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교육으로 어디까지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너무 힘들어요


나는 어떻게 해야 맨 끝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지 안다.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먼저 도달한 사람들의 노하우를 공부하고, 그 노하우를 내 삶에 적용하고, 연습하고, 잘 안되는 부분은 따로 공부하고 다시 적용하고, 연습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떤 곳에 서있든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재수를 성공하고, 대학교 2학년 때 학문 연구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비즈니스 피칭 1등을 하고, 인큐베이팅 제안을 받고, 창업지원금을 받고, 대기업들이 득실거리는 플랫폼에서 펀딩을 성공시켜서 돈을 벌었다.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동기부여(인지)와 습관 형성(행동)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부싯돌 캠퍼스에서도 앞으로 치고 올라간 그 경험을 살려서 가장 효율적으로 단기간에 로컬 비즈니스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짜서 운영하고 있다. 짧은 기간 일에 몰입해본 경험과 로컬의 삶을 즐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의성과 달리 부안의 부싯돌 1기에서는 참가자들의 로컬 비즈니스 역량 성장이 최우선 과제였기에 이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과감히 삭제되고 이 역량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도입되었다.  

다행히 그 시스템 내에서 학습하고 공부하고 돌아보면서 동기부여와 습관 형성을 조금씩 이뤄나가고 있는 참가자들이 있다. 참가자들의 노력과 진심이 보일 때 정말 감동스럽고, 내 노하우들이 모여 내가 처음에 도전해서 성취해냈던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주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신나게 만들 수 있었다.


반면 몇 참가자들은 그 시스템이 너무 힘들고 버겁고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즈니스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설정해주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멘토링, 상황 파악 및 전달 연습을 위한 주간공유회, 경쟁심리를 자극 시키기 위해 기획된 평가 제도 등 부싯돌 프로젝트의 1순위 목적인 로컬비즈니스 역량 상승을 위해 기획되어 있는 여러 시스템에 크고 작은 의문과 불만을 갖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의 친구들은 구축되어 있는 시스템에서 조금이라도 얻어가려고 하고 재밌게 배워나가려고 하는데 어느 정도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오히려 시스템에 의문을 가지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점이다.


처음 이 불만을 접했을 때 매우 당황스러웠다. 어느 정도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친구들을 뽑은 이유는 이 프로젝트가 원하는 '로컬에서의 비즈니스, 성과'를 뽑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의지가 강력한 만큼 성과를 내기 위한 여러 장치가 그들에게는 특히나 더 긍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달랐다. 부싯돌 프로젝트 시스템은 의지와 열정 있는 참가자들이 좀 더 효율적으로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짜여진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백지 상태의 큰 의지 없이 들어온 친구들을 더 빠르고 크게 변화시켰고 의지가 크고 역량이 어느정도 받쳐준다고 생각한 원래 타겟 고객들에게는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불만사항을 들으면서 '무언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기부여를 잘못시켜주고 있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부싯돌 1기는 나에게 정말 특별하다. 몇 날 며칠을 밤새워, 심지어 주말도 반납하면서 일하면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내 손으로 한 명 한 명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 사람을 뽑고, 일주일 동안 그들이 살아가야 할 곳을 쓸고 닦고, 몇 백개의 집기를 주문하고, 나르고, 정리하면서 공간을 준비하고 어떻게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끔 대표님이 지원금을 더 챙겨주기 위해 정말 자존심이 상하고 모진 소리를 들어도 하하호호 웃으며 넘기며 참으며 준비해온 과정을 옆에서 다 봐왔기에 너무 애정이 가는 기수다.

2층 침대설치부터



100kg 넘는 책상 나르기


의성에서 포장하고 다음 날에 와서


짐 나르고 청소하기를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반복


안정적으로 로컬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약 한 달 동안 프로그램 기획부터 공간 세팅, 프로젝트 세팅 등 정말 3명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다수의 프로젝트 경험으로 나 또한 낯선 땅에서의 5개월이 얼마나 소중한지, 달라지지 않고 나가면 나중에 어떤 아쉬움으로 남을지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 온 이상 모두를 성장시키고 싶었고 그 경험을 다른 곳에 가서도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수치로 남겨주고 싶었다. 개개인이 만족스럽고 최선을 다한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수치가 없으면 사업계획서 한 면에, 이력서 한 줄에, 면접 한 마디에 그 경험이 들어가면 얼마나 저평가 받는지(애들 장난으로 보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수치적인 성과로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과 노력들이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슬퍼졌다.



욕심을 버리자



교육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굉장히 심오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자본의 교육학적 분석과 해석: 콜먼을 넘어서'에 따르면 지식은 가치보다 복잡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인지 영역에의 관여는 구체적이어야 하며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에는 실제로는 행동에만 관여하게 된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열심히 하라"고 독려할 경우, 이 독려는 인지적이기보다는 행동적이다. 내가 참가자들에게 "열심히 하라"라고 독려하면서 열심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주는 것은 인지적이기보다 행동적이었다. 최종적으로 사람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인지가 먼저 변해야 하고 이를 통해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 인지적 변화를 위한 조치들은 모두 행동 수정에도 적용될 수있지만 행동 수정에 필요한 조치들은 인지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부분만 적용될 수 있다. 


