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향사 이지안 Sep 25. 2021

왜 나는 고양이었을까?

냥집사들의 소원 -'마흔 가자' 02

냥집사들의 소원 -'마흔 가자'



"후... 여동생이다."


내가 태어나던 날, 수화기 너머로 들렸던 아빠의 한숨을 기억한다고 여자 3호는 이야기한다.(참고로 나는 딸 다섯 중 막내이다. 앞으로 자매들 순서대로 여자 1호 ~ 5호로 지칭하겠다.) 같은 날 우리 집에 이제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여자 1호는 이야기한다. 노산에 12시간을 진통해서 낳은 4.2kg 이 우량아가 또 딸이라니, 서운할 만도 하셨겠지만 한 번도 엄마는 내색한 적 없다. 그러고 보면 역시 엄마는 엄마다.


위 문단으로 내가 자라면서 겪었을 군중 속의 고독이 표현이 됐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랬다. 넋두리를 하려고 던진 화두는 아니고, 그래서 나는 늘 의지할 곳을 집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곤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나의 반려묘 아리가 확실한 믿을 구석, 비빌 언덕이 되었고, 또 아리 덕분에 나의 내면에 더 잘 집중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ENTP에서 INTP로 MBTI도 바뀜)



처음 온 날 겁에 질린 아리 vs 며칠 뒤 완벽 적응 한 아리


안녕 지지배배들

처음 내가 주체적으로 애완했던(그때는 반려의 개념이 잘 없었으니) 동물은 초등학교 때 키웠던 잉꼬 두 마리와 십자매 두 마리이다. 지지배배 지저귀는 소리가 어찌나 귀엽던지, 막내로 자란 내가 더 작고 어리고 귀여운 것에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pixabay - 잉꼬


(잉꼬도 금슬이 좋기로 유명하고 십자매도 영어로 lovebird이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어쩐지 알을 자주 낳더라니... 속닥)


@pixabay - 십자매


그 무렵 같이 키운 병아리 두 마리는 고양이와 싸워도 지지 않는 건장한 청년 치킨들로 자랐지만, 삐약이 일 때부터 쌀 먹여가며 보살핀 나만은 공격하지 않았다. 어느 볕 좋은 날, 아빠가 나를 드라이브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온 그날, 그들의 흔적은 깨끗이 사라졌다. 1-1호(첫째 조카)를 임신하고 있던 여자 1호와 남자 1호(형부)의... 뱃속으로. 남자 1호가 위로금을 주며 나에게 했던 공포영화 뺨치는 대사와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좀 질기더라~(씨익)”


@pixabay - 삼계탕


너를 만나게 해 준 코로나 팬데믹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보내고 있다. 오늘 한국은 3,000명 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나보다 훨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도 많지만, 어쨌거나 나에게도 코로나는 결코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코로나로 회사는 강제 잔여 연차를 사용하여 주 4일 출근하게 됐고, 한 학기 남은 경영대학원은 대부분이 온라인 수업으로 이루어졌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2020년의 가을, 그때 나는 반려묘 ‘아리’를 들이게 되었다. 평소에도 고양이를 좋아했지만, 회사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했고, 한 생명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반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덕에 큰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아리의 이름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용두사미 결말의 끝판왕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아리아 스타크’를 생각해 지어 준 것이다. 


@HBO - Game of Throne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캐릭터는 부잣집 아가씨로 태어나 집안의 몰락으로 온갖 고생은 다 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사내아이처럼 행동하며, 자신을 ‘My lady,’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반발한다. 온갖 고생은 다 하며 결국 세계관 최강의 캐릭터로 성장하는 그녀를 보는 재미는 내가 왕좌의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의 9할은 되는 것 같다.(막내딸인데 고생하는 부분에 마음이 더 갔던 것 같기도) 결국 ‘죽음’까지 넘어서는 그녀의 강인함을 아리가 닮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강하게 장수하라고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참고로 아리는 남자 고양이)


@starecat.com - 왕좌의 게임 결말을 표현한 meme


그런데 이미 유튜브에 너무나도 유명한 고양이 아리가 있었다...!(큰 고양이네 그 아리) 심지어 나중에 둘째를 입양하게 된다면 리랑이로 지을 뻔했는데,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똑같나 보다.



처음 아리를 들이던 날, 구석에서 큰소리로 울며 나오지 않는 아리를 보고 맘 졸이고 밥 한술 제대로 뜨지 못하는 나를 같이 있던 친구가 기억한다. 아리가 아플 때는 퇴근하자마자 만사 제치고 동물병원부터 달려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생각이 많은 표정을 지으셨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온전하게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다면, 그건 다 이 사랑둥이 아리 덕분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작_우리는 왜 지금 고양이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