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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Jan 29. 2024

기억소각장

태우고 나면 사라지는 것일까

오래간만에 만난 지인은 한층 더 피곤한 모습이었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 물으니 본래 새벽 5시부터 시작하던 하루를 게을러진 탓에 아침 7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지인은 자신의 지인이자 멘토인 사람과 단 둘이서 몇 달째 공유사무실에서 일(과 합숙)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 그 멘토는 업무를 위해 몇 달간 미국을 가게 되었다.

멘토와 사무실에 있을 땐 눈 떠 있는 시간 내내 회의와 질문과 혼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멘토의 출장을 마음 한편으로는 기다리고 있었다 해도 납득이 갈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멘토가 미국비행기를 타고 나니 수천 배는 더 힘들어진 것 같다고 했다.

조금 더 많이 자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메뉴로 밥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본인은 혼자 사무실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게 생각보다도 힘들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전에 더 잠을 못 자고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할 때보다도 기운은 떨어져 보였다.


그리고 근래 꿈을 자주 꾸는 게 신기하다고 하였다. 원래 어디든 딱딱한 곳에 머리가 닿기만 하면 잠이 들고 꿈을 꿀 겨를도 없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던 사람인지라 그게 묘하다고 하였다. 뇌과학을 공부했던 사람답게 본인이 읽었던 논문에서 설명하는 사람이 꿈을 꾸는 기저를 설명해 주었다.

반복적으로 인풋을 들어오는 때는 사람이 꿈을 잘 꾸지 않는다고 했다. 즉 매일 내가 밥을 먹고 있으면 밥 먹는 모습을 꿈꾸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인풋이 끊기게 되면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억의 파편이 꿈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소각장에서 무언가 태우면 부산물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본인은 그 꿈이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새로운 인풋이 되어주는 것 같다 하였다.


재밌는 가설이었다. 그 이론이 학계의 정설인지 여러 가설 중 하나인지 궁금함이 올라옴과 동시에 최근에 꾸었던 꿈들을 뒤적거리느라 질문할 타이밍을 놓쳤다. 나는 어릴 적부터 꿈을 자주 꾸는 편이었다. 밤마다 달라지는 꿈들은 내가 꿈꾸던 이상향도 현실도 아니었다. 우습게는 좋아하던 만화캐릭터를 만나서 고백을 한다거나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었으나 그 힘이 너무나 미약해 책상 위를 간신히 떠있을 정도여서 교실 허공을 날아다니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반복적으로 꾸는 꿈도 있었는데 구름이 잔뜩 낀 어두운 한낮의 골목길을 정체 모를 무언가에 쫓겨 한없이 달리거나 고3이 되어 수능을 꾸는 꿈이었다. 꿈에서의 고3 나의 상황은 처참했다. 시험을 아주 망해서 집에 들어갈 용기가 없어 친구와 학교 근처를 배회하거나 수능 당일날 늦잠을 자서 수능을 아예 치지 못했다. 그 순간은 20대와 30대의 나는 없었기에 내 인생 전체를 헛살아온 듯한 허탈함과 손쓸 방도가 없다는 무력감에 얼마나 막막하던지 꿈에서 깨어도 30초 ~ 1분간은 계속해서 이걸 어떻게 부모님께 말하지 계속해서 걱정하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꿈임을 깨달으면 안도감과 또 다른 종류의 허탈함이 올라왔다. 현실에서 알던 사람들이 꿈에서 나오기도 했다. 만나고 싶던 사람이 나오던 때도 있고 살아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는 사람이 나타나던 때도 있었다.

지인이 말해준 이론이 맞다면 나의 머릿속에서는 무엇을 소각시키는 중인 걸까. 꿈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저 소각되기를 거절하고 내 뇌리의 어딘가에 박히기 위해 줄행랑치는 중이었던 것일까. 나의 무의식은 왜 하필 그 기억의 파편들을 선별해 소각하기를 거부한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보니 꾸었다는 사실마저 흐릿해지는 몇 가지 꿈들이 다시금 지나가면서 새로운 기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라져 줬으면 하는 기억이 있다. 모든 경험은 의미가 있다지만, 의미가 있는 것들이 기쁨을 선사하는 것만은 아니기에 차라리 모르던 때가 낫지 않았을까 싶은 기억들이 있다. 어쩌면 소중하다 생각하던 기억들이 이미 머릿속에서 까맣게 태워져 재가 되어 버린 것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찍은 게 맞는 걸까 싶은 사진이나 끄적여 놓은 글귀를 다시 볼 때면, 아니면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들려주는 조금 더 왈가닥인 시절의 내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잊혀져 버린 어쩌면 소각돼버린 기억들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소각과정은 내가 아는 일반적인 소각장과는 조금 다른 게 움직이는 수도 있다. 태워서 다른 형태가 되는 것이 아닌 조금 더 작은 무언가로 축소된다거나 아니면 소각되는 것들이 한 데 뭉쳐져 새로운 무언가가 되는 중일 수도 있다. 사실 그래줬으면 싶다. 나의 일부였던 일상과 추억과 행복과 슬픔과 좌절과 고독과 아픔이 어디론가 뿅 하니 사라져 버리는 거라면 나는 더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저 매일매일 다른 누군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끄트머리에 지인은 자신이 탔던 열기구와 갖가지 음식사진을 보여주며 기회가 된다면 터키를 꼭 가보라고 하였다. Pinterest에서나 봤던 형형색색의 열기구가 떠 있는 사진을 보고 있자니 훌쩍 떠나고 싶어졌다. 꿈에서라도 그 열기구를 타고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고 싶다는 꿈같은 망상을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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