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리스본행 야간열차’ 문학기행
리스본에서 읽는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7개의 언덕'을 헤맨 그레고리우스의 행적 좇는 여정
영화가 생략하고 왜곡한 원작 소설의 깊이와 넓이 탐색
'운명의 노래' 파두 대신한 거리 공사장 인부의 '사우다데'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사람들의 만남이란 한밤중에 아무런 생각 없이 달려가는 두 기차가 서로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는 뿌연 창문 저편의 흐릿한 불빛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시야에서 바로 사라져서 알아볼 시간도 없는 사람들에게 빠르고 덧없는 시선을 던진다. 무(無)에서 나와 아무런 의미나 목적 없이 텅 빈 어둠 속에서 조각처럼 빛나던 창틀, 그 창틀에 들어 있는 유령들처럼 스쳐간 것이 정말 한 남자와 여자였던가?'
리스본에는 진작 가고 싶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장편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준 감흥이 컸을 것이다. 오래전 젊음이 끝나갈 무렵 어느 새벽에 써 내려갔던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1998)와 오버랩된 정서도 작동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엄혹했던 1980년대 청춘을 파리에서 베니스로 가는 야간열차에 실어 보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2004)는 포르투갈의 '카네이션혁명'을 배경으로 그 시절 청춘의 사랑과 저항과 상처를 깊은 사색과 함께 실었다.
페터 비에리(1943~)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 교수로 살면서 파스칼 메르시어를 필명으로 소설을 써왔다. 이 장편은 독일에서 출간한 이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각광받았다. 2007년 국내에도 소개돼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다가, 2013년 영화로 개봉된 후로 대중에게 더 널리 회자된 작품이다.
소설 속 화자 그레고리우스는 베른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지루한' 교수로 살아왔다. 그는 평생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몰두해 살아오다가 어느 비 오는 날 출근길, 베른의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포르투갈 여인과 마주친 뒤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고, 수업 중 밖으로 나와 서점에 들러 포르투갈어 책을 한 권 산 뒤 리스본행 열차를 탄다. 틀에 박힌 지난 삶에 대한 무한 회의가 밀려오는 가운데 '동화 속에서처럼 부드럽고 한없이 길게 늘어지며 속삭이는 듯한 남쪽 나라의 억양, 듣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공범으로 만들어버리는 목소리'가 일으킨 매혹으로 인해 존재의 방식에 균열이 온 것이다.
그는 책방에서 우연히 접한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프라두가 써 내려간 깊은 불안과 열정의 사유를 곱씹어나가며 그의 실체를 리스본에서 찾아 나선다. 그 여정이 이 책의 중심 골격이거니와 영화로 각색된 내용과는 여러 부분에서 다르다. 빌 어거스트 덴마크 감독이 제레미 아이언스를 주연으로 만든 동명의 영화(2013)는 없는 팩트도 만들어내고 많은 곁가지 이야기는 생략함으로써 이 작품을 하나의 이야기로만 끌고 가는 데 집중한다. 정작 소설은 프라두가 기술한 사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분산시켜 느리게 읽는 이들의 생각에 스며드는, 영화와는 깊이와 넓이가 확연히 다른 작품이다.
고등학교 고전문헌학 교사를 천직으로 여겨온 그레고리우스는 급작스럽게 교실을 떠난 배경을 교장에게 설명하는 편지에 그들이 공통으로 존경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구절을 인용한다.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스위스 베른에서 출발해 파리와 보르도를 거쳐 스페인 바스크 지방 이룬 역에서 리스본행 열차로 갈아타는 긴 여행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베른에서부터 그레고리우스의 동선을 따라가는 게 맞지만, 리스본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에 대한 실감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여긴 건 짧은 일정을 합리화하는 변명일까.
리스본의 햇빛은 노란 바탕색을 띤 투명한 느낌이다. 거주민이 아닌 스치고 지나가는 이의 감상이긴 하지만, 거리는 환하고 맑아서 어두운 그늘을 느낄 짬이 없다. 혁명이 일어났던 1974년 4월 25일의 절박함을 떠올리기에는 햇빛이 너무 화사하다. 그레고리우스도 자신의 존재를 바꾸는, 오랜 고답적 삶으로부터 탈출한 리스본에서 이 유혹적인 햇살이 아니었다면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파스칼은 썼다.
