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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엄마가 기억해 줄게

태아에게도 영혼이 있다

by 엄마쌤강민주

살아가다 보면, 기존의 상식이나 이해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우리 앞에 닥쳐온다. 그러한 순간은 그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내면을 깊이 흔들어 놓는다. 이 글은 죽은 태아의 영혼과 그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1994년 어느 날, 어머니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인자, 진짜 나쁜 년이래.”

인자 아주머니의 남편은 아버지의 고향 친구였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서로의 자녀들을 돌보며, 친구처럼 친밀하게 지내왔다. 아주머니의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의 권유로 두 분이 절을 찾았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삶이 가져다준 수많은 고민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도 중 아주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스님의 입을 통해 자신을 아주머니가 낙태했던 태아라고 밝힌 존재가 믿지 못할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없어서 눈을 크게 뜨고 스님을 바라보았다. 스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당황했다.


어머니가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나에게 해주신 이야기다.

"글쎄 그 아이 말이 자기는 인자가 처녀 때 낙태한 아이래. 그런데 엄마가 아빠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를 낙태해서 자기가 오갈 데가 없단다."

그 존재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고 했다.

"엄마는 나쁜 사람이에요. 믿지 마세요. 엄마가 혼자인 게 외로워서 아줌마도 이혼시키려고 계속 남자를 붙여주려고 하고 있어요."

당시 아주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후, 시내에서 작은 밥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저녁이면 술도 파는 작은 가게였는데 어머니는 종종 그곳을 방문하곤 했다. 그런데 그 존재는 더욱 충격적인 말을 덧붙였다.

“엄마가 아저씨도 빼앗으려고 해요. 울 엄마를 믿지 마세요.”

어머니가 분노하며 떨고 있을 때, 그 존재는 냉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더 나쁜 사람이잖아요. 4명이나 죽였잖아요.”

순간 믿기지 않던 존재가 하는 말이 어머니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고 했다.


스님은 자리로 돌아온 아주머니에게 방금 일어났던 일에 대해 말한 다음, 물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아주머니는 충격을 받은 듯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주머니는 젊은 시절, 처녀 때 연애하던 남자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가졌지만, 자신의 처지가 남자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탓에, 남자에게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낙태했던 사실을 고백했다. 어머니도 나와 동생을 낳고 나서, 아이 넷을 낙태했다고 말했다.


인자 아주머니는 평소 심한 악몽에 시달렸고 세상을 떠난 남편뿐만 아니라, 새로운 남편과의 사이도 나빴다. 그녀의 자녀들은 그녀와의 관계를 끊고 살았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는 평생 원수처럼 지내셨고, 자식을 다 키운 후,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했을 때, 53세라는 나이에 유방암 3기 후반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인자 아주머니가 김장을 도와주러 어머니 집에 온 적이 있다. 그때 10살 어린 조카가 아주머니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했는데, 아주머니는 그 조카를 혼내기보다는 자신을 탓하며 말했다.

“내가 아이를 낙태해서 아이들이 나를 싫어해.”


어머니도 인생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아이를 유산해서 그래”라며 그 어려움을 자신 탓으로 돌렸다. 두 분은 고난의 순간마다 자신들의 과거를 떠올리며, 세상과 싸우는 대신 묵묵히 고난을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모습을 보였다.


결혼 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반복된 유산을 겪었다. 대학교 때의 충격적 경험으로 죽은 태아도 영혼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 사건은 깊은 상처를 주었고,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게 했다.

“왜 나는 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가?”

“내 아이들은 햇살 한번 느껴보지 못하고 매번 어두운 뱃속에서 생을 마감하는가?”

“내 아이들의 영혼은 어떻게 됐을까?”


현생에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나는 전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태어난 생명과 태어나지 못한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 이 질문들로 나를 찌르고 찔러 피를 흘리게 했다. 피범벅이 된 내 모습이 추하게 느껴지면 참회의 눈물로 피를 닦으며,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의 아이들을 홀로 기리며 글을 썼다.

“얘들아! 엄마가 너희를 기억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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