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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소라게 Sep 18. 2021

종교와 의학이 공존하는 곳

신앙과 과학사이

제가 살고 있는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오늘 제가 같이 일한 사람들만 봐도, 비서는 필리핀, 매니저는 포르투갈, 과장님은 이스라엘, 간호사는 영국, 보조사는 에리트리아, 그리고 레지던트는 네덜란드 등 각자 출신지와 배경이 다 다릅니다. 이렇게 다문화적인 곳에서 생활을 하다가 비교적 단일민족 국가인 대한민국을 방문하게되면 처음 며칠은 제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너무도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협업하며 공존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너무도 흥미롭습니다. 다양한 민족들이 오랜시간 섞여서 살다보면 서로 동화가 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화의 형태가 어느정도 변화가 되는 부분이 있지만, 종교적인 믿음과 습관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것 같습니다. 종교가 한 사람의 정체성,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것이 신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방식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규칙과 전통에 대해서 듣는 것을 좋아하고, 제가 배운 것은 환자들을 돌보는데 적용하려고 합니다.


가장 흔한 사례는 금기된 동물입니다. 발치를 한 후 뼈를 보존할 때나, 치아 임플란트를 위해서 뼈 이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골반의 장골 능선 (Iliac crest) 같은 부위에서 자가 뼈를 수확해서 이식하는 자가이식(Autograft)하는 방법이 있지만, 가격과 편리를 위해서 소나 돼지의 뼈로 이종이식 (Xenograft)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소를 신성히 여기는 힌두교인들에게는, 소의 뼈를 이식하는 것은 신성모독이기 때문에, 뼈 이식을 하기 전에 소가 아니도록 확인을 해야 합니다. 반대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신자들이나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에게는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라서 돼지뼈를 이식하면 안 됩니다. 동물성 제품을 금기하는 것은 종교인들만은 아닙니다. 철저하게 식물성만 고집하시는 비건(Vegan) 환자들은 동물뼈뿐만 아니라, 봉합할 때 쓰는 실도 동물성이 아닌 것 이도록 신경을 씁니다.


문화와 종교는 의사와 환자들의 선택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슬람교에서는 매년 한 달 동안 라마단이라는 종교행사를 하는데, 라마단 기간 중에는 해가 떠있을 때에는 금식을 하고,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과 음식을 먹고 마십니다. 한 번은 라마단 기간 중에 독실한 무슬림 환자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몸에 열이 심하고 입안이 아파서 온 환자였는데, 라마단 기간이라고 입안에 아무것도 넣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라마단 기간에 병자나 노약자는 금식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분은 혹시 모르니깐 라마단을 지키겠다고 하셨습니다. 환자의 부탁대로 육안으로만 입안을 봤는데 치아에 감염이 있었습니다. 치과치료를 하려면 입안에 물이 들어가는 건 불가피했고, 그렇다고 해가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서, 라마단 기간이 끝날 때까지 치료를 미루기로 했습니다. 환자의 고통을 제어하기 위해서 진통제와 항생제를 처방하는데, 해가 떠있는 기간 동안에는 약을 드실 수 없으시기 때문에 하루에 두 번 (해뜨기 전과 해가 진 후) 먹을 수 있는 약으로 골라서 처방해드렸습니다.


저희 병원에는 정통 유대인 환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금요일 해질녘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안식일을 지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거룩하게 지키라는 신의 명령을 따라서 정통 유대인들은 금요일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합니다. 유대교를 믿는 제 친구 말에 의하면, 안식기간 중에는 전자기기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전자기기를 켜고 끄는 것조차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안식일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저는 금요일 오후에는 정통 유대인 환자들을 예약하지 않습니다.


제가 사는 주에는 기독교의 종파 중인 아미시 종교를 (Amish)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세속과 단절이 되도록 선택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미시들은 21세기에도 마차를 타고 농사를 주로 지으며 전자제품 사용을 포함한 현대문명을 철저히 거부합니다. 복장도 남자들은 17-18세기 배경의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어두운 색의 전통모자와 양복을 입고 여성들은 전신을 가리는 검소한 드레스를 입습니다. 세속과 격리되어서 산다고는 하지만 가끔 도시 내에서 아미시들이 보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분들을 길가에서 봤을 때 이 분들이 민속놀이 전통 행사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에게 아미시들은 미지의 세계에 살아가는 부족 사람들같이 느껴집니다. 나중에 이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할 기회가 있다면 저는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미시 환자들은 병원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아미시들이 현대의학을 부정하는 건지 아니면 병원 정문의 자동문을 사용하기 거부하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저는 날마다 아미시 환자를 만나길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깨너머로 일터에서 배운 세계의 종교관에 대해서 저는 서로를 존중하고 합의점을 찾으면 종교와 의학은 항상 같이 공존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나의 상상 이상으로 복잡했습니다.


암센터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Acute Myeloid Leukemia)에 걸린 중년의 환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백혈병은 빠른 시간 내에 상황이 악화되고 전이되기 때문에,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치료를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병입니다. 하지만 환자는 본인이 여호와의 증인이고, 종교적 이유로 수혈과 골수이식을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환자의 치아에 문제가 있어서 저를 보러 왔을 때에는, 피를 멈추게 하는 혈소판의 (Platelet) 수치는 35였고, 감염과 싸우는 백혈구 중 하나인 중성구의 (Neutrophil) 수치는 0이었습니다. 혈소판의 정상적 수치는 150-450이며, 50보다 낮으면 치과치료 중 지혈이 안돼서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수혈을 받지 않겠다고 했고, 백혈구가 아예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치료없이 입안의 질병을 방치하면 환자가 심각한 감염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치과 치료를 하기도 어렵고 안 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환자에게 모든 옵션을 제시하였고, 각 선택에 따른 장점과 위험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환자는 망설임 없이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는 위험을 선택하였습니다.


종교적 믿음과 의학적 지식이 충돌할 때, 저는 '정말로 환자를 위하는 선택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의료 윤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답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환자의 뜻을 존중하며 그들이 가장 좋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출처: https://www.cnn.com/2020/05/01/world/religion-medicine-coronavirus-wellness-levin/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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