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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Jun 11. 2024

서른여덟은 맑은 날이 많을 줄 알았습니다

역시나 인생은 그렇다. 나는 재작년부터 이곳에 서른여섯, 서른일곱 시리즈를 연재해 왔다.

그렇게 내 인생이 엄마로서 회사원으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가장 많은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때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극심한 스트레스를 글로 폭발시키는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로 시작했었다.


작년 가을 직전 회사를 퇴사해 두 달 동안 이일 저일 기웃거리며 내 진로를 찾겠다며 노력하 두 달이 체감상 2년 같았다.


그때 서른일곱의 나는, 더 이상 그 나이를 더는 무방비하게  흘려보낼 수 없고 한 달에 300만 원이라는 대가를 치르며 보내는 놓칠 수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바심이 났고 서글펐다

그렇 두 달여 만의 새 직장을 얻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작년 말경이 되어서야 다가오는 2024년 서른여덟 시 리즈는 밝은 이야기들, 진취적인 이야기들, 우리 아이들의 다 커서 다시 쓰는 육아일기가 될 것이라 예상했고 거의 확신했다.


하지만 나는 작년 6월 말과 비슷한 상황에 서 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회사경영진의 무능함과 무책임함, 회사에 닥쳐오는 사안들의 심각성을 모르는 모습들, 말을 해줘도 아무리 설명해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들을 보며 더는 함께 할 수 없음을 알았다. 결국 다시 나의 증세들은 심해지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더 웃고 더 힘내고 괜찮다 괜찮다 여겼거늘.


그들은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휴머니즘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도취된 나머지 무능과 무책임과 방만경영은 뒷전인체 직원들이 1년에도 몇명씩 퇴사할때마다 "우리가 이렇게 잘해주는데..."로 무마시키며 스스로들을 위안하고 있었다. 원인을 스스로에게 찾지 않았다. 이번 나의 퇴사를 앞두고도 그렇게 하겠지.


나는 하루빨리 이곳을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방만경영을 하는 사람들의 직장에 내가 관련부서 소속인것이 공포스러울 지경이니까.


다만, 9년간 다닌 회사의 퇴사 전적이 있는 나는 두 번째 직장은 더욱 신중했어야 했음을 통감한다.


두곳중에 선택한곳이고,  재취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결국은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졌고, 그렇게 나의 글쓰기와 마음을 다듬고 공부하는 시간들을 직장생활과 병행하는 듯했으나 차츰 그 끈의 탄력성이 떨어졌고 마침내 해이해지는 과정에 까지 이르렀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렇게 재취업한 회사와도 마지막을 준비한다. 회사의 기밀(?) 일 수도 있어 뭐라고 더 적을 순 없지만, 내가 버티기엔 너무나 가져가야 하는 무게가 큰 일들이다.




어제 회사에 퇴사를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퇴사하는 게 슬퍼서가 아니라, 또다시 남편에게 짐을 안겨준 것 같아서. 멈출 수 없는 눈물이 지하철에서 몇 시간 내내 흘렀고, 회사 다닌 다는 핑계로 또다시 소홀해져 갔던 아이들과의 육아와 교감. 전보다야 훨씬 나아지고 노력했지만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사는 사람은 아이들 과의 육아에서 만족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고작 1년 전 다짐을 잊고 당장의 극심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어찌하지 못해 늘 휴대폰중독에 빠져 살던 나.


첫회사를 퇴사하면 나올 때만 해도 아이들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겠다며 9년의 세월을 그리도 뼈아프게 후회하지 않았던가.


결국 나의 안일함과 간사함마저 느껴지는 엄마로서의 나의 행적을 또다시 한탄하며 거듭 눈물만 흘렸다.


그래도 노력해서 또 여기까지 왔는데, 첫 회사에서 나 스스로 퇴사를 결정하며 나올 때, 그렇게 면달이 흘러 에게 얼마나 만족했었는데..


나 스스로 결정해서 이렇게 또 다른 회사에 취업했으니 정말 나만 정신 차리고 우리 가족들과 건강하게 살면 될 줄 알았다.


내가 결정한 퇴사지만 사실 그 근본적 원인은 회사에 있다. 회사에서 나보고 나가라고 등 떠민 건 아니지만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일들을 그간 해오고 죄의식도 일말의 심각성도 못 느끼고 있는 곳에서 더 다닐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런 일들을 관리하는 부서에 실장으로 있다. 여러 차례 문제제기했고 묵과당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눈감고 계속 가거나 그곳을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퇴직의사를 어제 밝혔고 짧으면 7월 중순, 길면 7월 말이다.


나의 서른여덟은 아직 저물지 않았다.

후회하고 눈물 흘리기보다 뼈아픈 반성과 참회만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이다.

전회사의 영향으로 종교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던 시간들조차 다시 접고 종교에 의지하며 마음을 닦아가려 하고 있다.


그저 지금 내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건, 혼자 뜬구름 잡지 않는 현실감각..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 그런 가족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다짐. 하루하루 소중하게 여길 줄 알며 과거의 다짐을 헛되이 여기지 않는 마음들이겠다.


나의 서른여덟 시리즈가 마감될 때 즈음엔 오늘보다 맑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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