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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여니vvv Aug 30. 2024

영광, 그리고 인내

짧고 긴 그 모든 것




사랑이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또한 우리들이 고뇌와
인내 속에서 얼마만큼
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보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








  중 2 겨울,  생에 영광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시점이었다. 도에서 주최하는 글짓기 대회가 있었는데, 학교 선생님은 나에게 한번 도전해 보라고 제안을 해주셨다. 기한은 일주일, 형식은 자유.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는 데에 능숙했던 나는 당시에도 미룰  있을 대로 미루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무엇을 쓸까 내내 고민만 하다가 적당한 주제를 잡지 못하고, 결국 제출 당일 아침에 급하게 편지 하나를 썼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휘휘 갈겨쓴 편지였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내내 응어리져 있던 아버지를 향한 편지  통이었다.



  그렇게   편지 한 통 하나가 나를 그런 순간으로 데려갈 줄은 몰랐다. 특별상을 받은 것이다. 편지라는 형식이 심사기준에는 없어서 상을 줄지 말지 고민한 끝에 특별상을 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행사 자리에 참석해 편지를 직접 읽어달라는 제안까지 받았다.



  학교에서도  편지를 전부 출력해 액자로 만들어 복도  편에 걸어줄 만큼 크게 기뻐해주었다. 그 경험은 내 생애서 매우 얼떨떨하면서도 떨린, 그리고 자랑스러운 경험이 아닐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선물 같은 것이었을까.  순간은  후로도 오랫동안  마음에서 반짝반짝 뜨겁게 빛이 났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순간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없는 삶은 꽤나 고단했고, 또한 마음이 쉬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나의 열다섯 일화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번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는다. 능력이나 노력을 인정받았을 , 상이나 보상을 받을 , 그것은 필사적인 노력에 의한 보상일 수도 있고, 우연한 기회로 찾아온 인정일 수도 있다.  입학 첫날, 출근 첫날,  만남,  출산 그리고 신상품과의 조우 등등 처음을 상징하는 설레는 순간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영광의 순간들이 지나가면, 삶은 금세 평이한 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점은 짧고, 선은 오래 지속된다.  오랜 시간은 때로 너무나 지루해서 하품을 푹푹 해대야 할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설렘을 주었던 나의 두 시간 반짜리 아르바이트도 시들해져 버린 꽃잎처럼 얼마 안 가 지루함이 몰려왔다. 그때부터 나는 일하러 가야 하는 그 시간이 싫어서 아르바이트 시간 전까지 이부자리에 꼼짝없이 누워있곤 했다. 그러다 30분 전에야 꾸역꾸역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급하게 뛰어나가곤 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거겠지? 나는 매달 50만 원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하루 두 시간 반 그 이상을 아르바이트에 초점을 맞추며 인내했다. 달디  열매를 얻기 위하여 감내하여야  순간들에는 때로 ‘인내라는  글자로 표현해야  만큼 쓴 시간들이 함께했다.




   일상은 마치 밤하늘 같았다. 평온하지만 고요한 것, 어떠한 해석을 내놓듯 밤하늘은 그것을 모조리 삼켜 버린다. 나는 일상 속에서 지루했다. 하기 싫었고, 귀찮았으며 기분이 나빴다. 마냥 행복하지 않았고, 종종 좋아했던 일들에 설렘을 잃고, 권태감을 느꼈다. 그러나 밤하늘은 여전히 새까맣게 흐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그리고  위로 수백 개의 별이 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별은 참 아름다웠고, 내 마음에 황홀감을 주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찰나로 지나갔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삶이라는 이야기가 이토록 매력적인 것일까? 강렬한 햇살만으로 자라는 벼가 있던가? _ 거센 빗줄기를 견뎌낸 벼만이 숭고한 쌀을 내놓는다지.



   아마도, 아마도 나도 그 벼와 같지는 않았을까? 나는 내가 살아온 수많은 해 동안, 영광만으로 자라지 않았을 터이다. 나는 오랜 인내를 통해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꿈꿔왔던 것이다.










 안에서 꽃이 피었다.


꽃은 사랑을 머금은 채였다.


나의 꽃이 이렇게 피어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오랜 기다림 덕분이었을 것이다.







   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원 없이 인내해 본다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기꺼이 품어 보겠다는 각오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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