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성적이 발표되었다.
긴장감 1도 없지만 궁금한 마음으로 사이트에 접속한다. 내 점수를 확인한다.
음….
재수생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들, 수능 결과는?”
캡처한 이미지 한 장이 날라온다.
오! 아들 굿굿!!
수고 격려와 칭찬의 마음을 담아 엄지 척 이모티콘을 날렸다. 아들과 함께 수능을 보고 나니 존경의 마음도 더 보태진다. 지난 11월 13일 나 역시, 하루 종일 그 고사실에 앉아보니, 모든 수험생, 정말 대단하다. 위대하다. (진정 김 부장만 위대한 것이 아니다.)
나는 96학번이고 2000년도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30년만 만에 재수 시험을 치러봤다.
시험 동기는 이렇다.
재수생인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들이 ‘엄마도 수능 지문에 실릴 글 쓰면 좋겠네’ 하던 이야기가 ‘엄마도 이참에 수능도 봐 보든가’로 번졌다.
오호?
30년 전, 공부 꽤 하던 맏딸에게 주어진 부모님의 대입 가이드라인은 확실했다.
‘SKY + 이대’ 아니면 집 앞 10분 거리의 지방국립대
밑으로 대학 보낼 동생이 둘씩이나 되었기에, 부모님의 인서울 사립대 등록금과 생활비의 커트라인은 확고하셨다.
96년도 수능시험은 국어부터 어렵기로 소문났고, 평소 등급보다 한두 등급은 확실히 떨어졌다. 이대 소신 지원을 하고 선생님께서 ‘지방국립대 아무 과나 써도 넌 된다.’라고 하셔서 빈 원서를 들고 집 앞 국립대를 서성이던 중, 즉흥적으로 좋아하던 경제 과목을 전공학과로 쓰고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소원이던 영어 선생님의 꿈은 그 순간 어디다 팔아버렸는지 알 수 없다. 그 결정이 꼬리를 물고 물아 지금의 내 직업을 갖게 되었다.
반수 해야지하던 결심은 대학 생활을 알아버린 나태함과 유흥의 맛으로 까마득해졌다. 이후 정확히 30년 만에 아들의 한마디로 입시 원서를 접수했다. 물론 원서 접수 전, 이게 될지 여부를 한번 스캔했다. 아들의 9모 시험지와 문제집을 대충 살펴보고 자신만만했었다. 수능을 한단 앞둔 상황에서의 이 호기는 무엇이었을까.
국어는 어차피 공부해도 큰 변동 없으니 그냥 하고, 영어 좀 하니깐 그냥 하고, 수학 포기하고, 한국사 상식으로 하고, 경제 전공이니깐 그냥 하고, 정치와 법 대충 아니까 그냥 하고, 난 한문을 배운 세대니 제2외국어까지 접수! 오케이!
잘 보면 인서울 해서 한예종 극작과를 지원해야지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박정민 같은 배우들아 나를 기다려줘!
(투 비 컨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