이 책을 바탕으로 현재 상황을 분석해 보자면 어느 정도 프로젝트에 경험이 있는 참가자들은 이미 백지상태에서 인지적 변화가 일어나 1차 행동 수정이 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과거에 행동 수정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소소한 성과를 얻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존에 자신이 성과를 보았던 방식으로 똑같이 행동한다. '다른 곳은 안 그랬는데',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 등의 수식어를 달고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경험으로부터 새겨진 그들의 성공에 대한 관념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새롭게 인지하게 함으로써 인지적 변화를 번 더 바꾸고 수정된 행동을 바로 잡고 새로 행동수정을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기존 개념을 바로잡고 새로운 개념을 넣어 새로운 행동까지 유도해야 하기 때문에 더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기존 관념이 형성된 이들을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은 비단 교육에만 적용되는 사항들은 아니다. 자기계발책, 습관형성 책이 잘 팔리는 이유는 기존 개념을 수정할 때 다가오는 인지적 충돌, 그것을 고치기 위한 행동수정에서 오는 고통을 회피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성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위해 딸기 농사를 짓기보다는 눈앞에 놓인 딸기 한 바구니를 사먹는 종족이다. 눈앞의 딸기가 달콤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 많은 딸기, 더 맛있는 딸기를 먹기 위해서는 지금 사먹는 돈을 아껴서 씨앗을 사고, 흙을 뿌리고, 가꾸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어렵다. 오히려 눈앞의 딸기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더 쉽다. 

나는 14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딸기농사를 지어 더 맛있고, 더 크고, 더 많은 딸기를 얻어가게 하고 싶었다. 단 한 명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두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은 나의 욕심이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곳에 더 빠르고 쉽게 도달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지만 그것을 머릿속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수행하는 것은 나의 과제가 아니라 그들의 과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있는 것은 내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내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기다려주는 것 뿐이다. 그들이 내 방식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선언해도 그것은 그들의 결정과 판단이며, 결국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은 그들이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화는 결국 개인의 의지

앞으로 나는 나의 경험과 시스템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계속해서 동기부여하고 관련 시스템을 투입해서 성장시키는데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더 나아가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나아갈 수 있는 확신을 불어 넣어주고자 한다.  이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의문을 갖고 필요로 하지 않은 이들에게 실망하고 애써 설득하고 어떻게든 변화시켜보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줄 것이다. 그들의 인지적 변화는 그들 내면에서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그들의 과제이다. 내면의 깊이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말 본인 스스로에게 달린 그들의 과제다. 


교육자는 학습자들의 과제와 내 과제를 분리시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최선을 다한 이후에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은 학습자의 과제임을 받아들이고, 당연히 변화하기 어려운 것임을 이해하고 존중해주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모두를 변화시키고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인지적 변화가 일어난 학습자들을 응원해주고 지켜주고 개선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들이 또 다른 이들의 인지적 변화를 동기부여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번주 가장 인상 깊었던 팀은 비행팀이다. 비행팀은 양봉 부산물을 활용한 제품을 기획해야 하는 팀이다. 3주 동안양봉 부산물 공부부터 시작해서 가능성 있는 양봉 부산물 선택, 선택한 이유, 그 부산물의 장점을 활용해서 들어가고 싶은 시장, 그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 기존 고객들이 그 시장에서 느끼고 있는 어려움을 매일 저녁을 갈아 넣어가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사한 팀이다. 


항상 열심히하는 것은 느껴졌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조사들이 방향성을 잃고 땅굴 파는 시간들이 많았다. 방향성만 잘 잡아주면 더 좋은 퍼포먼스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팀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이번주에 함께 그 팀이 어려워하는 문제정의 케이스 스터디, 문제정의 캔버스를 활용한 워크숍을 통해 문제정의 감을 잡게 해보았다. 이런 비즈니스 캔버스, 사례분석을 처음해보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케이스 스터디의 핵심을 파악하고 팀 내 문제정의를 디벨롭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놀랐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조언을 듣고 수용하고 새롭게 적용하는 그 모습에서 성장 잠재력이 돋보였다. 


그렇게 수요일 점심 때 문제정의 워크숍을 잘 끝내고 다시 팀끼리 생각할 시간을 주게 하니까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솔루션까지 땅굴파서 들어가는 바람에 방향성이 완전히 다시 틀어졌다. 그 다음날 권기효 대표님 멘토링 시간에 솔루션까지 생각하지 말고 문제정의 논리를 단단하게 만들라고 엄청 혼났다. 대표님은 봉 부산물 선택, 선택한 이유, 그 부산물의 장점을 활용해서 들어가고 싶은 시장, 그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 기존 고객들이 그 시장에서 느끼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논리구조를 다시 만들라고 목요일 저녁 8시에 알려줬다. 


멘토링에 자랑할 것이 생겼다고 기대하면서 들어왔다가 잔뜩 풀이 죽어 나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는데 걱정이 무색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날 금요일 세시까지 미친듯이 자료를 찾아왔다. 반나절 만에 열심히 조사해서 꽤나 탄탄한 시장 진입 논리구조를 완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벅찬 감동이 몰려왔다. 어찌보면 열심히 조사한 자료를 계속해서 엎고 또 엎고 또 고민하게 만든 대표님이 원망스러웠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최선을 다해 고민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이 엿보였다. 비행팀을 만날 때면 팀원들의 반짝이는 그 눈빛 너머로 앞으로 5개월 동안 성장할 그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랜만에 반짝이는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아 기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제정의,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