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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Feb 25. 2024

 하루종일 속이 시끄러운 이유에 대해

왜 내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일까? 응당 받아야 할 대가와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거나. 나의 공을 누군가 가로 챘다거나 불합리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제대로 반발하지 못하고 그저 아무 힘없이 지켜봐야만 할 상황에 처해있거나 현재 나의 기본적 전투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음을 인지했을 때 느껴지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무게를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우왕좌왕하는 마음의 모습과 소리가 겉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까 생각해 보다. 내가 내게하는 마음의 이불킥 같다.


 나는 상처받는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버럭 '화'를 내거나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바보처럼 웃어보이고 맞장구 친 뒤 아주 마음 속 깊이 묻는다. 정말 깔끔하게 묻어버리면 상호 간에 좋을 텐데 문제는 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가 건드려질 때마다 수시로 바깥으로 꺼내어 들추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오고나 도리어 그가 이번엔 나의 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었을 때 에도 마치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듯 애초 내지 상처 주었던 말은 기억해내며 " 아- 그런건데요 뭐 원래'라는 식으로 스스로론 밑바닥까지 밀어 넣어 버리고 만다. 상대는 내 상처와 내 상처의 표현 법에 대해 관심이 없다. 누구나 그렇다. 내게는 오해인데  상대에게는 오해는 사실인 것으로 '이해 ' 된다는 것이다.


지난 금요일 나는 하루종일 나 스스로도 내가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초중고 시절 왕따 당하던 시절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원하던 반성문같은 장문의 글을 보내고 말았다. 나는 또 그 레퍼토리를 밟고 있는 것이다.


자기반성. 성찰은 혼자 하면 된다. 상대가 불편해하고 기분 나빠하거나 내가 직접적 피해를 입혔다면 그때 사과하면된다. 하지만 나는 그걸 알면서도 미움받거나 욕먹을 용기가 없어서 상황과 상대의 마음을 지레 짐작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니었 을 수 있는데 나 혼자 지레짐작한 것이다.

내가 지금 가장 마음이 어려운 이유는 나는 그 상대에게 여러번 상처받은 적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었는데 내 상처는 표현조차 못하고 왜 도리어 사과를 했을까?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인가? 왜 다짐과 행동이 따로노는 것인가? 왜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는데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마흔이 넘어서도 이렇게 살 것인지, 앞으로도 복종하듯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 마치 상처 주는 사람이 센 사람인 것처럼 모순되게 마음에서 추앙이라도 하듯 살 것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내가나를 소중히 아껴도 나를 싫어하는 이는 어디든 존재한다.  다만 분명한 건 나도 싫어하는 나를 나보다 더 진심으로 아껴줄 이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요 며칠 내가 내가 그나마 잘한 일은 시끄러운 마음은 글로 적어 내려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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