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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다림 Oct 29. 2021

패수(浿水)와 고조선 도읍은 어디인가?

패수(浿水)는 어디인가? 고조선의 도읍은 어디인가?


   한국 고대사에 있어서 이만큼 뜨거운 주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계는 물론이고 한국 고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봤을 주제다. 이것은 중국의 동북공정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중국 학자들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다. 관심이 뜨거운 만큼 이에 관해서 많은 견해가 있고, 또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다.


  이 질문들에 대하여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이 질문에는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패수(浿水)는 어디인가?' 하는 질문을 보자.


   한국 고대사에서 패수(浿水)는 기록과 시대에 따라 다른 강을 말할 수 있으므로, 막연히 '패수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논의의 대상이 달라서 제대로 된 논의를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논의의 대상이 되는 패수가 어떤 사서(史書)의 어떤 부분에 기록된 패수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고대사 사료에 나타나는 패수를 시대순으로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의 조선열전(朝鮮列傳)에 나오는 패수(浿水)다. 이것은 위만조선의 건국 무렵(기원전 194년)부터 멸망 시(기원전 107년)까지 위만조선과 한나라 사이의 국경선이었던 강을 부르던 이름이다. 다음부터 이 강을 말할 때에는 '조선열전의 패수' 혹은 '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인 패수'라고 부른다.


둘째는 범엽(范曄)이 지은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나오는 패수(浿水)다. 이것은 기원 전후의 낙랑군(樂浪郡) 패수현(浿水縣)을 지나는 강을 부르던 이름이다. 그리고 한서 지리지에 발음은 '패수'지만 한자(漢字)는 다른 '패수(沛水)'라는 강도 있는데, 이는 당시 요동군(遼東郡) 번한현(番汗縣)을 흐르는 강을 부르던 이름이다. 다음부터 이 패수(浿水)를 '낙랑군 패수현의 패수'라 하고, 이 패수(沛水)는 '요동군 번한현의 패수'라 한다.


셋째는 주서(周書)와 수서(隨書) 등에 보이는 패수(浿水)다. 이것은 고구려가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긴(427년) 이후 평양성 남쪽을 흐르는 강을 부르던 이름이다. 다음부터 이것을 '고구려 평양 시대의 패수'라 한다.


넷째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와 백제 본기에 등장하는 패하(浿河)다. 이것은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는 주제와는 관계가 없는 강이어서 이후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패수들 중  첫 번째의 패수 즉, 조선열전의 패수가 어디인가를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또 이것이 패수의 논의에 관한 마지막 종착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을 직접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접근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춘추전국 시대의 연(燕)나라 때부터 진시황의 진(秦)나라를 거쳐 한(漢)나라에 이를 때까지 고조선과의 국경선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제가 연(燕) 장성(長城)과 진(秦) 장성(長城, 이것이 이른바 진시황의 만리장성이다)의 동쪽 끝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는, 한서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는 요동군과 현토군, 낙랑군을 흐르는 여러 강들이 오늘날의 어떤 강에 해당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이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패수가 오늘날의 어떤 강에 해당하는지, 요동군 번한현의 패수(沛水)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요동군을 흐르는 요수(遼水)가 오늘날의 어떤 강에 해당하는지 하는 것들이다.


다음으로 '고조선의 도읍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을 보자.


   흔히 고조선 하면, 일반인들은 단군이 건국한 나라를 떠 올리겠지만, 학계에서는 이를 포함하여 위만조선 때까지 중국 사서에 '조선(朝鮮)'이라고 나타나는 모든 나라를 통칭하여 고조선(古朝鮮)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보니 고조선이라는 말이 어떠한 정치체를 가리키는지 매우 불분명하다. 즉, 기록에 따르면, 단군조선은 기원전 2,300년 경에 건국되어 약 1,000년 간 존속했고, 그 후에는 이른바 기자조선이 약 1,000년간 존속했으며, 위만조선이 기원전 194년경 건국하여 기원전 107년에 멸망하였다. 그래서 고조선이라고 하면, 약 2,200년 동안 있었던 정치체를 모두 포괄하는 말이 되는데, 이 기간은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역사 약 2,100년보다 더 긴 기간이다. 따라서 위 기간 중의 도읍이 어디냐고 묻는 것은, 위만조선 멸망 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도읍이 어디냐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질문이다.


