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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Aug 16. 2024

어쩌다 봉은사

이 중생은 어찌 하오리까

사람일은 정말이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다.

항상 회사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어딘가에서 맴돌며 집을 구해 살았는데 웬걸, 회사에서 지원받게 된 공유 오피스로 근무지가 옮겨지게 되었다.

무지막지한 주차비를 피하기 위해 환승을 하고 9호선 급행 지하철을 타야 해서 출근을 하기 시작했고 그리 땀이 많지 않은 체질임에도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면 콧잔등에 땀이 몇 방울 맺혀있고 얼굴이 상기해서 선크림이 들뜬 느낌이다.


삼성동은 실내에서 놀고 싶어 코엑스를 가는 날이 아니면 딱히 올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출근길마다 봉은사를 마주한다. 그래도 서울에 10년 넘게 살았다만 봉은사에 이렇게 넓은 주차장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여전히 근무시간 동안 주차하자니 부담스럽다만, 첫날 회사가 입점한 건물 주차장에 주차했다가 날려버린 요금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부처님의 은혜라 생각해야 할 지경이다.


지금은 봉은사에 연꽃들이 한껏 장식되어 있는 시기다. 새로운 사무실에 배정된(농담 삼아 유배온 사람들) 사람들과 봉은사를 갔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낮 기온이 36도를 오락가락하는 요즘에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을 점심시간에 밖으로 산책을 하자는 것은 더위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면 '대체 왜?'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몇 안 되는 우리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고 봉은사 앞 횡당보도에서 초록불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온몸의 땀구멍이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던 나도 이런 산책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절은 참 좋았다. 어릴 때 부처님 오신 날이면 우리 가족은 집 근처 앞산(놀랍게도 집 앞에 있어 앞산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정식 산 이름이 앞산이다)에 있는 임휴사를 들러 절밥을 먹었다. 절밥은 희한한 맛이 났다. 생긴 건 집에서 먹는 비빔밥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입에 한 술 넣으면 어린 내 혀에는 너무나 쌉싸름하고 떫고 초록초록한 맛이 입을 가득 메웠다. 나에게 그런 쓴 맛을 안겨주는 절이었지만 그런 어린 마음에도 절은 참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한참 마음이 어지럽고 힘들 때는 근교로 나갈 법한 절을 마구 검색했다. 너무 뒤늦게 운전을 시작한 탓에 당장에라도 절로 쏙 숨어버리고 싶은 시기에는 막상 찾아가지 못한 곳이 또 절이기도 했다. 그러다 이렇게 절이 코앞인 곳에서 일을 하게 됐으니 마음이 어지러우면 그냥 멍하니 앉아 있다 오기 부담스럽지 않겠다 싶다가도 이렇게 속세스러운 곳에 있는 봉은사는 내 마음속의 절과는 다른 곳이라 몇 번을 더 오게 될까 싶기도 하다.


하는 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쩌다 챗봇을 만들게 되면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 주는 툴을 써야 했다. 오래간만에 영어 쓰는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열불이 났다. 영어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사람 이름이며 문장이며 촤르르 써내면서 한글은 어쩜 이렇게 가지각색으로 허튼소리를 써내는 것인가. 챗봇에서 이것이 한국인의 이름이노라 학습시킨다며 8000명의 각기 다른 이름을 써주고 있자니 이것도 진이 빠지지만 이렇게 학습시켜 놓은 이름도 제대로 알아먹지 못해서 엄한 소리를 내뱉는 꼴을 보자면 어디로 내빼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갈 사람 다 가고 북적북적한 공유오피스도 조용할 때쯤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면 또 왼편 횡단보도 건너로 봉은사를 지나치게 되는데 속으로 괜히 꿍시렁거리게 된다.

나야 나밖에 모르며 살았다지만 집안 어르신들은 꽤나 절에 오가며 내 앞길을 빌어주신 거 같은데 이 지척에 있는 중생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속세는 번뇌의 연속이라지만 저를 위해 준비해 두신 살아생전의 기쁨이 있다면 조금 일찍 보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련히 덧없고 철없는 소리이지만 그런 볼멘소리가 난다.

그러다가 정 안 풀려서 회사서 잘린다고 해도 그럼 다 정리하고 어디 조용한 곳에 들어가 살지 뭐. 그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지. 그런 맥없는 자기 위로를 해본다. 그렇게 될 수도 있지. 그땐 그렇게 하면 되지.


몇 년만인지 해외를 가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지금 이 순간은 이메일 inbox에 담긴 e-ticket이 나를 구하는 길이려나 싶다. 이 다음에는 또 무언가가 있겠지. 아니면 만들어야 겠지. 그렇게 급행지하철에 다시 몸을 싣고 집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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