'그레고리우스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다음 날 아침 리스본에 유혹적인 햇살이 비치지 않았더라면 일은 아주 다른 방향으로 나갔을 수도 있었다. 그는 아마 공항으로 가서 집으로 가는 첫 비행기를 집어탔을 것이다. 그러나 햇살은 그가 과거로 돌아서지 못하게 했다. 빛나는 광채는 지나간 모든 것을 아주 낯설고 거의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했고, 과거의 그림자를 모두 지워버릴 정도로 눈부셨다.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떠나는 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 눈발이 날리던 베른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수수께끼 같은 포르투갈 여자를 만난 것이 겨우 3일 전의 일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 1755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후 언덕 위 바이후 알투와 알파마 지역은 예전 모습을 복원했지만 아랫동네 바이샤 지구는 체스판처럼 정비해 새로 건설된 곳. 언덕 위를 오르내리는 노란 트램이 상징적인 모습으로 알려진 리스본. 그곳에서 우선 고지대로 올라가 전체를 관망하기 위해 툭툭을 타고 조르지 성까지 갔다. 성 안으로 들어가 공작이 화려한 날개를 잔디밭에 접은 채 끌고 산보하는 공간을 지나 성벽으로 갔다. 리스본을 가로지르는 태주 강이 바다처럼 넓은 폭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그 앞으로는 분홍에 가까운 붉은 지붕들이 낮게 앉아 있다.
성 뒤쪽 알파마 지구에 그레고리우스가 안경이 깨져서 찾아간 마리아나 에사의 안과 병원이 있다. 소설 속 설정이어서 실제로 그 병원이 있을 리는 없지만, 그레고리우스가 헤맨 골목 중 하나에 서 있다는 실감은 작은 흥분을 일으키기에 족하다. 그는 바이후 알투 고지대에서 걸어내려 가다가 바이샤 지구 리베르다드 거리가 보이는 지점에서 누군가 스치고 내려가면서 툭 치는 바람에 넘어져 안경을 깨트리고 말았다. 실제로 트램이 오르내리는 전철 궤도가 박힌 포르투갈 특유의 돌로 포장된 길들은 인라인스케이트와 바이크들이 빠르게 내려가는 번잡한 비탈이었다.
안경이 깨지는 바람에 만난 마리아나 에사로부터 카네이션 혁명 당시 슈베르트를 연주하던 손가락이 고문으로 짓뭉개진 그녀의 삼촌 '주앙 에사'를 만나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태주 강을 건너 요양원으로 가서 주앙과 마주앉아, 아마데우 프라두와 그의 절친이었던 조르지, 그리고 그들 두 남자 사이에 있었던 여성 에스테파니아에 얽힌 아픈 사연을 듣기 시작한다.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멈추어버리지 말기를,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프라두의 사유처럼 우리 모두는 원해서 탄 기차에 실려가고 있는 건 아니다. 그들, 프라두와 조르지와 에스테파니아도 그러했다. 프라두와 조르지는 코임브라대학 의학부에서 청춘을 함께 보낸 절친이었다. 척추경직증으로 평생 고생하다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1889~1970) 독재정부 아래 판사로 복무한 자괴감까지 겹쳐 자살한 부친의 강요로 프라두는 의대에 다녔다. 독재자의 하수인인 잔혹한 비밀경찰, '리스본의 인간 백정'으로 불리던 루이스 맹지스의 생명을 의사로서 살려준 '죄책감'으로 조르지가 먼저 복무하던 저항운동에 프라두도 가세했다.
그곳에서 군 장교 연락망을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모두 담고 있던 조르지의 연인 에스테파니아를 만났고, 프라두와 그녀는 첫눈에 서로 교감했지만 절친을 의식해 프라두는 애써 그녀를 피했다. 결국 비밀경찰에 발각돼 에스테파니아가 위험해지자 조르지는 그녀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전체를 보위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결정적으로 이 대목에서 프라두는 절친에 대한 신의를 접고 에스테파니아를 데리고 국경 너머로 간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해 프라두는 죽었고, 조르지는 칩거했으며, 주앙 에사는 다행히 강제수용소로 가지 않은 채 아픔을 견디었다.
'타인의 감옥'에서 내내 해방되지 못했던 프라두. 그가 에스테파니아에 이르러 그녀와 함께라면 모든 것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열정에 들떴지만 정작 그녀는 국경 너머 바닷가 '세상의 끝'에서 프라두를 떠났다. 그녀는 그레고리우스에게 털어놓는다.
'그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특히 그가 아무리 얻어도 물리지 않는 삶의 원형질을 빨아들였던 거예요. 다르게 말하자면 저는 그가 정말 원했던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가 잡으려고 했던 삶의 무대였지요. 죽음에 이르기 전에 한번 완벽한 삶을 살고 싶다는 듯, 지금까지 사람들이 마치 그를 속여왔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잡으려던 완벽한 삶의 무대.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여행, 자기 영혼의 억압된 분노를 향한 여행에 제가 동행하기를 원했던 거예요.'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군의 젊은 장교들은 심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신호로 침대에서 빠져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디오 피디들이 혁명에 동참해 그들이 약속한 노래로 혁명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군 장교들의 연락망을 문서로 남기지 않고 에스테파니아의 비상한 두뇌에 저장해놓는 것으로 설정했다. 조르지가 '여러 명'을 살리기 위해 비밀경찰에 노출될 위험이 강력한 '한 명' 에스테파니아를 살해하겠다고 암시한 배경이다. 주앙 에사는 그레고리우스에게 말했다.
