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서 그런가? 아니야 비는 안 오고 흐리기만 해서 그래
이유 없이 울적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그냥 그런 날인 거다. 그건 전날 잠을 잘못된 자세로 자서 목에 담이 걸려서도, 그래서 애매한 시간에 일어나서 산책도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인스타그램 릴스만 내리다가 하루를 시작해서도, 눈앞에서 지하철을 놓쳐서도 아니다. 그냥 가끔은 그런 날도 있는 거다.
이런 날에는 왜 나의 기분이 이런 상태인지를 묵상하고 있으면 안 된다. 어차피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니까. 그냥 이런 날에는 기분의 흐름에 따라 하루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다. 그저 침잠하지만 않게 조심하면 된다. 우울에 그렇게 잠식당하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포유류이기 때문에 숨을 참고 잠수를 하다가도, 숨이 차오르면 뭍으로 올라와서 공기를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글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위안이 된다. 우리는 글을 통해 엉킨 실타래처럼 두루뭉술한 마음을 펼쳐내어 시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던 사실들을 언어화해서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아주 짧은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에 나의 마음을 잘 챙기지 못한 탓인가? 아니면 너무 잘 챙겨서 문제였을까? 아니다, 이런 생각은-앞서 이야기했듯-관둬야 한다. 나의 무언가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들 가끔은 이런 기분, 이유가 없는 기분을 느끼는 날이 있는 것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그런 날을 보내고 있다면, 세상에서 혼자 그런 기분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님에 위안을 얻고 가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