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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Sep 12. 2022

안녕 싱가포르, 안녕 싱가포르

9월 평균 습도 75% 적셔지기 좋지 아니한가

추석 직전 사내 행사 참석을 위한 출장이 잡혔다.

4박 5일, 행선지 싱가포르 Sentosa

5월이면 코로나가 종식될 것이라는 인도의 어느 예언가 소년의 예상이 빗나간 지금, 해외를 다녀오자면 입출국 시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입국 시 SGCard라는 전자 입국 심사서와 백신 접종확인서 정도면 되지만,

우리나라는 PCR 음성 확인서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싱가포르에서 검사 가능한 의료기관을 찾아야 했다.

행여나 싱가포르에서 코로나에 걸리게 되면... 내 몸의 면역력을 믿기로 하고 그 뒤는 알아보지 않았다.

극적으로 9월 3일부터 우리나라의 입국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할 일이 줄긴 했지만,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들을 예방하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몇 번 작성하고 고치길 반복했다.


이번 출장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첫 해외출장이자 근 3년 만에 국제선 비행기를 타는 기념비적인 일정이었다.

싱가포르란 낯선 동네는 나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설렘 6,

이래저래 신경 쓸 것들과 그간 쌓일 일들에 대한 두려움 4.


막상 싱가포르에 떨어지니 행사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먹고 숙소로 돌아오면 머리가 닿기 무섭게 곯아떨어졌다.

그 와중에 온갖 고층 건물과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을 품어버리는 마리나 베이가 토해내는 반사와 굴절이 만들어낸 야경은

적막한 호텔방을 아늑하게 만들어 줄 만큼 사람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출장 마지막 날 귀국 비행기를 타기 직전 저녁에야 온전한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출장 일정은 오후 5시에 끝났고 귀국 비행기는 다음날 새벽 1시, 공항에 미리 가있을 시간까지 고려하면 기껏해야 4-5시간이었다.

막상 일정이 끝나니 고작 1시간 시차인 곳에 왔건만 몸무게가 순식간에 5kg는 늘어난 것 마냥 몸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한껏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호텔 밖을 나와 도시를 걸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탁월한 몸부림이었다.


후드티를 입어도 한기가 느껴질 만큼 차디 찬 실내에만 있다 초저녁에 거리를 나오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싱가포르 날씨구나 싶을 만큼 높은 습도가 온몸의 경계를 뒤덮었다.

상관없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온도와 습도의 경계 안이었고, 한껏 걷고 땀 흘리고 숙소로 돌아가 씻고 비행기를 탈 작정이었기에 오히려 땀 흘릴 기회다 반갑기까지 했다.


희한한 벌집 모양의 건물과 호텔들, 이국적인 외모의 사람들과 해독되지 않는 간판.

널찍하다 못해 울창한 잎사귀를 주렁주렁 매단 나무들.

화려하고 높은 건물과 어둑하고 선뜻 발을 내딛기 어려운 음침한 골목길이 번갈아 놓이는 바둑의 수처럼 나를 반겼다.


처음 온 타국땅치곤 무서움보다 발을 내딛을수록 커지는 기대감이 신기했다.

이 기분들을 기록하고자 휴대폰으로 시선을 떨구자니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성 녹음을 하기로 했다.

사람은 생각과 외모만 늙지 않는다. 목소리도 성장하고 늙는다.

그날 남은 생애의 가장 젊은 날의 목소리를 남기기로 했다.

낯간지럽고 오글거리는 내 음성을 미지의 서버에 남기기로 해본 것.

이것이 이번 출장의 가장 큰 도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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