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부모가 자기 삶을 살면 이기적인가

by 강희수

부모가 자기 삶을 살기 시작할 때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너무 네 생각만 하는 거 아니야?” “이제 와서 왜 그러냐?” “아이 생각은 안 하니?” 이 말들은 도덕적 판단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역할 복귀 요청이다. 오랫동안 아이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사람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관계는 불안을 느낀다.


그 불안은 이기심이라는 언어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기심과 자기 존중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기심은 타인의 몫을 침범한다.


자기 존중은 자기 몫을 회수한다. 부모가 자기 삶을 산다는 것은 아이의 몫을 가져오는 일이 아니다. 부모가 자기 몫의 시간을 자기 자리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 구분이 없을 때 부모는 늘 자기 선택을 의심하게 된다. 조금 쉬어도 미안하고, 무언가를 즐겨도 죄책감이 생긴다. 나 또한 한동안 내가 쉬는 순간을 조용히 숨겨야 하는 것처럼 느꼈다.


나는 한동안 내가 쉬는 순간을 조용히 숨겨야 하는 것처럼 느꼈다. 아이를 두고 잠깐 밖에 나가는 날이면 괜히 더 서둘렀고, 내가 쉬는 시간을 설명 가능한 이유로 채우려 했다. 사실 그런 날은 거의 없었다. 아이를 잠깐이라도 맡기고 나가는 일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몇 번 되지 않는 그 시간조차 마치 무언가를 잘못한 것처럼 괜히 더 조심하게 됐다. 나는 그 짧은 시간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도록 지나가게 하려 했고, 내가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가능하면 설명 가능한 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쉬는 시간은 있었지만 마음은 쉬지 못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야.” “이건 필요한 일이야.” “금방 올게.” 그 말을 아이에게 하기 전에 사실은 나에게 먼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죄책감은 아이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구조가 흔들릴 때 생기는 잔여 감정이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는 ‘자기 몫’을 잊는다.


그리고 잊는 정도가 깊을수록 자기 몫을 되찾는 순간 더 크게 흔들린다. 하지만 아이에게 부모의 자기 삶은 위협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가 자기 삶을 가질 때 아이의 삶은 분리된다.


부모가 자기 삶을 갖지 못할수록 아이의 삶은 부모의 기대와 불안을 함께 떠안게 된다. 그때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부모를 안정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모의 표정을 살피고, 부모의 기분을 먼저 조정하고, 부모가 무너지지 않게 자기 욕구를 줄인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자신을 비운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에게 그 비움은 ‘부모의 삶’이 아니라 ‘아이의 삶’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부모의 자기 삶은 아이에게 부담을 줄이는 선택이다. 이 장에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이것이다. 부모의 자기 삶은 아이와의 거리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아이와의 관계를 정확한 거리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 정확한 거리가 있을 때 부모와 아이는 서로의 삶을 존중할 수 있다.


부모가 자기 삶을 살기 시작하면 아이에게 이런 메시지가 남는다.


관계는 한 사람이 사라지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


부모는 자기 몫을 지키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이 메시지는 아이의 인생 전반에 깊이 남는다. 그리고 아이는 언젠가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때,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기를 지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 장의 결론은 분명하다. 부모가 자기 삶을 사는 것은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의 삶을 아이에게 돌려주는 선택이다.


다음 장 예고

다음 장에서는 부모가 자기 삶을 선택하면서도 아이와의 연결을 끊지 않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관계의 방식을 다룬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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