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료 드립니다

어버이날의 단상

by 뷰리플기러기



어버이날이다.

재수생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려고 차에 탔다. 바로 앞에 노란 차 한 대가 멈춘다. 허리 반 춤밖에 안 되는 꼬맹이들이 하나둘씩 내린다.

“와! 아이들 너무 귀엽다! 우리 아들도 저렇게 귀여웠는데, 기억나?”

“내가 나 어렸을 때를 어떻게 기억해?”

“......”


예정일에 정확히 등장하며 첫 약속을 지켰다. 밖에서 만난 세상을 향해 기선제압을 하려는지 우렁찬 울음소리를 뽑아냈다. 그러다 처음 내 품에 안길 때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울음을 멈췄다. 기다림의 열 달, 열 시간 산고를 단박에 날려주는 감동이었다. 첫 단어, 첫 발걸음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두세 살 때쯤 ‘못 먹어’와 ‘안 먹어’를 정확히 구별했을 때는 언어 신동임을 확신했다. 간장게장 일 인분을 야무지게 발라먹을 때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 움직임이 생생하다.


키우다 보니 그렇다. 유전자의 반은 확실한 내 것이지만, 아이의 행동을 보면 유행가 가사처럼 내 것인 듯 내 것 같지 않다. 머리가 커지면서 나를 닮은 얼굴로 예측을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 학습지 선생님을 놀이터로 오라고 요구한다. 첫눈 오는 날 눈사람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자랑한다. 생일 밥상을 차려준다며 밥 한 공기와 숟가락, 젓가락만을 식탁에 올려둔다. 몸 크기의 박스를 집 삼아 가출하겠다고 한다. 북한 친구들에게 절취선을 끊어서 통일하자고 편지를 쓴다. 반전 매력이 있어 더 사랑스러운 걸까. 그런데 기억의 주인은 정작 기억이 없다.


내 것인데 남이 더 많이 쓰는 것이 내 이름이라면, 내 것인데 남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릴 적 순수한 모습일 수 있다. 그 지분의 대부분은 부모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고 싶다면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부모의 서랍에 보관된 내 이름의 보물단지. 어버이날은 그 보물들을 간직해 주고 있는 분께 보관료를 드리는 날이다. 카네이션을 드리고 반짝거리는 진주를 담고 있는 상자를 열어본다. 물론 부모는 많은 보석을 얻은 것만으로도 보관료 받는 일이 중요하진 않겠지만.


나도 올해 그 보관료를 받는 데 성공했다. 아이가 어버이날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을 묻는다. 갖고 싶고 필요한 것이야 많지만, 내 주머니의 새끼주머니에서 뭐 대단한 것이 나올까 싶다.

“그럼, 하루 시간 내서 고흐 미술전 같이 가.”

“미술 전시회? 아……. 알겠어. 같이 가.”

잠깐의 머뭇거림 속에 몸으로 때우자는 다짐이 있을 듯하다. 그 나이 때의 남자아이는 지적 허영심도, 핫플레이스에서의 인증샷 허세 욕심도 없을 터이다. 흔쾌히 알겠다는 수긍은 아들로서는 큰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리라. 운전도 하고 관람료도 내가 내는데, 나는 동반 관람권 획득을 어버이날 성과라 말한다. 부모는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 '자식과 함께'라는 가치에 보관료의 무게를 싣는다. 속세의 잣대로 재면 가성비 떨어지는 셈법이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관람 일의 스케줄을 촘촘히 짜본다. 재수생의 귀중한 시간인 만큼 값지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이다. 대전으로 출발할 최적의 시간을 고민하고, 식사를 먼저 할지 관람을 먼저 할지를 결정한다. 아이가 좋아할 메뉴를 위해 주변 식당을 검색한다. 아들 또래들의 후기를 살피기 위해 익숙한 네이버가 아닌 인스타그램으로 찾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불고기와 간장게장이 세트로 나오는 식당으로 결정했다. 어버이날 선물로 보내는 하루라기엔 나의 수고가 매우 많다.

평일인데도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있어서인지 내부가 복잡하다. 평소 같으면 본인 페이스로 관람을 마치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할 텐데, 아들이 나의 속도를 맞춰줬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오르세 박물관에서 고흐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색의 강렬함, 화가의 힘이 느껴지는 붓의 터치,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때문인지 책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 경험이 가끔 미술전을 찾게 했다. 아이도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관람을 마치고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미술관 밖의 공원을 걸었다. 산책하며 나만 기억하는 아이의 에피소드들을 나눠줬다. 자신의 추억담인데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듯 새삼스러워한다. 나의 준비와 아들의 결심이 만나 완벽한 하루를 만든 것 같아 입꼬리가 올라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이 묻는다.

“「붉은 포도밭」 그림은 왜 없어? 그게 고흐 생전에 유일하게 팔린 거라고 해서 궁금했는데.”

“고흐의 모든 작품이 있는 게 아니라 네덜란드 미술관에 있는 작품만 전시된 거야. 「붉은 포도밭」,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작품은 다른 미술관에 있어서 못 온 거지.”

“아, 보니까 그림들이 안 팔릴 만하네. 내 눈엔 고흐 그림보다 미술관 밖의 풍경이 훨씬 좋더라.”

이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릴 적만큼이나 아이의 반응을 예측하는 것은 난도가 높다. 대답을 찾고 있는 사이 한마디를 더 날린다.

“그래도 엄마 좋았으면 됐어. 다음부터는 이모랑 다니고.”

이 녀석, 온전히 효도의 마음으로 하루를 내어준 모양이다.

“아들, 그럼 뭐가 가장 좋았어?”

“간장게장 먹은 게 제일 좋았어.”


오늘 이 대답도 나의 보물 서랍에 넣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