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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묘 Jun 24. 2022

히드로 공항의 코스타 커피

성인과 어른, 그리고 혼자 여행하는 멋진 대학생이 된 것에 대하여

공항에 왔다.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탄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모님이 그립다기보다는 2019년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도 유럽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히드로 공항에 '들렀기' 때문이다. British Airway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연착되어 그 비행기를 타고 히드로에서 경유하여 서울로 향하려고 했던 모두가 그 연결편을 놓쳐버렸다. 그때 멘붕이 온 (주로 대학생이었던) 수많은 한국인 배낭여행객들을 길 잃은 어린 양을 이끄는 목자마냥 나의 부모님이 이끌고 무사히 환승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성인'과 '어른'의 차이를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연착때문에 비행기를 놓친 승객들은 (갓 생일이 지난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 성인이었지만, 그 중 연착소식에도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고 안내방송을 들으며 다음 연결편 티켓을 받아낸 어른들은 우리 부모님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혼자 공항에서 커피를 시켜먹으면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멋진 대학생이 되고 싶었던 나는 처음 마주친 국제미아가 될 위기에 바로 부모님과 함께 여행 온 것을 그렇게 다행으로 여길 수가 없었다.


하하, 그런데 내가 오늘 바로 그 '공항에서 커피를 시켜먹으면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멋진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3년 전의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혼자 여행하는 공항의 대학생'이 된 소감을 우선 이야기하자면, 일단 약간 뿌듯하다. 내가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내가 혼자 이렇게 모든 서류를 구비하고. 짐을 부치고, 여권을 챙겨서 여행을 할 정신머리가 있다는 게 대견하다. 이제 혼자 국경을 넘나드는게 무섭다기보다는 재밌고, 때로는 지루하다. 공항 줄은 가끔씩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외롭다. 다들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왔다. 혹은 함께 돌아간다. 사실 지금 내 돌아가는 비행기 옆자리에 누가 앉게될지 좀 걱정된다. 몇시간 비행이더라? 개인적으로 내 옆자리가 비었으면 좋겠지만 아까 체크인 할 때 줄을 보아하니 그건 무리일 것 같다. 이 글을 올리고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대한 그렇게 해 볼 것이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코스타커피는 3년전 혼돈의 환승에서 모든 배낭여행객들이 마음을 진정하고 커피를 마시던 곳이다. 어떻게 확신을 가지고 기억하냐면, 여기가 제 4 여객터미널인데, 3년 전에 제 4 여객터미널로 가기 위해 공항 내에서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면서 고생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교환학생들과 배낭여행객들을 부러워 하던 나를 생각하면 완벽한 수미상관격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 모순되긴 하는데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냥 좀 싱숭생숭하고 그렇다. 일단 비행기를 타러 가야하니 이만 글은 줄이도록 하겠다.


아,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건 여행을 마무리하는 글이 아니다. 그 글은 따로 준비중이다. 이건 그냥 공항에서 급히 휘갈기는, 정돈되지 않은 생각의 향연같은거다. 그러니까 쓰여진대로 대화하듯이 의식의 흐름대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영국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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