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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크레용 Apr 01. 2022

아들이 사춘기 5

다음에 잘할 시간이란 건 없다.


아들의 사춘기 5.






눈곱을 떼자마자 약간의 배만 채우고 애미 눈도 한 번 마주칠 시간도 없이 서둘러 등교하는 아들은 4-5시 즈음 하교한다. 하교한 아들은 현관에서 욕실로 직행해 하루 종일 밀린 볼 일을 보고 손을 닦고는 아침과 똑같이 애미 눈 한번 제대로 보지도 않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이제 더 이상 노크 없이 아들 방을 열지 못한다. 3-4번의 노크 후 겨우겨우 열리는 한 뼘의 문틈으로 간식을 빼꼼 밀어 넣어주면 학원을 가기 전 1-2시간을 최선을 다해 카톡과 게임으로 배를 채운 아들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웅얼웅얼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집을 나섰다가 핸드폰을 내놓는 10시까지 혼자만의 뒤늦은 저녁밥을 먹으며 또 밀린 카톡과 게임으로 배를 채운다. 이렇게 급격하게 멀어져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귀여운 나의 진상 아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애미의 품을 떠났다.
















초등시절 카톡방 알림을 꺼두고 제대로 답장도 하지 않았던 준비되지 않은 아들은 학급 단톡, 자유학기제 단톡방, 선생님 없는 학급 단톡방, 친구들 단톡방, 또 다른 친구 단톡방, 동아리 단톡방, 여친톡, 남친톡, 여사친톡 .... 그 많은 톡을 파악하고 답을 하느라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진했다. 그런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에 종일 몰입하는 중간중간 끼어드는 엄마 아빠의 안부에는 짜증스러운 대꾸를 했고, 질문에 대한 대 답은 최대한 짧게 하려고 했다. 그나마 톡이나 문자로 질문을 하면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는 아들....




TV에서처럼 집에 있으면서도 카톡이나 메시지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현실이 되어가는 모양새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실연당한 사람처럼 가슴이 훵했다가 배신감도 느껴졌다가, 섭섭함에 아들에게 냉랭한 말을 쏘아대기도 했다. 법륜 스님이 엄마는 '늙은 여자' 라더니 내가 바로 아들의 '늙은 여자'였다.








© a_d_s_w, 출처 Unsplash





단톡방의 함정.



나의 섭섭함은 아들의 몫이 아니다. 애미의 휘청이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겨우 잡아다 앉힌 밥상에서


또 아들을 불러 또 애미의 역할을 다해 본다.


"이안, 요즘 정말 많은 카톡방을 열어두고 있더라? "


" 네. 그룹과제도 해야 하고 선생님도 공지를 카톡으로 하니까요. "


" 그래. 너도 이제 단톡 생활을 시작했으니 엄마가 한 가지만 당부할게. "


" 네"


" 단톡방에서 누군가를 왕따 시키거나 여러 명이 한 명을 놀리거나 흉을 보기 시작하면 그 방에서 떠나야 해.


네가 그 왕따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를 괴롭히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도 모르는 사이 폭력을 당하고 있는 거야"



" 왜요? 저는 그냥 보기만 했는데요?"


" 왕따를 당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방관자 역시 동조자로 보이는 점도 문제지만


누군가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느 정도로 어떻게 괴롭히는지 그 과정을 지켜본 후에는 누군가 그런 일을 너에게 시작하려고 하기만 해도


너는 이미 그 과정을 다 지켜봤기 때문에 미리 예측해서 고통을 받게 되어있어. 그러니까 그런 과정을 호기심이나 재미로 지켜보지 않기로 약속하자."


" 네.''



이런 약속이 당장 아들에게 그렇게 큰 효력이 발휘하지는 않는다.


아들은 의도를 하든 하지 않든 이런 폭력을 당하거나, 가하거나, 지켜본 후에나 애미의 이런 말이 생각날 테니까.


애미는 그저 그 먼 훗날 아들의 고민과 반성의 시간에 씨앗을 뿌려두는 것이다.


최소한 그다음 그다음 선택에 방향을 잡을 수 있길 바라며...








다음에 잘할 시간이란 건 없다.






© FunkyFocus, 출처 Pixabay







'있다가 하자'


'이것만 다하고 같이 하자~ '


'다음 주에 꼭 가자'


'더 크면 같이 유럽여행 가야지..'


'다음에 꼭 같이 가봐야지..'


'다음엔 꼭 아들이랑 같이 와야지..'


'일 년만 기다리면...'


'조금만 더 있으면....'


'다음에..'


'다음에..'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미루던 시간들.


시간이 되고, 경제적 여력이 되어도


부담스럽게 턱을 괴고 엄마 아빠만 기다리던 아들은 이젠 없다.




가까운 어르신께서


육아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셨었다.



' 아이들이 어릴 때 너무 힘든데... 아이들과 시간은 사실 그때 뿐이라고....'



이미 다 들었으면서도, 다 알면서도


꼭 당해봐야 뜨거운 줄 안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말한다.


" 아들아 커서 엄마한테 효도할 생각일랑 말아라... 그런 마음이 들 때면 그냥 지금 잘해. 커서는 너한테만, 혹시 가족이 생긴다면 네 가족한테나 잘하고.. 커서 어미한테 효도한다는 생각은 넣어둬!"





아들에게도


내게도


다음에 잘할 시간이란 건 없다.








© Shlomaster, 출처 Pixabay





아들과 함께 읽었던 '잘했어 아가야'에서 처럼 아들은 애미의 캥거루 주머니를 떠나 친구들에게로 뛰어갔다.


친구를 향해 뛰어가는 아들에게 나도


허전함과 섭섭함 보다


" 잘했어 아들.''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였다.



그림책 마지막에서 처럼


너무 멀리 가지 않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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