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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Oct 05. 2024

가을 이야기 1

 털어야 맛?

     추석 무렵이었다. '밤을 주워와야 하는데 갈 사람이 없다.'며 내게 말을 건네신 분은 어머님이셨다. 예년 같으면 부지런한 어머님과 발 빠른 가족들이 먼저 나서고 어쩌다 꽁무니에서 몇 알 줍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가족들의 몸 상태가 나빠지니 누가 주워 왔으면 좋겠단 말을 대 놓고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몸이 좋지 않아 늘 미루다가 가보면 벌써 누군가 왔다 가고 난 뒤였다.


  며칠 뒤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밤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밤송이가 제법 달려 있다. 그제야 올해는 먼저 발견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꼼꼼 뒤지다 보니  간신히 제사상에 올릴 만큼의 밤은 찾았다.

   추석 연휴가 지나가고 연이어 비가 왔다. 밤나무 아래로 갈 엄두는 안 나는데도 눈동장을 찍어 둔 탐스러운 밤송이가 신경 쓰였다. 아버님께서 심어 놓은지 십여 년쯤 되었으나 제대로 주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달려있는 밤송이를 본 것이라 눈에 삼삼 했다. 게다가 근처에 집이 두 채나 있으니 올해는 밤도둑이 들지 않겠거니 했다.

  줄기차게 오던 비가 그치고 다음날이었다. 딴엔 서둘러서 갔건만 나무 아래에는 온통 밤송이만 수북했다. 가족들은 제사용으로 쓸 작정이라 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 아닌 사람은 눈에 보일 때가 털 때라 여긴 것 같다. 탓이라면 길에서 잘 보이는 곳에 심은 것이 첫째요, 차가 쉬 들락거리기 좋은 곳이 둘째 탓이었다.

   또다시 한 주일이 지나갔다. 이번엔 몇 알이라도 떨어져 있겠거니 했는데 그나마 달려 있던 밤송이도 다 바닥에서 빈 껍데기로 뒹굴고 있었다. 한번 따간 사람들이 또다시 왔던 모양이다. 화가 났지만 어디 화풀이할 때도 없고 그냥 허탈했다. 몇 년을 그리 당했는데 올해도 도둑님이 먼저 다 털어간 것이다.

  빈 바구니를 들고 터덜터덜 걷다가 혹시나 하고 자잘한 토종 밤나무아래로 가봤다. 다행히 그 밤나무 아래에는 사람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하여 떨어져 있는 밤을 조금 줍고 나니 어느 정도는 속이 좀 풀렸다. 이 밤이라도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다음날부터 눈뜨자마자 들락거렸다.

 쳐다보는 나는 애가 타건 말건 저절로 떨어지는 밤은 적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연신 밤송이는 어른거렸다. 그러다가 남편을 졸라서 밤을 따러 갔다. 생각보다 벌어진 밤송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다만 내 눈에 많아 보였던 것뿐이었다.

    내년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밤송이가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털까 싶다. 빈나무 쳐다보고 속상해하기보다는 그것이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 것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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