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함께 있으면서도 얽히지 않는 관계

by 강희수

가까움은 반드시 얽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관계에서 가까움은 서로의 삶을 침범하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도 이 혼동은 자주 일어난다. 함께 있다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의 삶은 쉽게 겹쳐진다. 이 겹침은 친밀함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된다. 함께 있으면서도 얽히지 않는 관계는 거리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관계는 역할의 분리에서 시작된다.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고,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산다. 이 문장은 차가운 선언이 아니다.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다. 부모가 아이의 선택에 과도하게 개입할수록 아이는 자기 삶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반대로 부모가 아이의 삶에서 완전히 물러나면 관계는 공백으로 변한다.


얽히지 않는 관계는 이 두 극단 사이에 있다. 부모는 아이의 삶을 대신 살지 않지만 아이의 삶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이 균형은 감정의 거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책임의 위치로 만들어진다. 어디까지가 부모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아이의 몫인지 분명히 아는 것. 이 구분이 명확할수록 관계는 얽히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자기감정처럼 끌어안지 않을 때 아이는 자기감정을 부모에게 맡기지 않는다. 이때 아이는 부모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함께 있으면서도 얽히지 않는 관계는 멀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관계다. 서로의 삶을 소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계에서는 사랑이 증명될 필요가 없다. 사랑은 버팀이나 희생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로 드러난다. 이 글은 부모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반복하고 싶지 않은 하나의 구조를 나 스스로에게 확인하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나는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내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은 아이를 바꾸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부모로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 겨우겨우 여기까지 살아왔다. 그래도 나는 내 아이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아이에게 짐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돌아와도 괜찮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이 장의 결론은 분명하다.

함께 있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겹쳐 놓는 것이 아니다. 함께 있다는 것은 각자의 삶이 나란히 설 수 있도록 공간을 남기는 일이다. 부모와 아이가 각자의 인생을 살 때 관계는 처음으로 가벼워진다.


다음 장 예고

다음 장에서는 부모가 자기 인생으로 돌아가면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외로움과 고립의 차이를 살펴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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