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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Jan 28. 2024

숨결에 포커스를 맞추는 구본창의 작가와의 대화

사랑 고백같은 사진전~ 구본창의 항해는 3월10일 까지

사진작가 구본창(1953~)의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대에는 사건이나 실제 대상을 정확하게 촬영하는 스트레이트 사진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한다. 1988년 워커힐 미술관에서 구본창 작가를 포함한 8인의 사진작가들은 사진에 회화, 조각, 판화 등 다른 매체의 속성을 반영한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은 객관적인 사진에서 벗어나 감성을 표현하는 연출사진을 선보여 사진계에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구본창 작가는 젊은 시절 틀에 박히고 안정된 삶을 거부하고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향했다.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교에서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중 사진작가 안드레 겔프케를 만난다. 그는 “유럽식 사고가 아닌, 한국 유학생의 사고로 사진을 만들어 보라”고 조언하였고 이후 구본창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한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험적이고 과감하고 작품들

<구본창의 항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시간의 순서대로 전시되어 있어 작가의 일대기를 볼 수 있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수집품을 모아놓은 ‘호기심의 방’에서부터 시작하여  젊은 날의 자화상과 독일 유학 시절 작품들로 이어진다.

유학 시절의 작품 중 <일분간의 독백>은 불분명하고 불안하여 뒤척이던 시간을 반영한 듯하였다. 44분을 나타내는 디지털시계의 사진을 통해 일 분이 지나 45분으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하는 듯하였다.     

한국에 돌아온 작가의 사진은 마치 몰카를 찍는 듯한 느낌의 사진이었다. 정장 스커트를 입은 여인의 통통한 다리와 수영복을 입은 땅딸막한 근육질 남성의 몸 등의 사진이 재미있었다. 이렇듯 한 장의 사진이 다양한 상상을 하게 하였는데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고독함이 오히려 작가를 더 대담하게 만든 것 같았다.      

시계를 촬영한 인화지를 그을린 작품을 통해 소멸을 표현하는 과감한 방법이 인상적이었으며 <대초에> 시리즈에서 부분을 인화해서 재봉틀로 박아낸 것도 독특하고 멋있었다. ‘영혼의 사원’ 섹션에서는 가장 유명한 12개의 달항아리 사진인 ‘문라이징Ⅲ’을 감상하였다.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백자 항아리가 어둡고 밝고 다시 어둡기를 반복하는 것이 마치 커지고 작아지는 실제 달처럼 보였다. 마침 그곳을 방문한 한 쌍의 연인이 달빛 아래서 서로를 위로하는 듯 앉아 있어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실제 달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백자 도자기는 모두 박물관에서 찍어 당연히 빈 그릇이다. 흐릿하고 모호한 분위기의 작품들은 시간의 흔적을 지워 조선시대 어느 순간을 현재로 불러온 듯하였다. 또 다른 섹션에서는 빈 공간도, 먼지가 내려앉은 모서리에도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듯 비추고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빈 백자 그릇 작품 앞에 서니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을 마신 듯 몸에 온기가 돌았고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세마홀로 향했다.     


달항아리를 달빛처럼 은은한 마음처럼

루시리와 달항아리

구본창 작가와의 대화는 27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시립미술관 지하 1층 세마홀에서 열렸다.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과 작품제작 기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달항아리를 찍게 된 계기는 이렇다. 1989년 루시 리가 백자와 찍은 사진을 발견한 작가는 외국인 옆에 서 있는 조선 백자를 서글프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다가 2004년 일본 여성잡지에 백자가 특집으로 실린 것을 보았고 한국 사람이 백자에 관심을 갖도록 제대로 찍어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청자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백자는 관심이 적었다. 교토의 미술관에 있던 달항아리를 촬영하여 전시회를 열어 조선 백자를 소개하고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면서 백자의 아름다움이 차츰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달항아리가 지금처럼 사랑받게 된 것은 작가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구본창 작가의 말이다. “달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것처럼, 그것을 선비가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촬영하고 싶었어요. 배경에는 한지를 대어 그런 분위기가 나도록 하였습니다.”      

비누 사진은 비누향을 좋아하는 작가가 색깔마다 어떤 향기가 나는지 맡아보고 싶어 했는데 어느 날 스캐너에 비누를 넣어 보았더니 사진으로 찍을 때보다 더 예쁘게 나와서 여러 가지 비누를 찍게 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 갈라진 비누의 모습도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탈을 찍게 된 사연도 재미있었는데 이두현 교수가 어린 시절 구본창 작가의 옆집에 살았다고 한다. 작가는 어릴 때 옆집으로 놀러 가면 하얀 탈이 있어서 무서웠는데 어느 날 타이항공을 타고 가다가 태국의 탈 사진을 보게 되었다. 격렬한 춤동작도 아니고 멋진 무대도 아닌 그냥 길에서 찍은 사진이 더 마음에 들었고 우리나라 탈도 그렇게 촬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전국을 돌며 총 13종의 가면극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탈춤꾼을 사진에 담았다고 한다. 탈을 찍을 때 뒷배경으로 쓰인 천은 건설자재 판매하는 곳에서 모래를 덮어 놓은 천을 산 것인데 탈춤꾼이 서 있는 시간과 장소를 짐작할 수 없어 오히려 더 현실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작가의 설명이 끝나고 참여자들이 질문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사진을 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이 먼저 손을 들었다.

“상상을 이미지화시킨다는 것이 어렵다. 개념을 구체화한 다음 이미지를 만드시는지 아니면 반대이신가요?”

구본창 작가의 말이다.

“개념보다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먼저 발견합니다. 찍고 이것을 다시 어떻게 만들까 생각을 합니다” 또한 작품을 수집하듯이 단어도 수집하는데 대화 중에 좋은 단어가 나오거나 신문이나 책을 통해 발견한 글귀를 메모해 두었다가 작품의 이름이나 주제로 사용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당부가 있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의 몫을 다 하는 사람은 모두 기억해 주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정을 해줘야 감수성이 생기고 여러 가지 습득을 위한 노력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피사체의 숨결까지 느껴지는 작품들은 주변의 사물을 사랑하고 아껴온 작가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긴 항해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구본창의 항해>의 표지 사진을 보았다. 제주도 바다에서 밖으로 나오는 소년의 모습이었는데 바다의 숨결도 소년의 호흡도 느껴졌다. 바다에서 헤엄을 쳐 본 사람만이 물의 온도와 맛과 파도의 출렁임을 얘기할 수 있다. 항구에 도착한 구본창 작가가 오랜 항해 기간 동안 내뱉는 한숨과 탄식, 탄성과 환호, 그리움의 울먹임을 500여 점의 작품과 600여 점의 자료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전시장을 나오며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연결할지,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 간직할지 생각하게 되었고 작고 버려진 것도 사랑하는 작가의 세계를 함께하는 동안 변화에 맞추던 가쁜 호흡은 어느덧 잔잔한 파도처럼 편안해지고 있었다. <구본창의 항해>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3월 10일까지(매주 월요일 휴무)이며 무료이다.  

다음 작가와의 대화는 2월17일 토요일 오후2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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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에 포커스를 맞추는 구본창 작가와의 대화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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