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아빠를 핑계로 여행을 자주 못다녔기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큰맘 먹고 일찍이 여행 계획을 세웠다. 수능과 주말을 이용하면 3박 4일너끈히 다녀올 거라 생각했다.
막상 11월이 되니 학원에서 쉴 새 없이 폭탄 던지듯 문자 알림이 울리고, 갈피를 못 잡은 나는 발을 동동 구른다. 미리 학원 세팅을 마치고 막상 여행을 가려니 학원 선생님들의 눈총이 너그럽지 않다. 여행후 해야 할 공부가 넘쳐날 것 같아 몇 과목 챙기다 보니 아이 가방은 금세 돌덩이가 되었다.
온라인으로 수업 들으라는 학원선생님의 배려는 우리에게 생각지 못한 부담이 되었지만 씩씩하게 가방을 꾸렸다.
지금 안 가면 언제 맘 편히 가겠어?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찐하게 놀고 오자!
여행 하루 전,강아지 대신 키우는물고기 먹이가 생각났다. 근처에 계신 부모님께 물고기 밥을부탁했다.
대신 밥과 반찬은 집에 미리 해놓을 테니 편히 와서 드시라고넉살 좋게 얘기했다.
급히 오래 묵은 반찬 정리를 하고,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를 위해 방에 온수매트를 깔고, 방풍지를 붙였다.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사고 아빠가 좋아하시는 홍시와 우동을사서냉장고를 채워 넣었다. 식탁에 야채빵, 팥빵, 크림빵, 쿠키 등을 사서 펼쳐 놓았다. 밤 10시가 좀 넘었다.여행 가기 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여행 후 아이 학원 숙제와 밀린 일을 할 생각에 힘이 빠졌다.
여행에서 온 다음날은 엄마 생신이다. 보기 좋게 식탁 한 상 차려 드리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밖에서 먹기로 미리 약속을 하고,여행준비는 끝마쳤다.
뭐처럼 가는 여행 본전 뽑을 생각에 새벽 비행으로 출발하고, 도착은 저녁비행으로 예약을 했다.
여행하는 동안 공부 얘기는 안 하기로 맹세하고 예비 고1 엄마는 여유로운 척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그래, 인생 뭐 있어? 공부가 인생전부는 아니잖아! 그래 천천히 가자. 너의 속도대로 가다 보면 너만의 길이 있겠지'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고☀️ 아이와 행복한 미래만 생각하던 찰나, 평소 뜸하던 카톡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 담임이었다! 웬일이지? 체험신청서도 미리 냈는데, 혹시 아이가 잊어버렸나? 조심스럽게 열었다.
이런 젠장!
카톡을 열자 전교 석차가 딱!
생각지도 못한 성. 적. 표를 보기 좋게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선생님의 배려다운 문장이었지만, 고꾸라진 내 기분은 성적에 꽂혀 한동안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알파벳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성적표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다. 좀 전에 다짐했던 내 마음은 순식간에 쪼그라들고 한숨이 나왔다. 여유로운 엄마가 되려고 했던 좀 전의 나는 이내 불편한 눈길을 아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내 표정을 보고 궁금해하는 남편에게 톡을 전달했다. 그 와중에 안경을 벗고 확대해서 가까이 보고 있는 광경을 보자니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눈물이 났다. 희끗한 머리와 노안, 관리하지 못한 체형, 그리고 우리 아들과 나. 아이 성적과 내 감정이 버무려져 집안 분위기가 좌지우지되는 것이 답답했다.
" 괜찮아! 괜찮아! 고등학교 가서 성적 뒤집는 아이들도 있어. 이번 겨울방학에 열심히 하면 돼. 공부 못해도 잘 사는 사람 많아, 우리 아들 남은 3년 동안 너한테 맞는 적성 찾아봐. 아빠가 밀어줄게. 아니면 아빠 퇴직하고 같이 일하면 되지. 걱정하지 마!"
아이 기 세워준다고 한 말이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우리 여행의 시작은 이렇게 짧은 불안으로 시작했다.
집에 가는 길 면세점에 들러야 한다는 아이 말에 다짜고짜 어이없다는 듯이 "왜?"
내 어투에 아이는 조그만 목소리로
" 할아버지 할머니 선물 사야지~"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 선물을 사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그냥 양말 사드려도 돼~"
"엄마, 그래도 연세가 있는데 그건 좀 아니지. 나 용돈 모은 걸로 사면 돼. 선물 사려고 그동안 돈 안 썼어.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
따뜻했다. 나는 오늘부터 아이에게 자신감 한 스푼을 넣어 주문처럼 읊조릴 것이다.
"괜찮아, 분명 잘 될 거야"
오늘도 특별함과 부족함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너를 위해 엄마는 그 부족함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특별함을 지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