 만든 그릇에는 적거나 얕게 깔리는 음식이, 크고 넓게 만든 그릇에는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양의 음식을 담을 수 있다.
음식은 사람을 살게 한다. 그릇에 건강한 양질의 음식을 자주 담을수록, 사람의 신체는 건강히 유지된다. 건강한 신체를 준비해 두어야만 건강한 마음과 정신이 온전히 담길 수 있다. 이렇게 신체와 정신의 건강은 시간이 흐르며 동일시된다. 건강한 신체는, 결국 건강한 마음을 담는 그릇이 된다.
몸과 정신으로 살아내는 사람, 그래서 사람은 그릇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스스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을 겪고,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내몰린다. 말 그대로 ‘교통사고’와 같은 순간이 참으로 자주 찾아온다. 우리의 감정은 액체와 같아서, 정제되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흐른다. 종이컵에 담긴 액체는 작은 접촉사고에도 흘러넘친다. 본래의 것을 잃은 그릇은 그의 정체성을 잃기 쉽다.
그에 반해 깊고 넓은 그릇에 담긴 액체는 거세게 출렁거리더라도 빠르게 본래의 위치를 찾아간다.
우리는 이를 ‘평정심’이라 부른다.
평정심 :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동요되지 않고 항상 편안한 감정을 유지하는 마음
액체와 같은 감정을 잔잔히 유지시킬 수 있는 힘. 나를 흔드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그릇이 큰 사람’ 임을 느낀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선 내가 어떤 상황에서 흔들리는지, 어느 강도일 때 흘러넘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를 쥐고 흔드는 상황을 멈출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많이 깨져봐야 튼튼한 그릇이 완성되듯, 많이 흘러넘쳐봐야 넘치지 않을 방법을 알게 된다.
반복되면 학습이 된다. 어려운 물리 공식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반복하면 외워지고 외운 공식은 수많은 문제를 푸는데 큰 역할을 한다.
웬만한 상황은 나라는 그릇을 깨뜨릴 수 없으며, 나를 흘러넘치게 하지 못한다,라는 확신을 위한 상황을 반복해서 접해야 한다.
그렇다면 평정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그릇이 큰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평정심'이라 명명된 마음 상태는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과정을 지겹도록 반복해야만이 가까워질 수 있다. 얻기도 힘든 평정심은, 잃지 않도록 평생을 노력해야 한다. 그릇을 넓히기 위한 평생의 숙제인 셈.
그릇은 열과 손길을 더하면 더할수록 견고해진다. 그릇의 크기를 키우고 싶다면 가장 먼저 현재 나의 크기를 알 필요가 있다. 내가 어느 정도를 담아낼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 흘러넘치는지 말이다. 담아내고 비워냄을 반복하다 보면 그릇의 면적이 넓어진다. 이러한 '반복'의 과정을 우리는 '경험'이라 일컫는다.
그릇을 자주 비울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이 늘 준비되어 있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아주 짧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자주' 느낄 준비가 된 느낀 사람에게만 자주 찾아와 준다.
나라는 그릇에 순간의 행복을 담아낼 여유가 없이 가득 차 있다면, 그 이상이 담겼을 때 이미 가진 것 까지도 흘러넘쳐버린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 당첨된 갑작스러운 복권은 더 큰 화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릇이 큰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둔 그릇에 평정심을 잔잔히 깔아 둔 채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가끔은 내가 너무 느린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많은 사람과 그들의 마음을 담고 싶은 욕심에 자주 흘러넘쳤고, 뾰족한 사람들을 담아보다가 자주 깨졌다. 흘러넘친 나를 다시 주워 담고, 또다시 이어 붙이느라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과정을 반복하면 경험이 되고, 또다시 반복된 경험은 학습이 된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그릇의 크기를 인지하고, 내가 담아보고 싶은 상황과 사람을 분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비워내는지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그래, 수많은 순간이 나의 그릇을 넓히는 과정이었으리라. 어떤 상황이 와도 나를 잃지 않으며 새로이 담아내고, 다시 꺼낼 수 있도록 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또 비워내고, 그렇게 소중한 것들로만 가득 채워 나라는 그릇에 담아내었을 때가 되면 내가 무수히 소중해진다.
나라는 사람을 멋진 그릇으로 만들어내었을 때, 셀 수 없이 담길 멋진 순간들이 찾아올 준비가 완료된다.
그릇이 완료되었다면, 이제 나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 생각해 보자.
관계, 성공, 돈, 행복.. 그리고 어떤 사람과 어떤 마음.
적어놓고 보니 무엇인가를 ‘담는다’라는 표현도 참 좋다.
삶이란, 세상의 것들을 나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