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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호 Jul 19. 2022

 "그 말은 나의 펜이 우는 것입니다"

[조용호의 문학공간] 폴 오스터 산문집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미국 작가 폴 오스터 자선 산문집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비평, 서문, 칼럼, 연설문 등에 담긴 글쓰기와 삶의 본질

간절한 마음 없이 쓴 책을 어떻게 오래 붙잡고 있겠는가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자살 같은 책"

"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동등하게 기여한 협업의 결과물"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썼어요.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나는 내 말속에 피난처를 찾습니다. 그 말은 나의 펜이 우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한,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한, 나의 고통은 조금 무뎌집니다. 자음은 내 신체, 모음은 내 영혼일 정도로 말 하나하나에 매달립니다. 이건 마법인가요? 나는 그의 이름을 씁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됩니다…….'(사라)


'나는 당신의 옷, 당신의 피부, 당신의 살, 당신의 피를 통하여 당신을 읽습니다. 사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모든 단어를 통하여, 우리 종족의 모든 상처를 통하여, 당신이 나의 것임을 읽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듯이, 당신의 것이며 나의 것인 이야기를 읽습니다.'(유켈)


'뉴욕 3부작'의 미국 작가 폴 오스터. 그가 펴낸 많은 저작들 중에서 자신이 직접 가려 뽑은 산문집에는 글쓰기와 삶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사유가 펼쳐진다. [열린책들 제공]



시인으로 출발해 평론가, 에세이 작가, 번역가로도 찬사를 받아온 폴 오스터(1947~ )는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미국 소설가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뉴욕 3부작'을 필두로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공중 곡예사' 같은 소설은 물론 에세이 '고독의 발명' '빵 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등 많은 작품이 국내에 번역돼 있다. 사실주의와 신비주의를 결합해 우리 시대의 일상과 고독, 강박을 빼어나게 형상화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전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열린책들·김석희 민승남 이종인 황보석 옮김)는 그가 자신이 펴낸 책들에서 직접 선별해 엮은 산문집이다. 문학비평, 서문, 신문 칼럼, 연설문 등 다양한 장르에 글쓰기와 삶의 본질을 아우르는 글들이 포진해 있다.


그는 프랑스 시인 에드몽 자베스(1912~1991)의 '질문의 서'에 등장하는 남녀 '사라'와 '유켈'의 대사를 인용하며 언어라는 것, 글의 근본적인 효용성을 선명하게 예시한다. '자음은 내 신체, 모음은 내 영혼'이라고 쓰는 사라. '당신의 피부,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모든 단어, 우리 종족의 모든 상처를 통하여, 당신이 나의 것임을 읽는' 유켈. 사라는 '쓰고 있는 한 고통은 무뎌지고, 그의 이름을 써서 그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된다'고 쓰고, 유켈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듯, 당신의 것이며 나의 것인 이야기를 읽는다'고 쓴다.


쓴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나아가 이야기 혹은 문학이란 무엇이어서 이처럼 고통과 상처와 사랑을 핍절하게 위무하고 부축하는 것일까. 폴 오스터는 프랑스 작가 조르주 바타유의 '저자가 꼭 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없이 쓴 책을 우리가 어떻게 오래 붙잡고 있겠는가?'라는 화두를 끌어와 "우리의 문학적 감각을 되살려 주고 문학의 본령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끔 하는 작품은 곧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 놓는 작품"이라고 언급한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나 사뮈엘 베케트와 비견되기도 하는 폴 오스터는 '카프카의 편지들'을 붙들고 글쓰기의 진정성과 지향점을 제시한다. 폴은 "카프카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이 글쓰기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글을 썼다"면서 "그는 일기에 '글쓰기는 기도의 한 형태'라고 썼다"고 썼다.



'우리를 상처 주고 찌르는 책들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우리가 읽는 책이 정수리를 내려치는 타격으로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걸 읽어야 하겠어? (……) 우리는 이런 책을 필요로 해. 재앙처럼 영향을 미치는 책, 우리를 깊이 슬프게 만드는 책,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책, 모든 사람에게서 떨어져 혼자 숲속으로 추방된 느낌을 주는 책, 자살 같은 책.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트리는 도끼 같은 책. 이게 나의 믿음이야.'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트리는 도끼 같은 책'에 대한 믿음을 담은 카프카의 편지는 후대 문학인들을 일깨우는 경구로 자주 회자된다. 이 문장에서 파생된 '악스트'(AXT·도끼)라는 문예지가 국내에서도 발간되고 있다. 카프카는 꽃으로 둘러싸인 병상에 누워서 두 친구의 시중을 받으며 마지막까지 단편소설 '단식 예술가'의 교정을 보다 죽었다. 폴은 "카프카는 마흔한 살이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득 품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는 나이였다"면서 "오늘날까지도 그의 죽음은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을 안겨 준다"고 맺었다.


