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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은 Mar 01. 2023

나를 위한 건강한 한 끼를 챙겨 먹는 일

건강을 위해 시작한 식단관리가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스무 살 엄마 품을 떠나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아침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밥 먹는 게 귀찮은 일이었던 내게 한 끼 식사는 배고픔을 없애기 위한, 살기 위한 생계유지 수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몇 년 전 연애프로그램에 나와 유명세를 알린 인플루언서의 유튜브 브이로그를 우연히 보게 된 적이 있다.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아침부터 정성스러운 요리를 하고 예쁘게 데코레이션까지 한 다음,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하고 나서야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차피 내가 먹을 건데 저렇게까지 준비하면서 밥을 먹어야 하나? 아침부터 일어나자마자 귀찮은데 저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과 함께 그만큼 그녀는 본인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아 보여서 부러웠다.


나는 매일 아침 졸음과 씨름하며 힘겹게 겨우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그녀와 내가 너무 대조되어 보였다. 질투가 났던 것 같다.






오랜 자취 생활을 마치고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나의 요리 실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엄마가 챙겨주는 반찬에 의존했고,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그러던 내가 꼭 두 달 전 루푸스 신염 진단을 받게 되었다. 신장 조직검사를 위해 입원했던 그 당시 높은 단백뇨 수치를 바로잡고 활성기의 루푸스를 치료하기 위해 하루에 스테로이드를 11알이나 복용해야 했다. (지금은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있긴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2알로 줄였다.)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루푸스를 진단받았던 때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이대로 살다가는 정말 나 많이 아플 수도 있겠구나. 신장 이식이나 신장 투석까지 받게 되면 어떻게 하지? 생각했고 정말 그 일만은 막고 싶었다.


그즈음 엄마가 다시 일을 시작하셔서 나에게 반찬을 해다 주시기도 어려워졌다. 저염식단을 해야만 하기에 매일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외식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내가 직접 요리를 해 먹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게, 몸에 좋은 것들을 먹을 수 있을까, 오늘은 어떤 건강한 반찬을 챙겨 먹어볼까. 하루하루 설레는 고민들을 하게 되었다.






정말 제대로 마음먹고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혼자서만 시작하면, 의지가 부족할 것 같아 블로그에 매일매일 식단을 올리겠다고 글을 적어보았다. 누군가는 그 글을 볼 테니,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매일 식단을 사진 찍고 업로드해야 했다.


몇 년 전 우연히 봤던 유명 인플루언서 브이로그에서처럼 플레이팅에 신경 쓰면서 구도를 잡고 힘겹게 사진을 찍고 겨우 한 끼를 먹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웃기기도 하고 그녀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를 위해 정성스러운 한 끼를 차려먹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임을 몸소 깨달았다.


오늘은 좀 더 구도를 예쁘게 잡아야지, 더 맛있어 보이게 찍어야지, 그러다 보니 나물 반찬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노력하고, 좀 더 다양한 건강한 요리를 하기 위해 신경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어느새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며 이렇게 건강하고 맛있는 반찬들을 많이 먹었다고 뿌듯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 자신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면, 내 몸도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정성을 쏟다 보면 정말 건강한 몸이 될 것만 같았다.


나를 위한 한 끼 식사가 내 자존감을 높이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누구나 매일 먹는 밥인데, 겨우 그거 하나 하면서 무슨 호들갑이냐고 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편식이 심해 고기반찬만 좋아했고 야채, 채소라고는 입에도 잘 대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생각해 보면 이 식단관리 기록을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신장병과의 싸움은 오랜 장기 전이라 언제 또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고 가끔은 인스턴트식품이나 단 것들이 너무 먹고 싶어 일 명 치팅데이를 한 번씩 갖기도 하지만 이러한 내 마음이 부디 오래 지속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써 본다.


누군가 식단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sns던 어딘가에라도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꾸준히 실천하겠다고 다짐을 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그렇게 하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노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내 건강도 지키고 일석이조다.


(창피하지만 최근 요린이의 저녁 밥상을 공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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