"선생에게 충격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난 조르지를 이해할 수 있었소. 그도, 그의 논리도 이해가 갔소. 그 둘은 별개의 문제였소. 그놈들이 에스테파니아에게 주사를 놓아 그녀가 기억을 불게 만든다면 우린 모두 끝장이었소. 모두 200명 정도였는데, 한 사람씩 심문을 하면 아마 몇 배는 더 늘어나겠지.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소. 일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사건만 생각하더라도 한 가지는 명백했소. 그녀를 없애야 한다는 것."
프라두는 '인간 백정'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여러 명을 위해 희생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끝까지 견지했다. 눈앞의 생명은 어떤 다른 생명을 명분으로도 죽일 수 없는 심정, 그를 나약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조르지는 연인에 대한 배신감으로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내세운 것일까. 소설은 끝까지 명확하게 조르지의 심사를 알려주진 않는다.
영화에서는 인간 백정의 손녀가 뒤늦게 조부의 역할을 알게 돼 베른까지 와서 자살하려고 한 것으로 설정하고, 인간 백정은 프라두의 국경 탈출을 눈감아주는 것으로 만들었지만 소설 속에는 모두 없는 이야기다. 베른의 포르투갈 여인은 그저 우연히 스쳐간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 백정 또한 나중에 주앙 에사 면회를 프라두에게 허락해준 정도의 배려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는 오빠 프라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봉쇄되어 살아온 마리아나만 등장하지만, 존재가 생략돼버린 프라두의 막내 여동생 '멜로디'는 소설 속에서 프라두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기여한다. 역시 영화에서는 빼버린 자살한 프라두의 부친과 아들이 교감하는 이야기는 또다른 생각의 틈을 열어준다. 파스칼이 기차를 각별히 좋아한 인물로 설정한 프라두는 기차를 빌려 지속적으로 사유를 전개한다.
'내 칸에 가끔 손님이 오기도 한다. 문이 닫히고 잠겨 있는데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방문객은 있다. 거의 언제나 나에게 맞지 않는 시간에 손님이 온다. 대부분 현재라는 시간의 손님들이지만, 과거에서 온 손님들도 많다. 이들은 자기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오가며 나를 방해한다.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구속력이 없으며, 잊힐 운명이다. 그저 기차에서 하는 일상적인 대화들. 몇몇 방문객은 소리 없이 사라지지만, 끈끈하고 냄새나는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환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럴 때면 이 칸의 모든 것을 떼어내고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서 숙소로 정한 호텔은 호시우 광장 인근이었다. 그는 광장 인근 책방에 들러 프라두의 실체를 탐색해나간다. 호시우 광장 바닥은 포르투갈 특유의 포석이 물결무늬를 이루고 있고, 중앙에는 페드루 4세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태주 강 쪽으로 아우구스타 거리를 가로질러 가는데 어디선가 우렁찬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쪽으로 가보니 공사 현장 작업복을 걸친 이가 아우구스타 거리에서 공사장 폐자재들을 앞에 놓고 그것들을 두드리며 제법 세련된 소리로 거리를 압도한다.
대항해 시대에 떠난 이나 남겨진 이들 모두 '그리움'을 한처럼 품은 '사우다데'의 포르투갈 음악 '파두' 대신, 공사 현장 폐자재가 사우다데를 대신하는 꼴이다. 그 타격음 역시 묘하게 사우다데를 품고 있는 듯 들려 '운명의 노래' 파두 못지않은 감흥을 준다. 아우구스타 거리를 벗어나니 강변에 그레고리우스가 헤매던 코메르시우 광장이 나온다. 광장 너머 태주 강 건너편에 리스본을 굽어보는 예수상이 보이고, 그 발치에 혁명을 기념하여 명명한 현수교 '4월25일 다리'가 길게 걸쳐 있다. 맑은 햇빛 아래 강바람이 부드럽다.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언젠가 우리가 탄 기차는 영원히 멈추어 설 것이다. 그때 우리는 달려온 공간과 스쳐 지나간 이들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만 현재를 살고 있을 뿐이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힘차게 발을 딛고 서서 매 순간 솔직하게 연주할 수 있다면 그런 삶은 예술일 것"이라면서 "우리는 모차르트여야 한다, 열린 미래의 모차르트"라고 썼다. 현재를, 매 순간을 솔직하게 연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허무의 모래더미에 묻혀버릴 '파두'인 것이다. 프라두가 세상의 끝'에서 떠올린 저 상념처럼.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이 글은 UPI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2206270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