사뮈엘 베케트(1906~1989)와 수십 년 간 수십 통의 편지를 교환했던 폴은 그를 추모하는 글에서 '모든 작가가 안고 살아야 하는 딜레마-자신이 창작한 것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영원한 의심'에 대해 말한다. 폴이 베케트의 작품을 두고 "경이로운 작품"이라고 말하자 베케트는 "아, 아니, 아니, 별로예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후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5분인가 10분쯤 지났을 때 베케트가 갑자기 테이블 너머로 몸을 기울여 폴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고 했다. "정말 그 작품이 좋았어요, 응? 정말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폴은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위무의 말을 전한다. "그가 사뮈엘 베케트였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조차도 자신의 작품이 지닌 가치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작가는 그걸 알 수가 없다. 최고의 작가들조차도."


샘 메서가 그린 폴 오스터와 타자기.


쓰는 행위와 문학의 본질에 대한 세밀한 접근만 산문집에 담긴 건 아니다. 뉴욕 쌍둥이 빌딩 사이에 쇠줄을 매달고 그 위를 장대 하나만 들고 여덟 번이나 오간 공중 곡예사 필리프 프티(1949~ )를 논한 '고공 줄타기'는 삶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에 대한 독특한 성찰이다. 그는 "줄타기 자체가 곧 예술이고 가장 선명한 윤곽을 가진 생의 모습"이라며 "줄타기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고 한다면 줄타기가 우리 내면의 아름다움에 조응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썼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땅으로 추락하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위험, 죽음의 공포, 참사, 이런 것들은 퍼포먼스의 일부가 아니었다. 필리프는 자신의 삶을 백 퍼센트 책임졌다. 그 어떤 것도 그의 결단을 흔들어 놓지 못하리라고 느꼈다. 그러므로 고공 줄타기는 죽음의 예술이 아니라 삶의 예술이다. 극한까지 충실히 살아 내는 삶의 예술이다. 극한까지 살아 내는 삶이란, 달리 말하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죽음의 얼굴을 정면으로 빤히 쳐다보는 삶이다. 밧줄에 한 발 내려놓을 때마다 필리프는 그 삶을 쟁취하여 환희에 넘치는 현장성을 살아 낸다. 그가 앞으로 백 살까지 살기를.'


폴은 9·11 테러로 온종일 텔레비전 화면 속 끔찍한 영상과 창 밖 연기를 내다보면서 세계 무역 센터 완공 직후인 1974년 8월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건넜던 친구를 떠올린다. 그는 "지상 460미터 높이의 줄 위에서 춤추는 작은 남자, 그 아름다움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썼다. 폴은 지상에서 평범하게 수행하는 일들을 굳이 공중에서 이루려는 곡예사의 욕망이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연스럽다"면서 "줄타기의 매력은 철저한 무용성"이라고 언급한다.


아무짝에도 실용적으로 쓸모가 없는 '무용성(無用性)'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라는 폴 오스터의 생각은 이 산문집의 표제로 뽑힌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에도 담겨 있다. '아스투리아스 왕자 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그는 소설, 나아가 예술에 대한 생각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폴 오스터는 "예술은 무용하지만, 바로 그 무용함이야말로 이 행성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인간을 차별화한다"고 말한다. [열린책들 제공]


'예술, 특히 소설이라는 예술은 우리가 현실 세계라고 부르는 곳에서 어떤 목적을 지닐까요? 저는 아무 목적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실용적 측면에서는요. 책은 배고픈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합니다. 책은 살인자가 쏜 총알이 피해자의 몸에 박히는 걸 막지 못합니다. 전시에 무고한 시민들에게 폭탄이 떨어지는 걸 막아 낸 적도 없습니다. 예술적 심미안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들로, 더 공정하고 도덕적이며 민감하고 이해심 깊은 사람들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드문 사례일 뿐입니다. 히틀러가 처음엔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폴은 "폭군도 독재자도 소설을 읽고, 교도소의 살인자도 소설을 읽는다"면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책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그는 "예술은 무용하다"고 단정한다. 적어도 배관공이나 의사, 철도 엔지니어가 하는 일에 비해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는 묻는다. 실용적 목적이 결여됐다고 해서 책이나 그림, 현악 사중주는 단순한 시간 낭비일 뿐이냐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술의 가치는 바로 그 무용함에 있다"면서 "순수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행위야말로 우리를 이 행성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차별화하는 동시에 근본적으로 우리를 인간으로 정의해 준다"고 그는 주장한다. 더 이상 책을 보지 않는 흐름이 대세라는 비관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토닥이는 폴 오스터의 말.


'모든 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동등하게 기여한 협업의 결과물이며, 낯선 두 사람이 지극히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영원히 아는 사이가 되지 못할 사람들과 평생 대화를 나눠 왔으며, 앞으로도, 숨이 멎는 날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이 글은 UPI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220421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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