   내가 앞서 다른 글에서 말했듯이 단군조선의 경우,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신화의 형태로나마 초기 도읍지가 평양 지역으로, 그 강역이 요동과 만주, 한반도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교차 검증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다른 기록이 없고, 고고학적 유물이나 유적도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아서 이에 관한 더 깊은 연구와 논의를 진전시키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고 이른바 기자조선(箕子朝鮮)은, 중국 사서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인데, 오늘날 기자가 조선을 건국한 사실 자체가 부정된다. 뿐만 아니라 조선이라고 기록된 국가가 언제 건국되었는지, 단일한 정치체인지, 그 중심지는 어디에 있었는지, 이 조선이 단군조선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기록도 부족하다. 따라서 이에 관해서도 깊은 논의를 하기는 쉽지 않다.


   고조선에 관하여 구체적인 역사적 실체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기록된 최초의 기록이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 조선열전의 위만조선에 관한 기록이다. 그리고 위 조선열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왕험성(王險城)이 위만조선의 도읍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의 논의는 앞서 본 패수 논의와 더불어 위 왕험성이 어디에 있었는가에 관한 논의에 집중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리 말해 둘 것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왕험성(王險城)을 왕검성(王儉城)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단군조선의 도읍지 명칭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후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삼국유사와 태평어람 등의 사서에 왕검성(王儉城)이란 표현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것은 왕험성(王險城)의 오기이다. 뿐만 아니라 위 사서들에도 이를 단군조선이 아닌 위만조선의 도읍으로 기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위 질문은 그 대상을 명확히 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으로 바꾸어야 한다.


   첫째, 사기에 기록된 위만조선의 도읍인 왕험성(王險城)은 어디인가?

   둘째, 위만에게 멸망당하기 직전의 고조선 즉, 준왕(準王)이 마지막 왕인 고조선의 당시 도읍은 어디인가?

   셋째, 낙랑군 조선현은 어디에 설치되었는가?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오늘날 학계의 유력한 견해들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기 조선열전의 패수를, 청천강으로 보는 견해와 압록강으로 보는 견해, 요동(遼東)의 혼하(渾河, Hunhe River)로 보는 견해, 요서(遼西)의 대릉하(大凌河, Daling River) 혹은 난하(滦河, Luanhe River)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청천강으로 보는 견해가 중국 학계의 통설이고, 압록강으로 보는 견해가 우리나라 학계의 다수설이다. 그리고 나머지 견해는 모두 소수설이다.


   둘째, 위만조선의 도읍인 왕험성과 준왕의 마지막 도읍지, 낙랑군 조선현은 모두 오늘날 평양의 대동강 남쪽에 있는 낙랑토성에 있었다는 것이 한국과 중국의 통설이다. 그 외에 이들이 요동 지역 혹은 요서 지역에 있었다는 한국의 소수설이 있다.  


   이러한 점들에 대한 나의 결론을 먼저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기 조선열전의 패수(浿水)는 오늘날 요서의 대릉하(大凌河)다. 그리고 한서 지리지의 낙랑군 패수현의 패수는 오늘날 청천강이다.


    둘째, 위만조선의 도읍인 왕험성은 한서 지리지의 험독현이다. 위만에게 멸망한 준왕의 마지막 도읍지는 오늘날 평양지역이다. 낙랑군 조선현은 오늘날 평양의 대동강 남쪽 낙랑토성이다.   


   나는 앞으로 이어질 글들에서 나의 이러한 결론에 대한 논거를 제시해 나갈 것이다. 아마도 멀고 어려운 과정이 될 것 같다. 한서 지리지의 낙랑군, 현도군, 요동군, 요서군에 흐르는 강들의 오늘날 위치를 하나하나 비정하고, 그 이유를 논증한다.

   그리고 한 무제 이전의 요수 위치가 오늘날 요서의 난하( 灤河)라는 것과 갈석산이 오늘날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자 진시황의 갈석궁 유적과 산해관이 있는 강녀석이라는 것 등에 관하여 그 위치를 논증한다.

   마지막으로 서주시대 이전의 고조선 위치와 요하문명에 대해서도 논의해 보려 한다.


   다음 글에서부터 이에 관하여 자세하게, 차례로 논증해 나가겠다. 물론 나의 이 결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여러 가지 새로운 사료나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될 경우 언제든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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