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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크레용 Dec 21. 2021

아들의 사춘기 2

사교


6학년 아들이 잠드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9시가 되면 핸드폰도, 패드도 회수하기 때문에 9시 부터 잠들기 전 까지는 책을 읽거나, 카드를 하거나, 동생을 놀리며 시간을 보내는 아들이다.

그런데 며칠전부터는 다음날 숙제를 미리 하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놀기 위한 아들의 큰 그림이다.

불과 1주일 전

아들과 대화에서 아들이 말장난 처럼 이런 말을 했다. " 외출 금지"가 다른아이들에겐 '벌'이지만

본인에겐 '상' 이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아들은 우리집 최고 집돌이였다.

친구를 너무 좋아하지만 엉덩이가 무거운 아들의 선택은 이제까지 늘 '집'이었다.

그러다 요즘 심하게 잦아진 여자친구들의 전화." 놀자"

" 어딘데..?. 아니... 끊어.."

하루에도 몇번이나 계속되는 집요한 전화. 귀찮아하면서도 반쯤은 즐기는 듯 하기도 하지만 결국 거절하는 아들.

보다 못한 애미가 나서본다.

여자 친구들은 남자와 다르게 전화 한번 걸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니 너무 그렇게 쉽게 거절하지 말지...

보는 애미 마음이 다 찢어진다고 했다.

" 그래도.... 그래도..... 너무 부끄럽단 말이에요 " 하며 얼굴이 붉어져 사라진 아들.





© thepoorphotographer, 출처 Pixabay






그날 밤

애미는 날을 잡았다.

" 아들, 여자 친구라고 너무 그렇게 거리를 둘 필요는 없어.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는 일단 만나보면 알게될 것 같아. 살면서 만난 모든 친구들이 엄마에겐 스승이였어. 좋은 가르침이든 나쁜 가르침이든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친구를 통해 배우는게 참 많았던거 같아.정말 좋은 친구 같은데 만날수록 별로인 친구, 처음엔 별로였는데 만나면 만날 수록 통하는게 있는 친구,그리고 무엇보다 그 나이에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지.

13살의 성장단계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

14살에 친구

.

.


20살의 친구.

각각 다른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고 다른 우정을 나누게 되는거야. 그러니까 지금 만날 수 있는 친구를 흘려보내면 너는 13살의 친구를 스킵해버리는거 아니겠니??








© elliot_drew, 출처 Unsplash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본격적인 사교.꺼두었던 단톡방 알림을 켜고 귀찮은 발걸음을 떼고 인간관계의 피곤함을 몸과 마음으로 겪어내고있다.

" 내가 왜 나와있는지 모르겠는데 ... 괜찮았어요 ... 여자애들은 말이 너무 많아요 놀고 오니까 내 시간이 너무 없긴 하네..."

하면서도 그날 저녁 아들은 또 다시 다음날 숙제를 모두 마치고 잠들었다.







© geralt, 출처 Pixabay





일탈과 탈선


하루 종일 또 친구들 속에 있다보니 저녁시간 애미가 땡긴 아들이 동생 몰래 애미 품을 파고 든다.

" 아들. 친구들과 그렇게 다니다 보면 재밌는 일이 참 많지만 나쁜짓도 하게될 수 있어."

"어떤 나쁜짓이요?"

"담배를 피워본다거나, 술을 마셔본다거나, 여자친구와 뽀뽀를 해본다거나... 그런거. 엄마는 아들이 그정도 경험을 나쁘게 보지는 않아.담배를 피워보고, 술을 마셔보고, 여자친구와 스킨십을 할 수도 있어 그런 경험을 해보고 난 후에 결정 역시 네 몫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딱 두가지가 있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것. 다른 사람이 너를 괴롭히는 걸 참는 것. "




일탈과 탈선은 다르다.


일탈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탈선은 규범을 넘어서는 일이다.

" 청소년 시기에 아이들은 사람이 죽는 줄 몰라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이야기가 뉴스에 자주 나와."

" 예를 들어 주세요"

" 온라인으로 여러명의 친구가 한 친구를 왕따시킨다거나, 폭언을 하는거. 여러명이 한 명을 한 대씩 때릴때 한명이 입게되는 신체적 정신적 데미지를 청소년 시기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해서 가혹행위를 하게되기도하고

가혹행위의 피해자가 되기도해."





 © Dimhou, 출처 Pixabay




자립


말랑 말랑 뽀돌 뽀돌하던 아들의 손발의 크기가 애미를 뛰어넘고,보돌보돌 부들부들 슬라임 같던 어깨는 각이져 골격이 잡히고, 어느 순간 애미보다 더 빠른 판단을 하며 힘으로는 이미 애미를 훌쩍 뛰어넘었다.

자립은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것을 뜻한다.

아들은 사춘기를 지내며 아들이 타고난 본능대로, 순리대로 자립을 준비한다.

아들은 이렇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차근차근 자립을 하고 있다.

오히려 힘든건 애미의 자립이다. 어쩌면 애미의 자립이 아들의 자립보다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들에게 탯줄처럼 연결해 두었던 기대와 바램, 집착을 끊어내고

이제 엄마인 내가 먼저 아들로부터 당당하게 자립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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