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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소라게 Sep 04. 2021

원리원칙대로

타협하지않는 이유

어느 직장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병원 안에는 지켜야 하는 규칙이 너무도 많습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사항들이지만 때로는 너무도 귀찮게 느껴지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번거로워도 저는 원리원칙대로 모든 절차를 따릅니다. 제가 이렇게 타협하지 않는 이유는 저의 이기심으로 큰 실수를 할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레지던트 때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를 했을 당시, 머리와 치아의 외상 때문에 호출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계단에서 뛰어가다 미끄러져 이가 부러진 사람, 하키 하다 얼굴에 맞아서 턱 뼈가 부러진 사람, 패싸움하다 주먹에 입안이 박살난 사람 등 이유도 참 다양했습니다. 계절과 상관없이 일 년 내내 부러진 치아들과 골절된 턱뼈를 하루가 멀다고 보게 되면, 사람의 머리가 얼마나 약한지 깨닫게 됩니다.


하루는 아주 바쁘고 지치는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시계는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저는 30분만 더 버티면 퇴근할 수 있었기에 막 마음이 설레기 시작할 때쯤, 또 호출을 받았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앞니가 부러진 아저씨가 응급실로 접수를 하였습니다. 하필 퇴근 직전에 치아 외상이라니... 치아 외상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서 한숨이 내쉬어졌습니다. 치아 외상이나 턱뼈 골절은, 머리에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에, 치아 말고도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뇌진탕 (Concussion) 이 있었는지, 척추 (C-spine)와 뇌신경 (Cranial Nerves)들이 정상인지 검사를 하고, 피부조직이 찢기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봅니다. 입안에는 턱뼈는 잘 붙어있는지, 어떤 치아가 부러졌는지 확인을 합니다. 치아가 부려졌을 경우에는, 부러진 조각이 어디 있는지 환자한테 물어봅니다. 만약에 환자가 부러진 조각을 봤었거나 주웠으면 다행이지만, 기억을 못 한다면 Chest X-ray를 찍어서 치아 조각이 폐 속으로 흡입이 되었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아저씨한테 부러진 치아 조각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역시나 기억이 안 난다고 했습니다. 현재 시간은 4시 50분이었고 만약에 제가 Chest X-ray를 오더 한다면 바쁜 금요일 오후에 아무리 빨라도 X-ray를 찍고 결과가 나오는 데는 적어도 1시간은 걸리겠고, 방사선과 의사의 리포트까지 나오는 것을 기다리려면 3시간 정도 예상이 되었습니다. 아저씨의 부러진 치아는 다행히도 치아 신경이 멀쩡했기 때문에 간단한 조치로도 집에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Chest X-ray까지 찍게 된다면 결과를 기다리면서 저는 소중한 금요일 오후를 병원에서 낭비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태껏 제가 수십 번의 Chest X-ray를 오더 했지만 단 한 번도 폐에서 치아가 발견된 적이 없었습니다. 아저씨는 숨 쉬고 말하는데도 지장이 없으시고, 왠지 이번에도 폐가 멀쩡할 것 같은데 X-ray를 찍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나의 편의보다 환자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저는 Chest X-ray를 오더 했습니다.


응급조치를 다 마치고 제 사무실로 와서 저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새로고침 단축키를 연발하면서 X-ray 결과가 나오도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의 금요일을 망쳐버린 아저씨가 원망스러워 혼자서 투덜투덜 되고 있을 때, Chest X-ray 가 나왔습니다. 파일을 열고 모니터를 자세히 보니, 삼각형 모양의 부러진 치아 조각이 오른쪽 폐에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아찔하며 그때까지 소중히 아끼던 저의 금요일이 너무도 보잘것없이 느껴졌습니다. 만약에 제가 타협하고 X-ray를 찍지 않았다면 아저씨는 나중에 폐에 더 큰 문제가 생길 때까지 치아가 있는지 몰랐을 생각에 다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나의 편의를 위해서 아저씨의 생명과 안전을 타협하려는 생각을 했던 어리석은 제가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이비인후과 팀을 호출해서 아저씨가 폐 속의 치아를 잘 제거하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이 모든 일을 마치고 나오니 이미 해가 저물고 시간은 저녁 9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도 값진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제 할 일을 다 안 하고 퇴근을 했었더라면, 환자를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편히 쉴 수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저는 평생 후회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간단한 안전수칙이라도 그 수칙이 생길 때까지는 많은 사고와 불상사를 겪은 환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귀찮아도, 바보 같아도, 저는 타협을 하지 않도록 마음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의 아주 조금의 편리함보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https://www.oatext.com/aspiration-of-extracted-tooth-under-general-anesthesia.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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