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프루크루테스라는 괴물은 사람을 아주 특이하게 죽인다. 지나가는 행인을 잡아 침대에 눕혀 온몸을 꽁꽁 묶는다. 그의 다리가 침대보다 길면 잘라 죽이고, 침대보다 짧으면 강제로 늘려 죽인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은가? 놀랄 것 없다. 우리가 평생 당해온 일이다.
나는 어릴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연필로 무언가를 그릴 때면 몰입하여 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스케치북에 그린 나의 상어 그림을 어머니가 칭찬해준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본격적인 학교생활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학교는 배움의 장이 아니었고,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나뉘는 끝없는 레이스의 장이었다. 남보다 더 빨리 가기 위해 그림 그리며 여유 부릴 시간 따위 없었다. 학교, 학원, 독서실의 무한 반복 사이클이 돌아갔고, 성적과 석차를 통해 인생을 평가받았다. 진학하게 되면 어떤 과목으로 누구와 경쟁하는지만 달라질 뿐 양상은 똑같았다. 이런 식으로 초중고 12년, 대학교 4년 총 16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이것이 괴물의 침대에 묶여있던 나의 과거다. 이 시기를 거치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어린아이는 완전히 사라졌다. 개성과 열정을 괴물에게 잘려버렸고, 나만의 호기심과 꿈을 모조리 잃어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똑같은 인간 천지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살아있지 않다. 그저 시체처럼 괴물의 침대에 누워있을 뿐이다.
이 학살의 절정은 회사에서 자행된다. 회사는 직원을 부려 먹기 위해 그들을 속여야 하고, 이를 위해 엄청난 미끼가 사용된다. 바로 그들의 미래다. 시키는 대로만 살면 완벽한 미래를 보장해준다고 속인다. 남은 인생 전부를 회사에 저당 잡힌 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은 쏙 빼놓은 채 말이다.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믿게 된다.
‘돈 많이 버는 것이 최고다. 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고,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나갈 방법을 찾지 않아도 된다. 굳이 가슴 뛰는 일 찾으려 머리 아플 필요도 없다. 그냥 열심히 불평불만 없이 회사 다니며 돈만 모으면 내 인생은 그럭저럭 완벽해질 것이다.’
그렇게 10년, 20년이 지나 이제는 자유가 두렵다. 내 능력은 빛을 바랬고, 열정은 사라진 지 오래며, 체력도 떨어졌다. 드디어 인간은 죽고 빈 껍데기만 남았다. 괴물의 승리다.
이 괴물의 정체를 눈치챘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세뇌시키고 조종하는 괴물은 도대체 누구인가? 학생에게 무한 경쟁을 부추겨 꿈과 희망을 모조리 앗아 간 학교가 괴물이고, 직장인의 눈과 귀를 막아 일하는 기계이자 노예로 만든 기업이 괴물이며, 이런 인생을 성공한 인생으로 홍보하고 퍼뜨리는 사회가 괴물이다. 괴물의 덩치가 너무 커서 무서운가? 싸우고 도망칠 엄두가 나지 않는가?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요다 선생이 루크에게 말한다.
'한번 해보겠다는 정신으로는 안돼.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야.
그러니 선택해.'
이제 결정의 시간이다. 벗어날 것이냐 머무를 것이냐. 나라는 사람을 묶어놓은 저 괴물을 보면 참지 못할 분노에 휩싸인다. 지금이라도 못난 그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침대 밖으로 도망치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핑계 대지 말자. 이 세상 어디든 괴물의 침대보다는 나을 테니.
흘러가버린 과거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남은 내 인생 가장 젊은 오늘부터라도 인간답게 사는 길을 선택하자. 잃어버린 내 개성, 열정, 호기심을 찾아 인생을 새로 살자. 침대 위에 머무르기에는 나라는 사람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